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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09. 2024

무지개 마을

바뀌지 않는 변화

이곳에 올 때  아무것도 필요 없지만

여길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어.


이 마을에서 생활은 살다 보면 나름 만족한 삶을 살아. 주변 환경도 그럭저럭 괜찮고. 근처 산과 바다도 있어 시야가 트이고. 산책할 만한 야산이 병풍처럼 길게 이어지고 소나무숲도 멋지지. 도심 중앙으로 강이 흐르고, 산란철이 되면 물고기가 떼 지어 헤엄치는 모습도 보여. 철 따라 남쪽에서 북쪽에서 날아오는 철새들의 낙원이기도 하지. 


쇼핑이나 문화 공간도 나름 좋아. 인프라가 꽤 갖춰져 있는 셈이지. 다만 타 지역과의 교류가 크지 않았는데 최근엔 점점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어. 이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 직장을 다녀. 월급을 받아도 이 마을에서 거의 소비가 이뤄져. 딱히 다른 곳에 가서 물건을 살 일도 별로 없지. 마을 내에서 돈이 돌고 돈다고 볼 수 있어. 자급자족의 생활에 가깝거든.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면 우린 이 마을을 잠시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다시 눈을 뜨면 곧 잊어버려. 이 마을을 빠져나간 적 없다는 생각이 들지. 늘 그렇고 그런 생활이라는 이들에게는 갇혀있다고 느끼고, 항상 변함없는 일상을 고맙게 여기는 이들에게는 평화의 마을이 되거든.


다만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 더 많이 갖고 싶거나 더 멋진 삶을 원하는 이들에겐 불만이라고 봐야지. 큰 변화 없는 삶이 권태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규칙적인 생활들이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들은 더 크고 넓은 세상을 찾아 큰 마을로 가서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을 보내기도 하고, 실패해서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돌아온 이들 중에는 다른 곳을 가봐도 그게 그것이라며 이 마을이 그래도 편하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일부는 그곳에서의 생활에 실패했지만 이미 이곳의 적응도 힘들어하지. 뭔가 대단한 것을 맛봤는가 봐. 돌아와도 얼마 머물다 다시 떠나더군.


매력적인 뭔가를 찾아 떠나는 이들에게 그 찾고자 하는 것을 찾길 바라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기만의 매력을 다시 찾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해. 한때는 이 마을도 매력적인 마을이었거든. 선사시대의 오래된 벽화도 있었고, 바닷가엔 여러 종류의 고래들도 많았거든. 해변은 또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몰라. 갖가지 조약돌의 크기가 다른 몽돌 해변에 누워 파도소리를 들으면 돌 크기에 따라 포말이 부서지며 내는 소리가 다 달라. 특히 타포니 해안도 있었는데 그 벌집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책을 볼 수 있을 만큼 큰 구멍에 누워서 듣는 파도소리는 정말 자연의 소리 중에서 으뜸이었지.


개발의 이름으로 너무 많은 곳이 지워졌어. 댐으로 수면이 올라 돌에 새겨진 그림들이 지워지고, 해안 매립으로 타포니를 시멘트로 덮어버렸어. 안타까운 일이야. 잘 보존해서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만들면 그게 발전일 텐데.


보존이냐 개발이냐의 문제는 근시안적이고 경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당장의 쾌락 추구 같은 느낌이 들어. 그렇게 많은 상실 후에 마을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각성이 일어났지. 빠름과 높음, 거대함과 유명함 들은 유행을 탄다는 걸.


모든 게 무작위의 세상인데 자기가 노력해서 어떤 가시적 성과를 이룬 것으로 착각을 하기도 해. 물론 본인의 노력이 없진 않아. 그러나 공동체 입장으로, 가치의 평가 기준으로 좀 더 멀리 세상을 보자면 해볼 만한 많은 시도들을 생각해 볼 수 있어.


해돋이와 해몰이 전망대에서 누군가 짧은 문장을 써놓고 갔어. 불타오르는 하늘이 바다에 비친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나 봐. 그 글을 읽고 또 누군가 밑에 다른 글을 써놨더군. 그 글들이 전망대의 방명록에 빼곡하게 책꽂이에 쌓여 흔적의 역사를 만들어. 누군가는 돌멩이를 모아 탑을 쌓기도 해. 무슨 염원인지는 몰라도 앞으로도 평화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한다고 들었어. 또 어떤 이는 나무를 그려. 지구를 위한 마음을 알리고 싶은가 봐.


그런 이상과 꿈이  마을을 더 사랑하게 만들기도 하지. 많은 이들에게 상실의 마음이 깊었던 가봐. 길을 잃었을 때 새로운 길을 찾게 하거든.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난 사람들의 마음에는 반복되는 일상을 별 것 아닌 것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그러나 지겨움이 반복되어야 즐거움의 감동을 맞이하거든. 지루함이 자랑이라고 말하는 게 아냐. 꼭 찾아야 하는 뭔가를 밖에서만 구해야 하는 건 아닐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환상적인 느낌이 왔다가 사라진다면 그 허전함이 어떨까. 처음부터 없었다면 몰라도 줬다 빼앗긴 느낌이라 참기가 힘들어. 있다가 없어짐은 소실되고 소멸된 느낌이거든. 그래 이거야 하고 꼭 쥐기도 하고, 지금까지 내 것인 줄 알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한순간 싹 모조리 뺏겼다고 생각이 들지. 그 상실감은 헤어 나오기 힘들어. 사람을 멍하게 만들지. 그런 감각을 매력이라고 한다면 이 마을은 덜 매력적이야.


남과 비교를 통해 부족하다고 느끼게 하고,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더 행복하기 위해서 덜 행복한 원인을 규정해서 그러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감춰진 목적이 있는 거지. 이득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마을은 참 재미없어. 


더 나은 나를 찾고, 보다 멋진 인생을 살며, 부를 축적하고 모두 내 거 야하고 아무리 주장하고 외쳐도 이 마을에서는 그걸 끝까지 유지하고 보장을 해줄 수 없거든. 원래 내 것이 아니었는데, 내게 아닌 줄 본인만 몰던 거야. 누가 일러줘도 스스로 부정할 뿐이지.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러나 잘 보게. 처음부터 여기에는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이 맨몸으로 와서,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조건을 잊어버린 거야. 기억하게. 여긴 그 어떤 것도 하나도 가져갈 수 없어.


있는 동안 부디 잘 살게. 얼마든지 마음껏 행복하게.  -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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