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도 아닌 사이에 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일어나는지, 오늘 쓸 내용은 그중 하나인 해수욕 하러 갔다가 겪은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시드니에는 정말 유명한 비치가 있는데 본다이 비치라고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색깔과 고운 모래사장 그리고 파도 수영장까지 호주를 잘 몰라도 여기는 한 번쯤 봤을 만한 여행지이다.
보통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하버브리지, 블루마운틴과 함께 본다이 비치는 호주여행에 빠져서는 안 되는 관광지인데 여기를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왜냐면 집에서 비치까지 1시간이 걸리는데, 가는 길이 고속도로를 타고 쭉 가는 게 아니라 계속 신호를 받으면서 가기 때문에 운전하기도 힘들고 그래서 쉽게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생각보다 집 순이라서 누가 막 이끌어 주지 않으면 밖에 잘 안 나가는 편이기도 하다.
한국이 지금 겨울에서 봄으로 가고 있으니 호주는 여름에서 가을로 가야 하는데 이상기온 때문인지 아직까지 낮기온이 32도에 머문다.(2024년 3월 기준) 오늘도 어김없이 맑은 하늘이라 남편이 갑자기 본다이 비치에 가자고 말을 꺼내서 부랴부랴 한국에서 챙겨 온 수영복을 처음으로 꺼내 입고 샤워타월을 가지고 본다이 비치로 향했다.
1시간이 걸려 도착하니 와.. 진짜 듣기만 들었던 에메랄드 빛의 바닷가와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파도의 스케일과 함께 세계적으로 몰려온 서퍼들의 파도타기들도 구경하고, 고운 모래사장에 발도 담가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간 날은 목요일이었는데 남편말로는 평일이라 사람이 많이 없다고 했지만 내가 봤을 때는 없는 것 치고는 많다고 느낄 정도로 많았다.
주말에는 주차할 때도 없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해수욕하기도 쉽지 않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본다이 비치 뒤편에는 초원이 있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돗자리를 가지고 누워서 선텐을 하거나 아니면 샤워타월을 깔아서 누워있는데 그것이야 말로 완전한 자유로움처럼 느껴져서 보는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나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서 파도가 엄청 높고 세서 나 같은 수영 초보는 자칫하면 끌려들어 갈 것 같이 느껴졌다. 본다이 비치에 있는 자연 수영장은 카페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돈을 내고 들어가게 되어있다.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남편이 옆에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브론테 비치에도 똑같은 자연수영장이 있는데 거기는 공짜라고 하고 사람도 별로 없다고 해서 차를 타고 5분 정도 더 들어가 브론테 비치에 도착했다.
브론테비치는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바베큐장도 있었고, 본다이 비치 못지않은 해변과 자연수영장이 펼쳐져 있었다. 진짜 너무 예쁘고 너무 뛰어들고 싶어서 우리도 부랴부랴 가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이상한 파란색 실 같은 게 남편 근처에 있어서 치우려고 손가락을 대는 순간 낚시 바늘이 내 손가락에 박힌 느낌이 들었고 너무 아파서 남편한테 보여주니 이거 독성 있는 해파리라고 얼른 밖에 나가서 수건으로 내 손에 감겨있는 독성 해파리를 닦아주었다.
닦았지만 진짜 너무 아팠고, 아픈 게 가시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 얼마나 아팠냐면 너무 아프면 심호흡밖에 안 하게 되고 숨이 가빠오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에 감겼는데 신경 독성 때문에 통증이 타고 올라와서 오른쪽 겨드랑이뿐 아니라 속도 아픈 느낌이었다.
특히나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독성이 있는 해파리에 물렸으니 나는 이제 죽는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슬프고 아프고 왜 해변을 와서 이렇게 되는 거지 라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너무 놀래서 일단 라이프 가드가 있어서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었는데 라이프가드가 방법은 없고 2-3시간 뒤면 괜찮아지는데 통증은 어쩔 수가 없다 뜨거운 물이 있으면 그것을 대면 좀 괜찮은데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원래 수영장 쪽에는 잘 안 나온다고 했는데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서 해파리가 다른 지역에서 넘어왔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
블루보틀 해파리, 크기가 매우 다양하고 나는 손가락 두마디 정도 되는 해파리 크기에 당했다. 무엇보다 저기 파란색 촉수에 데이기만 해도 신경통증을 일으키니 정말정말 주의가 필요하다
남편은 가는 길에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사 와서 나를 먹였고, 1시간을 달리는 그 차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아기가 생기고 낳을 때 해산의 고통이 이것과 같을까?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는데 난 어떻게야 할까? 분명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는데 전혀 나을 기미가 없이 손가락이 미친 듯이 아팠다. 손가락뿐 아니라 겨드랑이 방사통도 너무 심했고 속까지 아려오니 절로 신음이 나왔다.
남편이 너무 미안해하는 것 같아서 혹시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면 안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그래도 내가 다쳐서 다행이다 싶었다. 남편이 다쳤으면 나 스스로 문제 해결도 안 될뿐더러 운전도 못했고 내가 손을 안 댔으면 남편의 목에 대일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서 여러모로 내가 다친 것에 감사했다. 무튼 그렇게 30분이 지났나 손에만 계속 신경을 쓰면 안 되겠다 싶어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고 또 신기하게 찬양을 부르니까 신경이 가사에 가니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뜨거운 물에 손을 대니까 확실히 통증이 덜했다. 그래도 여전히 퉁퉁 붓기도 심하고 칼을 댄듯한 통증이 있었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나았고 무엇보다 겨드랑이가 안 아파져서 너무 다행이었다. 나는 독성해파리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고 말하니 남편이 죽을 독이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었고 내일 되면 괜찮을 것이라고 다독여 줬다. 그리고 신기하게 다음날 되니까 통증이랑 붓기가 현저히 줄었다. 그 전날 얼음찜질도 해줬는데 얼음찜질은 솔직히 효과가 별로 없었고 뜨거운 물을 갖다 대는 게 제일 베스트였다. 계속 차 마실 때 컵이 뜨거우니 거기에 손을 대고 있었는데 많이 풀어져서 정말 다행이었다. 2-3시간 만에 통증이 가라앉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예민한 손가락 부위에 찔려서 그런지 몰라도 반나절 이상 통증이 지속되었던 것 같고 사람마다 또 다른 것 같았다.
오늘을 기점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먼저 매일매일 주어진 삶이 선물 같다고 느꼈다. 갑작스럽게 사람이 어떻게 될 수 있는 것인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감사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써야겠다고 느끼게 되었고 죽을 독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었다. 호주의 바다가 너무 이쁘지만 당분간 갈 일을 없을 것 같다. 트라우마가 생겨버려서 언제 다시 도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남편도 10년 넘게 호주에 살면서 블루보틀 해파리에 쏘인 사람을 처음 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시드니에서는 안 나오는 블루보틀 해파리를 호주에 온 지 2달도 안된 내가 쏘인다는 게, 참 웃기고 어이가 없긴 하지만 경각심은 확실히 생긴 날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괜찮음에 무한 감사하다.
퉁퉁 부은 가운데 손가락, 잘 보면 하얀색 실 같은 자국이 있는데 해파리가 손에 감긴 자국이다. 1달이 지난 지금은 모든 흉터가 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