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신청곡: 테두리
정답게 웃음을 나누어 마시자
오 우린 충분히 뜨거워질 일이 많잖아
바람이 불어올 때
우리가 얼마나 푸를 수 있는지
마음이 물어올 때
진심을 다할 수 있는지 두 눈을 맞대보는 거야
곡 이고도 / 작곡 작사 이고도
별 일 인 것 같은데 별 거 아니라는 듯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나 얼마 전에 이사했어. 보금자리를 옮기는 과정이 간단하고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존하는가. 이사할 집을 알아보고, 동네가 살기 좋은지 직장과의 접근성과 교통편을 조사하고, 예산과 집값을 짜 맞추고, 더 나은 조건을 견주는 등의 정신노동 후에 실제로 집을 보러 다니고, 짐을 싸고 풀고, 전입신고를 하는 육체노동이 따르는 몸과 마음의 혹사 콜라보. 이 과정을 '이사했어.'로 담백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간단하다고 생각했을 리 없다. 그저 덤덤하고 묵묵하게, 해야 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며 그 모든 것들을 끝냈을 것이다. 그를 보며 가끔은 내가 너무 호들갑스럽고 엄살스럽다고 느낀다. 물건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는 탁자를 내려다보면서 '뭐 필요한 건 없어?' 물으면 '언제든 오라'는 동문서답을 한다.
'저 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쓰러졌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는 어떠한가. 이 사람들이 정말. 그 얘기를 전해 듣고는 요즘 내가 너무 무심하면서 동시에 극성스러웠다고 느낀다. 무심한 건 남에게 그랬고, 극성스러운 건 나에게 그랬다. 얼마 간 못 만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가 다시 깨어나고, 괜찮은 게 맞는지 확인하고서도 한참이 지났다니.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빴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촌각을 다투는 중요한 일이 없었어서 화가 났다. 그렇다고 여유롭고 한가하게 보낸 것도 아니라서 더 화가 났다. 매일이 바쁘다고 느끼지만 정말로, 소중한 누군가에게 그리 오래 안부를 묻지 못할 만큼이었는지.
반면에 별 일 아닐 수도 있는 것에 매사 심각한 이도 있다. 나야나. 거창한 '장래', '노후' 이런 주제는 말도 못 하고, 하다못해 내일 날씨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염려한다. '내일 의상 흰색 원피스인데 비 많이 오면 어떡하지? 역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빗물 튀어서 얼룩지면 어떡하지?'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일어나지 않을 모든 상황을 상상하며 걱정한다. '비 와서 마이크합선사고 생기면 어떡하지? 멘트 뭐라고 하지?' 심지어는 '우산 챙겼는데 열받게 비 안 오면 어떡하지?'까지 간다. 이 정도면 병일까...? 이에 '현재만 생각하라'는 조언을 얻었는데, 조언을 해준 사람이 잠시 생각하더니, '아니다 그냥 생각을 하지 마'라고 말을 바꿨다. 지금 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병이야 병)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파타고니아에 가서 푸른 빙하를 본 사람과 그것을 엽서로만 가진 사람은 얼마큼 다른 생각을 하고, 어떤 다른 삶을 살게 될까? 친구가 지난해 36시간을 날아 파타고니아에 다녀와서 선물해 준 엽서를 보고 있다. 3주라는 긴 시간과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을 그러모아 남미로 떠났다가 돌아왔다. 다녀와서 사진을 보여줬는데, 뭐랄까, 윈도우 배경화면이나 토익 1번 문제에 나오는 사진 같고 친구가 직접 찍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경한 풍경이었다. 감상은 대단히 짧았는데 '또 가고 싶다'였다. 그리고 친구는 정말 또 갈 것 같다.
평소에 맞을 수 없는 종류의 바람이 불어올 때 나는 얼마나 그 바람에 몸을 맡길 수 있는지, 마음이 물어올 때 진심으로 답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