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서두르지 않는다."
喜(기쁠 희) – 다시 시작하는 일
15년의 육아를 마치고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내가 발을 들인 곳은 지역아동센터를 지원하는 작은 사회복지단체였다.
차고지를 개조한 3평 남짓한 사무실,
긴 책상 하나,
노트북 한 대 그리고 올망졸망한 서류상자 몇 개.
낯선 공간과 낯선 단어들 속에서도, 마음은 설레었다.
삶은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 설렘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나를 움직였고, 나는 나의 시간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哀(슬플 애) – 흔들림의 자리
새로운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늦은 나이에 입사한 나는 언제나 상사보다 나이가 많았다.
때로는 열 살이나 어린 팀장 밑에서 일해야 했다.
별거 아닌 일에도
자신감이 무너졌고, 자존감마저 함께 흔들렸다.
그 무너짐 앞에서 나는 한동안 스스로를 탓하며 머물렀다.
아주 천천히
회사는 내 100%를 다하지 않아도 괜찮고,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갔다.
그리고
자신감을 억지로 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내가 되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樂(즐거울 락) – 느림의 열정
며칠 전 퇴사 소식을 전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진 못하지만,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직할 때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속을 끓이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강인함이 있었다.
“꼭 직장이 필요해?”
내가 조심스레 묻자, 친구는 잠시 멈추더니 말했다.
“나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존재하고 싶어. 존중받고 싶어. 그러려면 일과 수입이 있어야 해.”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그 대가로 경제적 자유와 관계의 여유를 얻는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꽃은 서두르지 않는다.
삶은 결코 비교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서두르지 않는다.
이제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미 내 길 위에 서 있고, 다시 시작할 힘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퇴직을 앞둔 지금도, 삶은 또 한 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