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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리 Jun 03. 2024

쉬운게 단 한개도 없다

시드니에서 집 구하기

호주 시드니 내에는 한인동네가 몇 군데 있다. 이곳에는 실제로 한국어로 적혀 있는 간판을 달고 있는 마트와 한식당들이 도처에 줄지어 있고 거리에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돌아다녀서 여기가 한국인지 호주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식당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김밥 한 개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냥 한국이었다. 그래서 남편(아직은 예랑)은 영어가 약한 내가 한인 동네에 살며 호주에 적응하기를 원했다. 일자리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서 구하면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도 들어가 있었다. 따라서 집을 구할 때 우리가 생각했던 것은 한인동네이면서 역 근처에 위치해 있고,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아파트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집은 우리만 원하는 것이 아니고, 집을 찾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우선순위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셰어집이 불편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집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호주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서 업데이트가 된 정보가 있을까 싶어서 보고 또 봤다. 호주의 부동산 시스템은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온라인에서 매물을 보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방문을 하는데 이것을 '인스펙션'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인스펙션은 토요일에 몰려있고 인스펙션을 보러 가면 나뿐만 아니라 그 매물에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이 전부 오기 때문에 경쟁이 생기게 된다.




    동네마다 다르긴 한데 우리가 봤던 집 대부분이 5-10명의 경쟁자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원하는 지역에 부동산 매물도 꽤 있어서 경쟁자가 많아도 '언젠간 되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인스펙션을 보러 갈 때에 다른 사람들이 막 관심 있어하며 부동산 에이전트한테 어필을 할 때면 '저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3주 사이에 10군데 정도를 보러 갔고 맘에 드는 매물 5군데에 대해 지원을 했는데 다 떨어졌다.


    Step By Step이라고 집을 구하고 나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집부터가 해결이 안 되니 점점 마음이 조급해져 갔다. 또한 마음에 드는 매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아쉬운 데로 원하는 바를 다 충족시킬 수 없으면 차선책으로 컨디션이 조금 떨어지는 집이라도 그냥 빨리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찰나에 기적적으로 한 집이 홈페이지에 나오게 되었고, 남편이 혼자 인스펙션을 보러 갔는데 마음에 들어서 지원을 하겠다고 하였다. 이전에 계속 떨어졌던 이유가 뭘까? 고민하며 인터넷에 쳐보니 호주의 부동산은 부동산 에이전트의 역할이 집 구하는 게 꽤 많이 영향을 미친다고 나와있었다. 우리가 직접 집주인과 연락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에이전트를 끼고 연락을 하니까 중개인한테 우리의 지금 현 상황을 어필하는 게 좋다는 의미였다. 어쩐지 저번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은 자신들의 결혼스토리부터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보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원을 할 때 좀 더 간절한 바람을 담아 우리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앞으로 이 집에서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다는 내용과 함께 지원서를 작성해서 보냈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적적으로 우리에게 집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매주 내야 하는 렌트비가 상당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걱정보다는 드디어 4주 만에 집을 구했다는 만족감과 처음부터 우리가 생각했던 모든 조건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충족되는 집이 구해졌다는 감사함이 먼저였다.


   

    호주에서의 삶은 정말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음의 연속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호주에 오기 전 많은 사람들이 "호주에서 삶을 잘 적응할 수 있겠니?" 하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럴 때마다 말했던 것이 "저는 낯선 곳에 가도 적응 하나는 잘하니까 괜찮아요", "부딪히면서 성장해 나가는 거죠"라고 자신감 있게 얘기한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막상 실제의 삶에 맞닿뜨리게 되니 쉬운 건 단 한 개도 없었다. 특히나 나의 본 고장인 부산에서 새롭게 신혼집을 꾸려나가는 일도 어찌 보면 힘든 일인데 이렇게 타지에서 해나가는 것 자체가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을 동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남편이 호주에서 10년을 넘게 살았기 때문에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주어서 너무 고마웠고 이렇게 배려심 많은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한다는 생각이 더 든든하고 의지가 되었다.


    타지에서의 삶의 좋은 점 중 하나를 얘기하자면, 가족이라고는 정말 남편 한 명 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더욱더 돈독해지고 배우자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걸어가는 길이 팀플레이로서 해결해야 될 것들이 많을 터인데 하나하나 같이 헤쳐나가는 기쁨을 맛보며 살면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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