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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Feb 25. 2022

1720년 마르세유 페스트 1

어떻게 페스트가 전파되었나?

 1720년 마르세유에서 일어난 페스트가 유럽의 마지막 대규모 페스트였다. 마르세유 페스트에 관한 자료는 아주 다양하고 상세하게 남아 있다. 마르세유 페스트에 관한 연구 또한 여러 측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접근이 지배적이다. 참고 자료를 바탕으로 마르세유 페스트의 발생과 전개, 대책과 처방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반응과 행동 양식을 요약해보았다. 1720년에도 여전히 의학적으로 병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 373년 전에 일어난 피렌체 페스트와 마르세유 페스트는 방역 대책과 처방에서 크게 변한 점이 없다. 그럼에도 수없이 되풀이된 페스트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행정 대책은 한결 조직적이다.


    동방 갔다 오는 배는 수상쩍다


 1720년 5월 25일 마르세유 출신 샤토 선장이 지휘하는 상선 그랑 생앙투안호가 마르세유항에 도착한다. 이 배는 1719년 7월 22일 스미르니를 향해 출항한 지 10개월 3일 만에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1719년 8월 20일 그랑 생앙투안호는 스미르니항에 도착했다. 거기서 화물을 선적하고 8월 29일 모스코노시 항구를 향해 떠난다. 이 항구에서 키프로스로 보내는 밀을 선적하고 세이드로 간다. 1720년 1월 30일 세이드에서 출발 항구가 전염병이 전혀 없다는 검역증을 받고 떠난다. 수르항에 도착하여 화물을 거의 다 차게 선적하고 2월 5일 트리폴리를 향해 다시 출발한다. 트리폴리에서 얼마간 상품을 싣고 동시에 승객들을 태운다. 터키인 5명, 그리스인 1명, 몇몇 프랑스 사람들과 외국 선교사들이다. 4월 3일, 3월 25일 자 발행의 전염병이 없다는 검역증을 소지하고 키프로스를 향해 떠난다. 키프로스로 가던 중 4월 5일 삼등 선실에서 터키인 한 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4월 7일 키프로스에 도착하여 터키인과 그리스인 승객들을 하선시키고, 다시 화물을 채우고서 4월 18일 세 번째로 전염병이 없다는 검역증을 받아 프랑스를 향해 떠난다. 


 1720년 1월에 다마스 그리고 봄에서 5월까지 세이드와 키프로스에 페스트가 돌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어쨌거나 샤토 선장은 페스트가 만연한 지역에서 상품 특히 감염되었을 면직물과 인도 사라사라고 부른 비단을 선적하였다. 그렇다면 생앙투안호의 사람과 상품 둘 다 감염되었다고 볼 수 있다. 1720년 5월 12일 마르세유 검역관들은 섭정한테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페스트가 창궐하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돌아오는 중 선원 두 명이 4월 23일과 24일에 병에 걸려 27일과 28일에 죽는다. 곧이어 외과의사가 병에 걸려 이틀 만에 죽는다. 그다음에 선원 두 명이 또 희생된다.


 5월 14일 생앙투안호는 이탈리아의 리보르노항에 접근한다. 선장은 리보르노 보건국에 5명이 사망하고 승무원 몇이 병에 걸린 상태라고 보고한다. 리보르노 보건국은 선박을 해변 멀리 정박시키게 하고 보초를 배치한다. 5월 17일 병에 걸린 선원 세 명이 죽자 선장은 시신을 육지로 옮기게 한 다음, 보건국 의사한테 한 사람은 발병한 지 15일 만에 둘은 5일 만에 사망한 그들이 보인 증세를 자세하게 보고한다. 시체를 부검한 의사는 "페스트성 악성 열병"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 말을 들은 승무원 일동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트리폴리에서 발급한 검역증 뒷면에 리보르노 검역소 의사의 진단에 따라 페스트성 악성 열병으로 승무원 일부가 사망하였기에 공중 보건에 대한 경계를 갱신한다고 기재한다. 리보르노 입항이 거절된 이 배는 외과의사를 새로 충원하고 5월 19일 마르세유를 향해 출발한다. 마르세유에 도착하기 얼마 전 또 한 명의 선원이 병에 걸린다. 5월 25일 동방(레바논과 시리아를 중심으로 펼쳐진 동쪽 지중해 연안 지역)이나 북아프리카에서 오는 여느 배들처럼 포메그섬에 닻을 내린다.


 1649년 마지막 페스트가 지나간 지 70년이 지난 시점 프랑스 제3의 도시 인구 10만의 마르세유는 18세기 초 늘어나는 무역으로 아주 번창하는 항구였다. 외국인을 포함한 외지인 비율이 삼분의 일 정도의 코즈모폴리턴적인 국제 도시였다. 귀족이나 도매상인을 포함한 극소수의 최상위 부유층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장인, 어부, 선원, 걸인에 이르기까지 하층에 해당하는 서민들로 구성되었다. 3백 명쯤 헤아리는 도매상인들이 이 도시의 경제 활동을 비롯한 모든 활동을 지배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행정도 장악하였다. 그야말로 마르세유는 소수 부유한 대상인들의 금권정치가 판치는 도시였다. 1669년부터 관세 특권이 보장되는 자치 도시로 특히 동방과의 무역에 독점권을 누리고 있었다. 마르세유는 네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 구역은 부르주아 계층의 구역 행정관이 통치하였다. 그리고 이미 마르세유는 항구 폐쇄나 검역 격리를 통해 전염병 예방을 할 수 있는 보건 체계를 갖춘 상태였다. 


 실제 마르세유의 보건국은 프랑스 전체의 검역을 총괄하는 보건 방어의 막강한 보루였다. 검역 규칙을 작성하고 왕가의 칙령이나 명령을 현장에서 실행하며 상황의 경중에 맞추어 즉시 정확한 조치를 취하였다. 지중해 연안을 따라 설치된 연락사무소, 해외 영사관, 상인, 선원 등을 동원하여 넓은 정보망을 구축해서 지중해 연안의 전염병 상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보건행정 관료나 현지 영사관이 선장한테 출발 항구나 기항지의 전염병 상태를 알리는 검역 증명서를 발부하였다. 이 검역증을 보고 마르세유 검역관(매년 선출되는 도매상인 14명으로 구성)이 판단하여 선박을 검역소로 보내거나 아니면 더 위험한 경우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포메그섬으로 검역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빨리 하역하고 재출발하는데 쫓길 때는 이런 수칙들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검역증은 세 종류로 나뉜다. 출발 지역이 전염병에서 안전한 경우(상), 페스트가 우려되거나 추측되는 경우(중), 승선지가 감염되었거나 페스트로 의심되는 전염병이 돌거나 또는 감염된 사람들과 접촉을 한 경우(하). 1718년 개정된 규칙을 보면 검역 기간은 검역증에 따라 상품의 경우 30일이나 35일 또는 40일간이었다. 선박은 16일, 20일 또는 30일이고, 승객은 8일, 15일 또는 20일이었다. 검역 기간이 끝난 선박의 경우 정화와 훈증 소독을 거친 다음 입항이 허락되었다. 화물과 승객은 도착하는 날 바로 마르세유 북쪽에서 4백 미터쯤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한 앵피르므리(Infirmeries : 페스트 격리병원) 검역소에서 소독을 거쳤다. 마르세유의 검역소는 이중 성벽의 울타리 안에 감염 의혹이 가는 승객과 화물을 받아들이는 특화된 공간으로 다른 모든 격리시설의 모델이 되었다. 성벽으로 둘러친 12헥타르의 부지에 출입문은 단 세 군데밖에 없었다. 검역소 출입은 보건국 검역관들이 전권을 가지고 있었다.

앵피르므리 전경, 수채화, 지중해 고고학 박물관 컬렉션


    페스트는 이렇게 퍼진다


 샤토 선장은 마르세유 검역관한테 감염 위험이 전혀 없다는 검역증을 내밀었지만 소용이 없다. 이미 항해 중에 선원과 승무원 여덟 명이 페스트로 의심되는 병에 걸려 죽었기 때문이다. 검역 당국은 이 배를 곧바로 마르세유 항구에서 6킬로쯤 떨어진 선박의 검역 장소인 포메그섬으로 격리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포메금섬 검역 기간 중에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다. 하지만 검역 기간은 8일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그다음 이 배는 6월 3일 마르세유 검역소 가까이 정박이 허락된다. 5월 27일부터 6월 10일까지 약 2주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니까 보건 당국자로서는 이렇게 많은 사망자가 나왔음에도 페스트는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13일 이 선박의 위생 당직이 죽는다. 앵피르므리 외과의사는 페스트 징후는 언급하지 않은 채 이 선원이 노환과 진성 콜레라로 사망했다는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 14일 이 배의 승무원과 승객들은 짐가방을 가지고 배를 떠날 수 있었다.

 

 6월 23일 이 배의 수습 선원이 앵피르므리로 입원하여 이틀 뒤에 죽는다. 이 경우 의사는 악성 열병으로 인한 뇌충혈로 진단한다. 24일부터 생앙투안호와 세이드에서 ‘하’의 검역증을 받고 도착한 다른 두 선박의 하역 인부들이 잇따라 죽는다. 포메그섬에서 훈증 소독을 하고 검역에서 풀린 생앙투안호는 6월 25일에 입항할 수 있었다. 검역 기간이 최후 사망자가 나온 날로부터 30일인 것을 감안하면 정상이 아니다. 게다가 배에 실린 상품은 몰래 하역되었다. 감염에 노출된 상품의 검역 기간은 다음 달 22일에 열리는 보케르 축제 기간에 맞춰 예정보다 단축되었다. 여기에는 이 시의 제1행정관 에스텔이 상품의 상당량 소유주(에스텔과 샤토를 포함한 다섯 명이 전체 상품의 3분의 1 가량의 소유주였다. 그리고 에스텔과 샤토는 각기 생앙투안호의 4분의 1 지분을 소유하였다.)라는 혐의를 받았다. 이 배(암스테르담에서 건조한 243톤급 선박으로 최대 적재량이 700톤)가 선적한 상품의 가치는 대략 30만 리브르(유로로 환산하면 천만 유로에 가깝다.)로 추산한다. 보험금 10만을 합치면 40만 리브르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마침내 보건국은 6월 27일 위에서 말한 세 선박에 대해 포메그섬과 자르섬으로 재검역 조치를 내린다. 이것으로 보아 확실히 불안감을 내비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망한 하역 인부들의 옷을 불태우고 시신은 생석회 관에 넣어 매장한다. 그리고 세이드에서 ‘하’의 검역증을 받은 두 선박의 상품이 하역된 검역소를 봉쇄한다. 두 선박의 승무원들은 상품의 검역소 출입이 금지되고 검역소에서 일하는 짐꾼들은 검역소에서 나올 수 없게 된다. 또한 모든 하역 인부들은 밤낮 할 것 없이 짐 위에 눕는 것이 금지 된다. 그렇게 하면 일당을 몰수하였다. 그런데 하역 인부들은 선박의 구분 없이 오가며 일을 맡았다. 게다가 검역 중인 각기 다른 선박의 승무원과 선원들을 철저하게 격리시키지 않아 서로 마주치는 일이 적잖이 생겼다. 희한하게도 이런 조치가 내려지고 나서 전염병과 관련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7월 9일 새 조치를 취하기 위해 비상 보건 총회를 소집한다. 병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나흘 전부터 네 명의 하역 인부가 죽고 또 생앙투안호의 상품에 할당된 세 명이 병에 걸린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잇따라 죽는데 어떻게 이 사실을 숨길 수 있겠는가? 보건국은 베로라는 외과의사한테 부검을 다시 의뢰한다. 이 의사는 "그들한테 페스트 종기가 나타났다."며 페스트 증상을 인정한다. 7월 8일 크루아제와 부종이라는 두 외과의사한테 재검사를 시킨다. 두 의사 역시 "그들이 겨드랑이에 달걀만한 굵기의 종기가 있고, 한 사람은 넓적다리에 곪기 시작한 부스럼이 생겼을 것이다."하고 확인한다 [1].

 

 보건국은 검역소가 감염되지 않도록 생앙투안호의 상품들 중 값싼 제품들만 네 척의 배에 싣고 마르세유항에서 동남쪽 15킬로 떨어진 자르섬으로 이송시켜 바람을 쐬도록 조치를 내린다. 나머지 값비싼 물품들은 그대로 검역소에 남았다. 그런데 ‘하’의 검역증을 받았거나 항해 중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올 경우 자르섬으로 검역 격리를 시키는 게 원칙이었다.


 7월 10일과 12일에 다시 비상총회가 열린다. 첫 번째 회의 결과 검역 중인 선박의 입항 금지와 승무원과 승객들은 페스트 격리병원으로 가는 것을 금지시키고 검역소를 나가지 못하게 한다. 두 번째 회의에서는 세이드에서 ‘하’의 검역증을 받고 돌아온 세 척의 배를 규칙대로 모두 자르섬으로 검역 명령을 내린다.


 7월 14일 하역인부 7명이 죽는다. 7월 26일에 다시 두 명의 인부, 부속 사제, 의과의사의 하인을 포함하여 총 7명이 죽는다. 특기할 만한 점은 생앙투안호에만 페스트가 번졌다는 사실이다. ‘하’의 검역증을 받고 돌아와 자르섬으로 검역 보낸 배들에 승선한 사람들 가운데 경우에 따라 76-169일 동안 항해 중이나 검역 중에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 배들에 하역을 맡다가 죽은 인부들은 생앙투안호의 상품을 취급했거나 죽은 인부를 매장했던 경우였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감염된 쥐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검은 쥐에 서식하는 감염된 쥐벼룩이 사람한테 옮긴 것이 아니라 사람한테 기생하는 벼룩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염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벼룩은 사람보다 옷가지나 흰 천에 더 잘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페스트가 검역소에서 마르세유 시내로 번졌을까? 항해 중과 검역 중에 페스트로 의심되는 병으로 죽은 환자가 무려 열 명씩 나왔음에도 생앙투안호의 승무원과 선원들은 자르섬으로 가지 않고 검역소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값진 물품(비단)도 자르섬으로 보내지 않고 검역소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페스트 진단이 날 경우 상품은 자르섬에서 30일, 검역소에서 40일 총 70일 동안 검역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보케르 축제 때 상품을 팔려면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었다. 결국 죽은 환자들은 병에 걸려서가 아니라 영양 섭취를 제대로 못해서 사망했다로 보건국 서류가 위조되었다. 게다가 검역소에서 지내는 2주 격리 동안 이들이 자유롭게 방책으로 접근하여 가족들이며 친구들과 접촉하게 내버려 두었다. 심지어 이들은 검역소의 붉은 문에서 음식물과 필수품을 받고 난 다음 비운 수건을 가족한테 되돌려주었다. 또 속옷을 부인한테 건네 에셸길의 빨래하는 여자들한테 세탁을 시켰다.


 1720년 봄 동방에서 들어오는 직물이나 옷감의 수입이 금지된다. 베르트랑이라는 의사는 "온갖 의류나 물건을 사들이는 몇몇 재단사와 고물장수 가족들이 가장 먼저 병에 걸렸다. (…) 소문난 밀수업자 피에르 카드넬 가족이나 다른 밀수업자들도 에셸길과 그 부근에 살고 있었다. 검역소 가까운 성밖 지역은 에셸길과 동시에 병이 번지기 시작했다."[2]고 쓴다. 페스탈로시라는 의사도 "검역의 밀수업자들이 은거하는 길"에서 이틀 동안 열 명이 죽었다고 언급한다. 마찬가지로 몽펠리에에서 초빙된 쉬쿠아노와 베르니 의사도 "훔친 물품 얼마가 몰래 부주의하게 이 도시에서 처음 감염된 길로 옮겨졌을 것이다."하고 주장한다. 1723년 11월 22일의 심의에서 보건국 관리들도 "1720년 3월 23일의 결정에 따라 수입 금지된 동방의 몇몇 물품이 밀수되면서 병이 돌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3]하고 인정하였다. 이 이외에도 생앙투안호의 상품이 마르세유 시내에 몰래 들어와 유통되었다는 증거들이 더 있다. 밀수품을 따라 페스트도 덩달아 밀수되었을 터이다.


 7월 28일 섭정 오를레앙 공은 생앙투안호와 상품의 소각을 명령한다. 9월 18일 관계자들이 자르섬으로 가서 일주일간 승무원들의 증언을 듣고 선적을 확인한다. 9월 25일 섬의 외진 곳에 이 배의 상품을 이송시켜 불태운다. 그 이튿날 이미 물품 보관하는 텐트로 쓴다고 돛이 다 떨어져 나간 생앙투안호를 이 섬의 작은 만으로 끌어다가 불 지른다. 

 배가 사라지고도 이 배에 탔던 선원들의 역경은 끝나지 않는다. 마르세유 검역관들의 선처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섭정은 10월 28일부터 2차 검역을 명령한다. 여름에는 지독하게 덥고 겨울에는 엄청나게 추운 자르섬에서 승무원들의 격리가 힘들다고 판단하여 보건국은 11월 25일 검역소에서 격리하도록 승인한다. 2차 검역은 두 달 반 지속되었다. 1721년 1월 10일 마침내 생앙투안호의 승무원들은 230일의 검역을 한 다음 입항 허락을 받는다. 

 한편 샤토 선장은 1720년 9월 8일 항해 중 일어난 집단 사망에 대한 허위 진술과 소독이 끝나기 전에 상품을 반입시키고 검역 중 승무원 한 명을 도망가게 내버려 둔 혐의로 이프성의 동종에 투옥되었다. 1721년 4월 7일 이프성에서 해군사령부의 왕립 감옥으로 이감되었다. 그리고 1723년 8월 3일 일반인들이 선장을 잊을 만한 세월인 35개월 만에 무죄 석방된다. 또 일반인들로부터 페스트를 퍼트린 주범이라고 지탄받고도 왕으로부터 생미셸 기사 작위와 귀족 작위를 받은 에스텔 제1행정관은 1723년 1월 16일 급작스런 병으로 죽는다. 그렇지만 보건국 검역관들은 해임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직무를 계속 수행한다.


          

[1] Carrière (M.), Courdurié (M.), Rebuffat (F.), Marseille ville morte, la peste de 1720, Jeanne Laffitte, 2020, p. 216.

[2] 위의 책, p. 219-220.

[3] 같은 책, p.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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