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죽음의 승리, 클루조네 수도원, 1485
죽음을 표현하는 예술, 춤추는 죽음
중세의 페스트는 인류한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영원히 각인되었다. 14세-16세기에 걸쳐 죽음을 주제로 한 미술이 유행한다. 그 가운데 « 춤추는 죽음 »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뒤섞여 추는 춤으로 산 사람은 신분을 드러내는 복장으로 등장하고 죽음은 해골로 재현된다. 해골들이 깡충깡충 춤을 추며 산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죽음 쪽으로 끌고 간다.
14세기 중엽 이후 십 년을 멀다 않고 되풀이된 페스트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상화되면서 다른 한편 죽음의 환상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평균 수명이 25세이던 시절 페스트 감염은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나 한두 번쯤 겪는 통과의례 같은 일이었다. 산 사람들의 부귀영화와 어쩔 수 없이 썩어 문드러지는 죽음에 기반하여 « 춤추는 죽음 »이라는 민속예술이 생겨난다. 페스트(죽음)를 내쫓지 못하는 대신 페스트를 길들이는 마귀 쫓는 의식들이 숱하게 생겨난다. 이런 구마식에서 음악과 춤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또 시가 들어간 벽화로 제작하여 이 장면을 묘사하기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15-16세기에 유행한 « 춤추는 죽음 »은 중세의 죽음을 표현하는 종합예술로 죽음의 미술 가운데 가장 완성된 양식이다.
«세 명의 산 사람과 세 명의 죽은 사람», « 죽음의 승리»
« 춤추는 죽음 »과 유사한 형태로는 « 세 명의 산 사람과 세 명의 죽은 사람의 이야기 »와 « 죽음의 승리 »가 있다. « 세 명의 산 사람과 세 명의 죽은 사람의 이야기 »는 13세기부터 문헌에 언급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 이야기 »는 « 전설 » 또는 « 만남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길 가던 세 명의 산 사람들이 시체 셋을 만난다. 대체로 산 사람은 귀족 출신이고 시체가 된 죽은 사람들은 성직자 또는 귀족이다. 죽은 사람들이 오히려 공포에 사로잡힌 채 귀족들한테 회개하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말을 건넨다.
« 당신처럼 나도 그랬고, 당신도 나처럼 될 터이니 / 죽고 나면 부귀영화며 권세는 아무 의미 없다오. »
이런 주제가 유럽의 여러 언어로 나타난다. 걸어가거나 말을 타고 가는 세 사람의 귀족은 무덤에서 나온 뼈만 앙상한 해골을 만나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그런데 15세기에 접어들면서 « 세 명의 산 사람과 세 명의 죽은 사람의 이야기 »는 개인 신앙 차원인 기도서에 많이 등장하며 또 해골의 동작에 변화가 일어난다. 무덤에서 나온 해골들이 산 사람을 향해 덤벼들고 창을 들고 산 사람을 공격하며 심지어 무장해제된 기사를 창으로 죽이려 든다. « 춤추는 죽음 »과 마찬가지로 « 세 명의 산 사람과 세 명의 죽은 사람의 이야기 »도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대화로 구성된다. 특히 평민들한테 산 사람의 부귀영화와 흉측한 썩은 시체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평민들한테 부자든 세도가든 누구나 다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해골이 공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빼면 « 세 명의 산 사람과 세 명의 죽은 사람의 이야기 »는 죽은 사람이 귀족들한테 회개하라고 권한다. 한편 « 춤추는 죽음 »에서는 회개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누구든 죽음의 춤에 참가하여야 한다.
프랑스와 독일 지역은 « 춤추는 죽음 »을 선호한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 죽음의 승리 »에 대한 취향이 강했다. « 춤추는 죽음 »이나 « 세 명의 산 사람과 세 명의 죽은 사람의 이야기 »처럼 « 죽음의 승리 »에서도 죽음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엄습한다. « 죽음의 승리 »의 이미지로는 이탈리아 베르가모 지방 클루조네의 편달 고행 수도회 외벽에 제작된 프레스코가 유명하다. 1485년 자코모 보를로네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 죽음의 승리 » 아래쪽에 « 춤추는 죽음 » 그리고 맨 아래쪽에 거의 파괴되어 남은 게 별로 없지만 « 악덕과 미덕 »의 모티브가 연달아 그려져 있다. 이 « 죽음의 승리 »에서 죽음은 교황과 또 다른 인물이 엇갈리게 누운 석관을 짓밟고 선 세 해골로 등장한다. 가운데 죽음의 여왕은 저항해 보아야 소용없다는 투로 양손에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 승리를 자축한다. 석관을 빙 둘러서 죽음한테 아양을 떨며 선물을 갖다 바치는 사람들을 향해 왼쪽의 죽음은 화살 세 개를 동시에 재고 오른쪽은 화승층을 겨눈다. 위험을 상징하는 화살은 페스트의 상징으로 많이 쓰인다. 대표적으로 페스트의 수호성인 성 세바스찬은 페스트의 상흔에 화살을 맞고 있다. 그 아래쪽에 그려진 « 춤추는 죽음 »은 죽음의 춤이라기보다 해골과 여러 동업자 조합의 복장을 한 인물이 짝을 지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행렬을 보여준다.
파리의 민속 미술, « 춤추는 죽음 »
1424년 처음 « 춤추는 죽음 »의 벽화가 헤롯왕의 명령으로 학살된 유아에 바쳐진 파리의 이노상 수도원 성당 벽면에 그려진다. 벽화를 제작한 화가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파리에서 가장 컸던 시체 안치소에 세워진 이 성당은 1669년 해체되어 사라졌다. 그와 함께 춤추는 죽음의 벽화도 파괴되고 말았다. "그곳은 시체 안치소라고 부르는 집들로 둘러싸인 엄청나게 큰 묘지로 유골들을 쌓아두었다. 신앙심 깊은 이들을 감동시킬 시와 함께 그려진 유명한 춤추는 죽음이라는 그림이 있다"(Guillebert de Metz, Paris sous Charles VI, 1434).
현재 파리의 레알 지역 이 자리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 항아리를 받쳐 든 장 구종의 부조로 유명한 이노상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이노상 묘지의 유골들은 공중위생을 문제 삼아 1785년 통브 이수아르라고 부르는 옛 채석장 지하로 15개월에 걸쳐 이장하였다. 현재 파리 14구의 카타콤베다.
이노상 성당의 해체로 사라진 이 죽음의 춤 벽화는 1485년 기요 마르샹이 출판한 책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연속적인 프레스코를 낱장 판화로 옮긴 것이라 정확한 원화의 형태는 파악할 수 없다. 책으로 인쇄된 이미지에서 네 명씩 등장하는 인물들의 난은 수도원의 원주와 아치에 해당한다. 책이라는 매체의 속성 때문에 벽화 전체를 통째 편집할 수 없어서 장면 별로 나누어 재현해서 춤추는 전체 장면을 연속적으로 한꺼번에 볼 수는 없다. 인물들의 복장은 당시 으레 그렇게 했듯이 15세기 말에 맞게 바꾼 것이다. 1485년 초판본에서 전체 31명의 각계각층의 등장인물은 1486년 판에서는 10명이 추가된다.
죽음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몸에 해골로 표현되어 나체로 등장하거나 수의를 걸치고 나타난다. 예외적으로 프란체스코 수도사를 인도하는 죽음만 해골이 아니고 피골상접한 몸에 사람의 얼굴로 나온다. 죽음은 대부분 죽음과 연관된 도구를 들고 등장한다. 낫이나 창, 삽 또는 나무토막이다. 물론 이런 도구 없이 등장하는 죽음도 있다. 죽음은 산 사람의 몸을 손이나 팔꿈치로 움켜잡는다. 해골과 산 사람이 번갈아 가며 나아가는 행렬을 만들거나 펼쳐진 원무를 이룬다.
죽음의 춤은 죽음과 산 사람이 짝을 이루어 추는 파랑돌이다. 기원이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파랑돌은 남녀가 짝을 이루어 북과 플룻 반주에 맞추어 3박자의 빠른 템포로 추는 프로방스 지방의 전통 민속춤이다. 춤추는 사람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정면을 향해 전진하기도 하고 꼬리가 물리는 뱀처럼 원을 만들기도 한다. 하나가 되기도 하고 맞서기도 하는 파랑돌은 죽음과 재생의 상징성을 띤다.
파리의 « 춤추는 죽음 »에서 먼저 진행자가 나와 춤판의 시작을 알린다.
"당신의 짧은 생을 잘 마치려면 / 여기 본받을 만한 교훈이 있답니다. / 그건 죽음의 춤이라고 부르는데 / 누구든 그 춤을 다 배웁니다."
이어 해골 넷이 "누구라도 다 이 춤을 추어야 한다."며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악기 반주로 사람을 호린다. 악사들에 뒤이어 해골과 사람이 짝을 맞추고 둘둘씩 두 쌍으로 무대로 나온다. 고리대금업자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해골 둘에 산 사람이 셋이 나오고, 마지막에서 두 번째 은둔 수도자가 나오는 장면은 해골 셋에 산 사람이 둘이다. 춤이 시작되면 죽음은 신분이나 부,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춤판으로 이끈다. 그런데 파리의 « 춤추는 죽음 »에는 여자는 한 명도 참가하지 않는다. 산 사람들은 신분을 드러내는 복장으로 차례대로 등장하는데 엄격하게 사회 계층과 성직자와 세속인으로 구분되고 서열이 매겨진다. 늘 해골이 앞장서 산 사람을 이끌어 왼쪽으로 나아간다. 교황이 시작하여 황제, 추기경, 왕, 총대주교, 원수, 대주교, 기사, 주교, (…), 부르주아, (…) 농민, (…), 아이, (…), 은둔 수도사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리고 죽은 왕과 진행자의 서창이 죽음의 춤을 마감한다.
1347-1352년에 걸쳐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 끝나고 나타난 민화 장르로 « 춤추는 죽음 »은 파리 쪽에서 시작되어 15세기 중엽이 되면 전 유럽으로 페스트 번지듯 퍼져나간다. 수도원이나 공동묘지의 외벽이나 성당의 내벽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의 위나 아래 시로 설명을 곁들인다. 먼저 죽음이 산 사람한테 때로는 위협적이고 고소하는 말투로 때로는 냉소적으로 비꼬는 어조로 말을 건넨다. 이를 받아 산 사람이 후회와 절망에 빠져 연민을 구걸하는 탄원을 한다.
파리의 « 춤추는 죽음 »에 삽입된 시는 장 제르송의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염세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가는 "인간은 사악하고 죄악 투성이며 허영심 많은 피조물"이라고 생각한다. 제르송의 시에는 대부분 인간을 조롱하는 냉소주의가 잘 드러난다. 서른한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어린아이와 샤르트르 수도회 수도사와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를 빼면 작가의 조롱을 비껴가는 인물은 없다.
죽음은 총대주교를 향해 "절대 당신은 로마의 교황이 될 수 없을 거요."하고 말한다. 뚱뚱하게 살찐 수도원장한테는 "가장 뚱뚱한 사람이 가장 먼저 썩는다."고 비꼰다. 의사한테는 "자기 죽음을 고치는 자가 훌륭한 의사요."하고 조롱한다. 고리대금업자의 한탄은 이렇다. "이렇게 빨리 죽어야 합니까? / 진정 고통스럽고 정말 슬픕니다. / 금화며 은화, 전 재산을 다 바쳐도 살 수 없다니."
또한 1408년 장 드 베리 공작이 파리 이노상 성당의 정면 현관에 « 세 명의 산 사람과 세 명의 죽은 사람의 이야기 »를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조각은 사라졌지만 기요 마르샹이 1486년 출판한 판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배경으로 숲이 나오고 기사와 죽음이 만나는 장면이다. 장 드 베리 공작은 조각에다가 사람들한테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시구절을 추가시켰다.
홀바인의 [춤추는 죽음]
파리의 이노상 수도원의 벽화가 공동체가 함께 바라보는 중세 말을 대표하는 죽음의 이미지이라면, 1526년에 41점의 목판화로 제작하여 1538년에 출판된 홀바인의 [춤추는 죽음]은 개인이 책을 통해 일대일로 죽음을 마주하는 새로운 미학을 보여준다.
홀바인의 이미지는 산 사람과 해골이 공동묘지에서 짝을 이루어 추는 파랑돌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일상생활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개인의 활동이나 즐거움을 갑자기 중단시킨다. 난폭한 죽음은 권력 남용이나 지위를 이용한 권위, 부자들의 권세를 비꼬는 투로 고발하고 심판하는 정의의 판관이다.
교황이 황제한테 관을 씌워주는 결정적인 순간에 죽음이 찾아든다. 농부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황제한테 선처를 애원할 때 죽음은 순식간에 황제의 관을 벗겨버린다. 화려한 방에서 수녀가 기도를 하면서 동시에 음탕한 눈길로 애인을 바라보는 순간 죽음은 제단 위의 촛불을 끄면서 끼어든다. 변호사가 바로 곁의 가난한 사람을 전혀 개의하지 않고 부유한 고객으로부터 사례금을 받을 때 죽음이 찾아든다. 죽음은 부자의 숨을 거두어들이기 앞서 부자가 보는 앞에서 먼저 금화를 챙긴다. 또한 죽음은 예고도 없이 부부한테 아이를 앗아가고 산적처럼 길 가는 보부상을 습격한다. 그렇지만 힘없고 가난한 편에 선 하급직 사제나 설교하는 수도승한테는 동정심을 엿보인다. 희한하게도 죽음은 밭 가는 농사꾼을 돕고 식사하기 전 왕한테 손 씻을 물을 따르며 격식을 갖추어 노인들을 영면으로 모셔가는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종교개혁과 농민 봉기를 경험한 인본주의자 홀바인의 [죽음의 춤]은 죽음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맹목적인 교훈이 아니다. 죽음보다 오히려 삶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해골들의 춤]
« 춤추는 죽음 »과 비슷한 형태로 산 사람 없이 해골들끼리 어울려 악기를 연주하며 흥겹게 춤추는 « 해골들의 춤 »이 있다. 흔히 [누렘베르그 연대기](Hartmann Schedel, 1493)라고 부르는 책에 목판화로 뽑아낸 미카엘 볼게무트의 이미지가 유명하다. « 해골들의 춤 »은 중세 유럽의 민속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 년 중 어떤 날 밤이 되면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떠나기 전 해골들이 무덤에서 나와 묘지에서 춤을 춘다. 이미 춤바람에 들뜬 해골들은 무덤에서 일어서려는 시체한테 춤판에 동참하라고 부추긴다. 산 사람과 같이 추는 춤이 아니라 해골들끼리 즐기는 새롭고 이색적인 형태의 죽음의 춤이다.
피터 브뤼겔, [죽음의 승리]
« 죽음의 승리 »로 가장 유명한 이미지는 세상의 종말을 보여주는 피터 브뤼겔의 [죽음의 승리]이다. 전체 화면은 온통 전쟁과 살육, 처형, 전투로 뒤죽박죽 뒤얽혀 혼돈과 무질서의 도가니이다.
왼쪽 저 멀리 산 위로 활화산처럼 불길이 천지를 뒤덮는다. 오른쪽 넓은 바다 멀리 수평선에 배 몇 척이 불길에 휩싸이고, 해안 가까이 배 두 척이 막 침몰하는 참이다. 온통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바다 위 하늘에 까마귀들이 날아든다.
가운데 화면 낭떠러지 위 황량한 고원지대에서 해골 둘이 관을 만드려고 도끼로 나무를 찍고 있다. 그 아래 왼쪽 해골 둘이 폐허가 된 성탑 위 나뭇가지에 매달린 종을 울리면 죽음의 행진이 시작된다. 종은 보통 화재나 위험을 알리는 신호인데 해골들이 치는 종은 죽음을 예고하는 소리로 묘한 아이러니가 묻어난다. 종이 매달린 나무 아래 해골 둘이 관을 묻고 있다. 이러고 보면 해골들이 인간이 할 일을 대신한다. 해골은 나체로 또는 흰 수의를 걸치고 아니면 수도사 복장으로 등장한다.
가운데 화면 왼쪽으로 죽음의 기병대는 바닷가 낭떠러지 아래 마을을 습격한다. 바로 오른쪽에는 반란을 일으키는 마을 사람들을 죽음의 보병대가 난폭하게 진압한다.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살아 달아날 도피처가 보이지 않는다. 그 바로 오른쪽으로 끔찍한 갖가지 처형 장면이 연출된다. 교수형 당한 시체가 밧줄에 두 손이 묶인 채 축 늘어지고, 차형 당한 시체는 바퀴에 묶여 있다. 더 멀리 바닷가 언덕 위 해골들이 화형 하는 장면도 보인다.
가운데 오른쪽 언덕 위 흰옷과 회색 옷을 신교도는 십자가를 쥐고 기도하며 참수형을 당한다. 한 사람은 고목 밑동에 파인 구멍 안으로 죽음을 피해 들어 가다가 등에 화살을 맞는다. 바로 그 앙상한 고목 줄기에 시체 한 구가 쇠꼬챙이에 머리가 꿰뚫린 채 처참하게 내걸려 있다. 오른쪽 낭떠러지에는 해골한테 목덜미가 잡혀 거꾸로 떨어지는 사람도 보인다.
성탑 아래 흰 수의를 걸친 해골 셋이 십자가가 세워진 강둑에 나란히 서서 승리의 나팔을 분다. 나팔 소리는 최후 심판의 날을 알린다. 그런데 죽음의 행진곡은 구슬프기보다는 경쾌한 느낌이 든다. 나팔 부는 해골들 맨 오른쪽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목에 납덩이를 달고 강으로 던져지는 여자도 보인다.
왼쪽 화면 앞쪽 해골을 빼곡 실은 수레에 걸터 앉은 해골은 줄이 끊어진 첼로를 연주한다. 이 수레를 끄는 비루먹은 흰 말 등에 옆으로 올라탄 해골은 오른손에 램프를 들고 왼손에는 종을 흔들며 죽음의 길을 앞장선다. 해골 기수 바로 뒤 큰 까마귀가 엄숙하게 앉아 간다. 이 기수는 요한 계시록에 흰 말 탄 정복(페스트)을 예고하는 기사를 떠올린다.
전체 화면 한가운데 화염에 휩싸인 망루가 차지한다. 망루 아래 왼쪽에는 해골 둘이 그물 끝을 맞잡고 사람들을 그물에 가둔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영혼의 낚시꾼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그물에 걸린 사람들 중에는 나체인 남녀 둘과 흑인 하인들도 보인다. 그물 오른쪽으로 대학살 장면이 펼쳐진다. 피골상접한 말을 탄 죽음의 기병대장은 큰 낫으로 사람들을 가차 없이 쓰러뜨린다. 이 해골 기수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붉은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전쟁을 몰고 오는 기수를 연상케 한다. 보병 해골은 도끼로 사람들을 내리칠 기세다. 큰 낫과 날카로운 창으로 무장한 해골들과 맞서 명예를 걸고 군인들이 하릴없이 칼을 휘둘러댄다. 다 소용없는 몸부림이다.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
죽음의 궤짝 위 꽃핀 정원에서 해골이 북을 치자 너 나 할 것 없이 산 사람들은 모조리 해골들에 내몰려 십자가가 새겨진 뚜껑 문이 열린 궤짝 안으로 떠밀려 들어간다. 하늘 향해 눈을 부릅뜨고 손을 저으며 입을 크게 벌려 구원을 청하는 수도사 말에서 떨어지는 젊은이 땅바닥에 쓰러진 터번 쓴 이슬람교도 벌거벗은 여자도 보인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 모였다. 십자가 새겨진 이 상자는 피신처가 아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살아 나올 수 없고 해골이 되어 나온다.
앞 화면 왼쪽, 해골이 모래시계를 들이밀자 왕은 갑옷 위에 자줏빛 망토를 걸치고 왕관을 쓴 채 체념 하듯 죽음을 받아들인다. 왕 오른쪽으로 거의 꼬꾸라지려는 추기경을 해골이 부축하여 끌고 간다. 그 앞에 젖먹이와 실꾸리를 쥔 엄마가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피골상접한 개가 다가와 젖먹이를 뜯어먹으려 한다.
화면 가운데 왼쪽 언덕으로 벌거벗은 소년이 도망치자 개 두 마리가 쫓아 아이의 뒷다리를 덥석 문다. 이렇게 죽음은 아이들한테도 어김없다. 그 오른쪽에 해골이 단도로 두 손이 묶여 땅바닥에 깔린 순례자의 멱을 딴다. 수도사 복장의 해골 둘이 수녀를 넣은 바퀴 달린 관을 끌고 가면서 관 아래 놓인 다른 시체를 깔아뭉갠다.
화면 맨 앞 오른쪽에는 카드놀이 하던 광대가 술통을 비우는 해골을 보고 흠칫 놀라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또 다른 해골은 식탁 옆 붉은 옷 걸친 젊은 여인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자 여인은 화들짝 놀라 두 팔을 내저으며 달아나려 발버둥 친다. 그 오른쪽으로 해골이 독을 탄 해골 요리를 쟁반에 받쳐들자 검은 옷의 요리사 여인은 두 손을 얼굴에 대고 한쪽 눈을 슬쩍 가린다. 류트 켜는 남자 뒤에 악보 보며 노래하는 여인 뒤로 벌써 첼로 반주하는 해골이 이들이 모르는 사이 이미 등장해 있다. 식탁 위에 던져진 돈이며 여인의 푸른 옷을 보아 창녀임이 드러난다.
불모의 땅 오염된 공기 고여 썩은 물 그리고 온 공간을 유린하는 불,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장치들이다. 곳곳에 죽음의 전사 해골들이 진을 치고 음산한 공간 여기저기 까마귀들이 어김없이 출현한다. 곳곳에 등장하는 십자가는 죽음의 전사 해골들의 상징이다. 해골들의 악기 반주에 맞춰 희생자들의 처절한 절규가 세상 가득 퍼져나간다. 죽음을 대량 생산하는 지옥의 공장이다. 죽음은 산 사람들이 저항하거나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불시에 다가와서 곧바로 낚아챈다. 그만큼 죽음은 급작스럽고 난폭하다. 이런 죽음은 당시 카톨릭을 국교로 삼은 에스파냐 왕가의 압제에 놓인 프로테스탄트 사회인 네덜란드를 상징할 수도 있고, 아니면 십 년을 멀다 않고 유럽을 강타한 정체불명의 난폭한 페스트의 습격을 떠올릴 수도 있다.
화면 전체를 보면 죽음의 행진은 화면 왼쪽에서 출발해 화면 오른쪽 죽음의 상자 쪽으로 향한다. 반면 빛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춘다. 색깔 배합은 차가운 색조와 따뜻한 색조를 대조적으로 섞어 쓴다. 불빛과 핏빛의 붉은색이 압도적이며, 부패와 죽음을 드러내는 검은색과 회색이 주조를 이룬다. 황량한 땅은 황톳빛으로 물들어 있다. 불안정한 초록은 농민의 복장으로 주로 드러난다. 죽음, 유령, 침묵, 늙음 등을 나타내는 흰색도 전경에 많이 쓰인다. 빛, 부, 병, 질투, 배신 등을 상징하는 노랑도 전경에 많이 나타난다.
사형을 집행하고 관을 짜고 시체를 끌고 가며 무덤을 파고 관을 묻는 죽음의 기사 해골들은 야릇하게 입을 비죽거리며 비웃는다. 이런 비생산적이고 악마적인 일을 도맡으면서 해골들은 오히려 이 일을 즐기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죽음은 그저 절망적인 것만이 아니라 하찮기도 하고 한편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죽음에서 빠져나갈 길 없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이런 아이러니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그런데 « 죽음의 승리 »는 « 춤추는 죽음 »에 나타나는 질서 정연한 춤이 아니고 산 사람과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는 장면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 전투의 결말은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승리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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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죽음의 춤은 엄청난 재앙을 겪고 나서 나약한 인간이 집단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려는 예술행위가 아니었을까. 실제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광란의 춤을 추었다고 한다. 교회 앞마당에서 성사극으로 시장을 돌아다니는 거리극으로 나타나고 설교 수도사의 시로 또 민속 화가의 그림으로 표현된다. 죽음을 극복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을까. 산 사람과 해골이 짝을 지어 벌이는 광란의 춤판은 이중적이다. 죽음은 동시에 공격적이기도 하고 쾌활하기도 하다. 묘한 아이러니가 담긴다. 그런데 세도가들한테는 경고를 힘없는 평민들한테는 위안을 주는 « 춤추는 죽음 »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한테 삶의 덧없음을 알리는 주제를 담고 있다.
참고 자료
Bernard Martin, Le Triomphe de la Mort. Pieter Brueghel l'Ancien, 4 février 2017.
Patrick Pollefeys (1996-2018), wwww.lamortdansl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