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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전체

전체에서 나온 부분이 전체

by 노월 Apr 11. 2025

'세상은 말이지 바로 이런 거야'라고 아무리 장황설로 얘기해도 일부분이다.

콕 집어 드러냄은 의도하는 바를 명확히 할지언정 숱한 수사로 언급되어도 부분적 한계다.

그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말해지는 어떤 말이든 전체일 수는 없다. 개념이나 단어로는.

그러나 부족하지만 그렇게라도 그런 식으로 언급될 밖에. 조그만 틈새로 들어온 빛만으로도 방안이 밝아짐이니.


눈먼이의 코끼리 만지기에서 부분의 한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불완전성의 여지에 우리는 영원히 눈을 뜰 수 없어 코끼리 전체를 볼 수 없음을 포기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어떤 이의 절망에 반박할 수 없는 반발심이 생겼지만, 그렇지 않다고 납득시킬 방안이 없다. 다만 그것이 일부긴 하지만 전부를 알기 위한 방편이라고 강변할 밖에.


만지는 행위인 촉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 수 없음이라. 어느 한 부분을 만져 알게 된 느낌을 가지고는 코끼리가 이렇더라고 주장한다면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닌, 그런 면이 있지만 틀렸다고 하기에도 부족한 상황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한편 코끼리를 본 이가 코끼리를 보지 못한 이에게 설명하는 것은 또 어떤가. 나름의 상세한 설명이 나열되어도 코끼리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더구나 코끼리의 외모만 언급한다고 온전한 코끼리냐고 문제 제기를 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코끼리의 울음소리와 단체 행동과 성격 등의 많은 부분에 공백을 둘 수밖에 없다면. 심지어는 같은 코끼리를 본 사람끼리도 코끼리에 대한 이미지가 다를 텐데.


제대로 안다는 말은 참 어렵다. 아마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파악을 해도 전체를 모두 아우를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는 '알 수 없다'는 말로 단정 짓는 말에 수긍하면서 부정하고 싶다. 다만 생각과 인식으로 알 수 없음이지 없는 건 아니라는 위안이 있다.


부분이 전체를 포괄할 수는 없어도, 부분이 전체의 그림 중 하나라면, 부분 속에 전체가 그려져 있다. 생명체의 디앤에이를 복제하여 그 생명체 전체를 복원하는 것처럼. 해서 전체에서 나온 조각은 이미 전체에 대한 에너지와 방향이 내포되어 있다. 


우주에 지구가 있고, 지구에 인간이 살고 있음을 통해 인간은 지구뿐 아니라 우주의 구성으로 이뤄져 있는 거다. 우리가 지구를 넘어 우주를 닮았고 우주와 통하는 이유다. 그 속에서 나와 그 속으로 흩어진다면, 이 모든 건 생사의 과정이요 변화의 순간에 우리가 있다. 지구가 돌고 은하가 운행한다. 먹고 배설하며, 자고 일어나고, 태어나고 죽는다. 우주 속에서 우주가 그렇듯 그 속에서 나와 그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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