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샤 pacha Feb 23. 2022

흑사병이 낳은 최고의 걸작 [데카메론]

    [데카메론]에 나타난 피렌체 페스트 

프랑스어 판 [데카메론](2006)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의 «머리말»에서 사랑의 상처로 고통받는 젊은 여인에게 위안거리로 백 편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먼저 "최근의 페스트로 인한 대규모 사망"을 고통스럽게 상기한다. "환희가 끝나면 고통이 뒤따르 듯 고통이 사라지면 기쁨이 찾아온다."라고 하면서 작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단 몇 줄에 걸쳐 "잠시" 고통을 참아내면 이미 약속한 즐거움과 쾌락을 맛보게 될 거라고 여성 독자를 달랜다. 이 끔찍한 재앙을 회상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밝힐 수 없기에 작가의 의무로서 쓴다고 말한다.

 

 보카치오는 1349-1353년에 걸쳐 피렌체에서 흑사병이 한창 진행 중인 기간에 [데카메론]을 집필한다. 그러니까 [데카메론]은 중세 말 흑사병이 낳은 최고의 걸작품이다. 16세기 중반 누군가 "지금까지 써진 책 중에 가장 훌륭하고 유익한 책"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흥미진진하며 살아가는데 도움 되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데카메론]은 나온 지 칠백 년 가까워지는 오늘날도 여전히 읽히는 베스트셀러다. 좋은 책은 읽기 힘들어도 읽고 나면 그만한 보상이 따른다!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


카스타뇨(Andrea del Castagno), 보카치오의 초상, 1450 무렵,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당시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 이상을 앗아간 서양 역사상 최악의 1348-1352년 페스트를 특별히 "흑사병"이라고 부른다. 페스트가 피렌체를 강타한 1348년 페트라르카는 자신의 뮤즈 로라가 당시 교황청이 있던 아비뇽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바로 그해 보카치오는 나폴리에서 피렌체로 되돌아와 전염병 현장을 목격한다. 그는 «머리말»에서 자신이 체험한 흑사병을 작가의 의무로써 종합적으로 보도한다. 

 1348년 페스트를 겪는 피렌체 사람들의 반응과 결과는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와 닮은 점이 없잖아 있다. 그러면 엄청난 재앙의 시련을 견뎌내는데 유익한 이야기에 앞서는 보카치오의 묵시록적인 르포를 따라가 보자. «머리말»을 요약하고 발췌해보았다.


 "피렌체 당국은 페스트 환자들이 도시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시키고 건강 유지를 위한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려고 장엄한 기도 행렬을 조직해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대규모 전염병이 돌 때 취하는 조치는 예나 지금이나 봉쇄나 감금 그리고 격리다. 의학적으로 정확한 원인을 몰라 온갖 유사 치료법이 다 동원되지만 아무 소용없다. 또 전염병에 대한 권위 있는 설명은 종교 차원으로 "신의 노여움"이었다. 뭔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없을 때 신에 기대는 것이 가장 쉬웠다.


 보카치오가 묘사한 페스트의 증세와 돌팔이식 치료 그리고 전염 경로는 이렇다.


 "처음에는 샅이나 겨드랑이에 부기가 생기는데 혹이라고 부른다. 사과나 달걀 만한 큰 혹은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그다음에 이 혹은 팔이나 장딴지에 검고 푸르스름한 반점으로 바뀐다. 이 증세가 나타나면 얼마 있지 않아 죽는다는 확실한 징후이다. 어떤 처방이나 의술도 전혀 효험이 없다. (피렌체 페스트의 경우 치사율이 80%였다!) 병의 정확한 원인을 몰라서 의학을 배운 적도 없는 돌팔이가 떼로 나타나 제각기 유사 치료책을 제시하지만 아무 효험이 없다. 결국 혹이 생기면 대부분은 다른 증세도 없고 열도 나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죽는다. (이것은 그릇된 정보이다. 페스트의 가장 뚜렷한 증세는 고열이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페스트 환자와 접촉하거나 말을 건넨다든지 자주 만난다든지 또는 환자가 입었던 옷이나 사용한 물건을 만졌을 때도 여지없이 전염이 된다. 사람이 사람한테 옮기기도 하지만 사람을 통해 동물한테 전염이 되면 그 동물도 죽는다. (정확한 원인은 몰라도 비말을 통해 전염되고 숙주 동물인 쥐를 통해서 감염되었다는 경험적인 진단이다[1].) 원인 모를 치명적인 병이 무섭게 퍼져나가면서 산 사람들은 겁에 떨게 된다. 이리하여 환자들과 그들이 사용한 물건들을 피하면 안전할 거라고 본다".



    흑사병을 겪는 사람들의 반응과 행동 양식


 페스트나 콜레라 같은 전염병은 병 자체의 폭발적인 전염성과 급작스런 사망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한테 헤어나기 힘든 공포를 심어주었다. 사실 페스트보다 천연두가 천연두보다 말라리아가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지만 그 난폭성과 빠른 진행 때문에 페스트와 콜레라는 인류한테 공포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이런 끔찍한 전염병을 겪는 피렌체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 양식은 네 가지로 나타난다.


 "첫 번째 많은 사람들은 검소하게 살고 무절제한 삶을 삼가면 이런 시련을 견뎌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단체를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환자가 없었던 집으로 피신하여 절제 있게 먹고 마신다. 폭음과 폭식을 피하고 죽음이나 병에 대한 외부의 소식은 일체 듣지 않고 서로 언급하지도 않는다. 음악을 듣거나 건전한 오락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런 생활을 할 수단이 있는 부유한 계층만 가능한 방법이다. 페스트가 부자나 빈자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습격한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생계유지를 위해 사람들과 노출이 많은 직종에 종사하는 하층이 훨씬 큰 피해를 입는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위기도 큰 차이가 없다.


 "두 번째 부류는 첫 번째와 정반대로 실컷 먹고 마시며 즐긴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노래하며 흥겨워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비웃고 조롱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최상의 치유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밤이나 낮이나 이 집 저 집을 몰려 돌아다니며 진탕 마시는데, 그것도 내키는 대로 즐길 거리가 있기만 하면 남의 집에 쳐들어 가서 그렇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더 오래 산다는 희망을 버리고 자기 재산을 버리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대부분 집은 공유가 되어 집 주인이 아닌 남이 그 집이 마음에 들기만 하면 마치 주인처럼 쓴다. 이렇게 방탕한 이들도 가능한 한 환자들은 피한다. 이런 고통과 역경에 빠진 상태에서 공권력은 완전히 무너진다. 당사자들이 거의 다 병으로 죽었거나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공인도 보조인이 부족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이리하여 각 개인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 그뿐이랴. 시를 관리하고 질서 유지를 맡은 고위 관료는 시민을 버리고 가장 먼저 달아났다. 그럼에도 지배계층의 피해가 훨씬 덜했다. 대규모 사망으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지배계층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 왕가[2]나 아비뇽 교황청은 페스트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세 번째 부류는 양극단의 중용을 택한다. 절식이나 절주 하지도 않고 폭식과 폭주를 일삼지도 않는다. 욕구에 맞게 물건을 충분히 이용한다. 스스로 감금하기보다는 손에 꽃이나 향초 또는 각종 향료를 들고서 왕래를 한다. 공기가 시체나 환자 그리고 약이 풍기는 악취로 오염되었다고 보고 이런 향내 나는 것들을 코에 갖다 대면 뇌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정확한 병인을 몰라 공기나 물의 오염에서 생기는 악취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취한 유사 요법은 그 이후 유럽의 마지막 페스트인 1720년 마르세유 페스트까지 몇 세기 동안 이어진다. 피렌체의 열 명의 젊은이들이 2주간 보내는 곳은 공기는 신선하고 맑은 물이 흐르며 향기를 뿜는 꽃들과 나무들로 들어 차 있다.


 "네 번째는 페스트에 대한 최선의 치료법이 없다고 보고 가장 극단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페스트를 피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생각으로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자신의 집이며 영지, 친지며 재산까지 버리고 시골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간다. 마치 신의 노여움은 자신이 물든 죄악을 페스트로써 벌하지 않으며 또 전염병은 피렌체 성곽 안에 있는 사람의 이동만 박살 낼 것처럼 여기고 아니면 종말의 순간이 온 피렌체 안에 아무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서 도망간다".


 바로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열 명의 귀족 계층 젊은이들이 취하는 행동으로 역시 부유한 계층만 선택할 수 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 급속도로 번진 페스트는 도시 주민들이 시골로 피신하면서 전염병이 농촌까지 번지게 된다.


 "위에 말한 어떤 방식을 취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죽지는 않지만 또 누구도 다 전염병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이런저런 의견을 따르더라도 또 어느 곳에 있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서로 피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아무도 이웃한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친척끼리도 거의 서로 만나지 않고 거리를 둔다. 형제자매끼리 서로 버리고 삼촌은 조카를 부인은 남편을 버린다. 심지어 부모가 제 자식이 아닌 양 제 자식 돌보기를 꺼려한다. (여기에 하나가 빠졌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아픈 기미를 보이면 그렇게도 다정했던 애인은 사랑하던 여자를 바로 버린다.) 결국 병 걸린 사람한테는 "정말 드물지만" 친구의 베풂이나 하인의 탐욕밖에 기댈 데가 없다. 턱없이 높은 급여에만 끌릴 뿐인 하인은 그나마 찾기도 힘들다. 게다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몇몇 하인은 고작 환자가 요구하는 하찮은 것을 내밀거나 환자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별 쓸모가 없다. 이런 시중을 들면서 이들은 돈을 벌지만 곧잘 목숨을 잃는다. 이렇게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환자는 보통 때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을 겪는다. 예를 들어 우아한 귀족 부인이 필요에 따라 온 몸을 남자한테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내어야 한다. 또 구호 인력이 부족하여 제때 간호를 받았으면 살아남았을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장례 풍습마저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망자와 인척 관계가 있거나 이웃 여자면 망자의 집으로 가서 그 집안 여자들과 함께 곡을 한다. 망자의 집 앞에 가까운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이 모인 가운데 사제가 집전하여 촛불을 밝히고 진혼곡을 부르며 망자가 죽기 전에 선택한 성당으로 사제들이 관을 메고 운구해간다. 페스트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면서 이런 장례 풍습은 송두리째 사라지거나 죄다 없어진다. 대부분 여러 여자에 둘러싸여 임종을 맞지도 않을 뿐더러 임종을 지키는 사람 없이 홀로 세상을 뜨는 이도 수두룩하다. 가족이 애처롭게 곡을 하고 애통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집단적인 웃음과 농담 그리고 단체 오락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여자는 여성적인 연민보다 보위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열두엇 가까운 이웃이 성당까지 운구 행렬을 따라가는 경우도 드물다. 운구하는 사람들은 존경받는 시민이 아니고 고용된 기층민 출신의 장의 일꾼들이다. 이들은 넷이나 여섯 명의 성직자를 따라 망자가 택한 성당이 아니고 가장 가까운 성당으로 관을 서둘러 운반한다. 성직자들은 장례 미사를 간소하게 드리고 빈 묘지에 곧장 매장한다".


 코로나 위기 중에도 양로원 면회가 금지되고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거나 장례식도 약식으로 치러지는 사태가 수없이 벌어졌다. 자기 뜻대로 죽을 때를 택하기 힘든 일이라 이럴 때 죽으면 불운하다고 볼 수밖에...


 "하층이나 대부분 중류층은 가난해서 자기 집에 억류되어 자기 동네를 벗어나지 않는데 아무 구호도 받지 못한 채 매일 수 천 명(이 숫자도 확실히 과장되었다! 수 백으로 보면 된다.)이 감염되어 죽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죽지만 밤낮 할 것 없이 대로변에서도 엄청나게 죽는다. 이웃은 시체 썩는 냄새를 맡고 죽음을 알아차린다. 이웃은 시체 썩는 냄새가 역겹기도 하고 다른 한편 죽은 이에 대한 연민으로 이렇게 처신한다. 스스로 하거나 아니면 일꾼을 구해 시체를 집 안에서 끌어내어 문간으로 옮겨둔다. 아침에 현장에 도착한 사람은 시체를 헤아릴 수 없다. 그다음에 관을 가져오게 하여 시신을 안치시킨다. 시체가 너무 많아 그럴 수 없을 때는 널빤지 위에 놓아둔다. 그러다 보니 관 하나에 두서너 시신을 함께 넣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매장할 시신이 한 구인 줄 알고 십자가 하나를 구비해 사제 둘이 출동하면 관 서너 개가 뒤따르고 매장할 시체는 여섯이나 여덟 어떤 때는 그 보다 많을 때도 있다. 이런 망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촛불도 조문객도 없이 짐승처럼 죽어간다. 성당이란 성당에는 한 시가 멀다 않고 시체가 몰려들어 예전처럼 한 구당 한 묘소를 할당할 수 없다. 더 이상 매장할 개인 묘지가 부족하면 공동 묘혈에다 수 백 명씩(이것도 수십 명으로 보아야 한다.) 얇게 흙을 덮고는 시체를 켜켜이 쌓아 올린다."


 "이런 처참한 광경은 피렌체 안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다. 피렌체 주변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외딴 시골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농사꾼과 그 가족은 의사의 구호나 하인의 도움도 없이 오솔길에서 밭에서 집에서 밤낮없이 무관심 속에 짐승처럼 죽어간다. 도회인과 마찬가지로 시골 사람도 자신의 재산이나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매일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앞으로 생길 수확이나 결실에는 나 몰라라 하고 현재 가진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비하려 든다. 이들은 수확기가 되어도 농작물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가축도 돌보지 않는다. 버려지다시피 한 가축은 스스로 들판으로 나가 돌보는 사람도 없이 낮동안 실컷 풀을 뜯다가 밤에 우리로 되돌아온다".


 "1348년 3월에서 7월 사이에 난폭한 페스트로 죽었거나 제대로 구호받지 못해 또는 버림받아 죽은 환자까지 합치면 피렌체의 희생자는 10만에 이른다". 


 보카치오가 말한 이 수치도 확실히 과장되었다. 당시 피렌체 인구가 8만 5천에서 9만이고 페스트로 희생된 비율이 30-50퍼센트라고 보면 3-4만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어쨌거나 엄청난 숫자다. 하긴 문학작품에서 과장이 감동의 원천이기도 하다. [데카메론]의 전반부 사랑 이야기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들은 늘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우아한 인물들이다! 

 

이렇게 엄청난 사람이 짧은 기간에 희생된 결과 피렌체는 과연 어떻게 되었나. 보카치오의 탄식을 직접 들어보자. 


 "아, 예전에 광대며 귀족과 귀부인으로 붐비다가 이젠 하잘 것 없는 하인마저 자취를 감춘 으리으리한 궁궐이며 근사한 가옥 그리고 고상한 건물이 그 얼마나 많단 말인가! 오, 적법한 계승권자가 없는 명문 가문이나 어마어마한 상속이며 이름난 부자가 얼마이던가!

(…) 아침에 가족, 동료, 동무와 같이 식사한 생생하고 팔팔한 사내며 아름다운 귀부인 그리고 매력적인 젊은이가 저녁이 되어서는 저 세상에서 고인인 된 그들과 밤참을 나누는 신세가 그 얼마인가".


    ***

 여전히 페스트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1720년 마르세유 페스트 때에도 보카치오가 묘사한 피렌체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페스트의 원인을 종교 차원에서 신의 분노라고 해석하며 전염병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시를 떠난다. 사망자가 폭증하면서 공동 묘혈에 약식으로 매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염병의 공포에 휩싸여 사람들 간에 유대관계가 끊어지는 현상도 공통된 점이다. 그래도 마르세유 페스트 때는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 관리는 한층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 페스트 전문 병원을 확충하고 식료품 공급과 위생 관리를 훨씬 체계적으로 한다.












이전 02화 페스트를 알면 코로나가 보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