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아가는 것

by 호이

오늘의 신청곡: 그렇게 살아가는 것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답을 찾아 헤매이다가
그렇게 눈을 감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곡 허회경 / 작곡 작사 허회경



비 오던 지난 주말, 오랜만에 한 손에 노트북을, 다른 손에 우산을 들고 돌아다녔다. 버스에 오를 때마다 한 손으로는 카드를 찍어야 하니까 노트북을 옆구리에 끼고, 반대 손으로는 우산을 접어서 묶어놔야 하는데 '우산 접기'같은 고급 동작을 하기에는 남은 손이 없네요.(^^) 팔은 왜 두 개죠? 적어도 비 내리는 날만이라도 뚜벅이에게는 최소 3개의 구동 가능한 팔이 필요합니다. 잔뜩 젖은 머리칼을 풀어헤친 우산 때문에 괜한 시비가 붙거나 바지적삼 다 적시고 짜증 나서 미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이리저리 환승하고 옮겨 다니 동안 소 드는 가방에 고작 노트북 하나 더졌다고 팔의 개수를 운운하는 내 상태를 관망하듯 바라보게 되었다. 나약해진 건가? 하루에 두 개 이상 다른 일정을 위해(일명 '두 탕'이라고 한다) 의상 두 벌에 구두, 액세서리까지 담긴 가방(흡사 보따리 장수같았다고 한다)을 메고도 아침 일찍 붙인 속눈썹과 스프레이로 고정해 놓은 머리가 망가지지 않게 바람 부는 방향으로 우산을 방패처럼 펴고 다니던 시간을 생각하면 요즘은 고상하기 그지없는데. 게을러진 건가? 안일해진 건가? 습관적으로 채찍을 쥔다.


어느 비 오던 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초록 불이 켜졌는데 발 앞에 빗물이 고여 있어서 그걸 풀쩍 뛰어넘어 건넜다. 우산을 기울여도 어깨에 걸친 덜한 쇼핑백 속의 옷과 신발 비가 들이치고 젖은 가죽에 뒤꿈치가 쓸려서 까졌다. 문득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싶었. 누구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을 명이 꺼진 뒤의 시간들. 그런 순간들이 있음에도 그 일을 지속시켰던 힘을, 강행하게 했던 이유를 상기해 보려고 애쓴다. 누구도 권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시간들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젊어서 사서 한 고생'정도로 퉁치고 지나가도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비가 쏟아지는 철로를 달렸다. 최근엔 기차를 자주 타게 되었다. 다른 공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태 이상하게도 안정감을 주었다. 눈에 보이는 바깥 풍경들이 머물지 않고 빠르게 지나간다. 해결되지 않은 고민도, 끝나지 않을 생각도 묻어 있지 않은 곳으로 떠나는 좋다. 이것은 일종의 도피인가? 그렇다면 '나중'테 고민을 적재하고 있는 중이니 회피이기도 할 텐데 어차피 무언가를 해결하거나 결정하기에는 기차의 시간은 짧다. 가 내릴 곳이 간이역인지 도착지인지, 지금 하고 있는게 여행인지 일상인지 아직 모른다.


비가 계속 내린다. 팔이 두 개뿐인(다른 사람도 그렇긴 한데) 나약한 정신상태(이전에 비해)에 빠진 내게 우산을 씌워 줄 누군가 마중을 나온다면 비도 오는데 막걸리나 마시자고 해야겠다. 오는 날엔 언제나 비 핑계를 대기가 좋으니까. 이런 생각들을 하느라 차 안에서 머리 기대고 졸 시간이 없다. 이렇게 보내도 되는지 모르는 채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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