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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May 11. 2024

노화의 품격

친구랑 밥을 먹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아침에 갑자기 약속을 잡고 만난 거라 영화티켓을 사기 전이었는데 요즘 꽤 인기있는 영화라 마음이 급했다.

일단 식당에 들어서며 통신사 할인과 어느 좌석이 좋을지 검색을 하는데 식당 종업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 어서 오세요.

- &&식당입니다. 반갑습니다.

- 창가자리 괜찮으실까요?


나의 어머니 나잇대 직원 두 분이 아주 깍듯하게 우릴 맞이하셨다. 가격이 비싼 고급 식당도 아니었는데

돌이켜보면 입장하는 순간부터 정중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그땐 그걸 몰랐다. 지나고서야 아차 싶었다.

나랑 친구는 영화티켓 예매에 정신이 없었고,

그 분들의 인사를 받는둥마는둥했다.

어쩌면 살짝 짜증도 났던 것 같다.

빨리 영화표 끊어야하는데, 어느 자리가 좋은지 어떻게 하면 최대 할인을 받을 수 있는지 검색해야 하는데

자꾸 웃으며 건네는 인사가 부담스럽고 성가셨다.


자리에 앉아 영화티켓 예매를 마치고 식사를 시작할 때 그제서야 스스로 오만하고 방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반찬은 셀프바에서 얼마든지 더 가져다 드셔요.

- 찌개 바글바글 끓었으니까 불 꺼드릴게요?

- 따뜻한 보리차 더 드릴까요?

- 감자전을 방금 갈아 부쳤으니 따뜻할 때 드세요.


직원 두분은 계속 친절하셨다.

쓸데 없는 말은 하나도 없었고 준비된 음식들을 맛있게 먹기 위해 필요한 설명을 딱 적당하게 해주셨다.


- 감사합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그제야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이 나왔다. 천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참 저급하다, 못났다, 품격은 없네 싶어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하루.


문득 팬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고 악수하고 스케줄에 쫓기면서도 사진까지 찍어주는 연예인들이 칭송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달까.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도 그게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화표 예약으로 마음이 초조하니 누군가의 친절한 인사조차 귀찮았는데,

잠도 못 자고 스케줄 때문에 이동하면서 아무리 일의 연장이라지만 팬들의 편지를 받고 눈 마주치고 웃는 게 바른 인성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언젠가 탕웨이가 후다닥 이동차량에 타려다가 팬들이 내민 종이를 흔쾌히 달라고 손짓하여 사인해주는 영상을 봤다. 원래 귀여운 외모와 우아한 목소리 때문에 좋아하던 배우이긴 했지만 그때부터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배우 유해진도 마찬가지다. 무대인사에서 영화관 가장 뒷자리 팬이 부르는 소리에 곧장 달려가는 모습이, 발걸음과 표정이, 예의바른 눈빛이 멋있어서 왜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가 그에게 마음을 사로잡혔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보며 멋있다고 동경하면서도 나는 그날 친절했던 식당 직원분들께 왜 눈짓 한번 따뜻하게, 인사 한번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을까?

그런 태도가 하루 아침에 꾸민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인성은 소리없이 눈처럼 소복하게 쌓이다가 문득 그렇게 의도 없이 묻어나온다.


카페나 식당에서 나가며 뒷사람을 위해 3초 정도 문을 잡아주는 것.

엘레베이터나 길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인사까진 아니더라도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것.

아무리 돈을 주고 서비스를 받는 곳이더라도 직원들의 친절에 최소한 미소로 응답하는 것.

음식이나 음료가 조금 늦게 나와도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짜증내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길에서 부모에게 혼나는 학생이나

우는 아기를 훈육하는 엄마들이 보여도

구경난듯 쳐다보지 말고 모른 척 지나치는 것.

호텔 체크아웃 전 이불정리 등등.


일상 속 사소한 상황들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쌓여 습관을 만들고, 좋은 습관이 품격을 만들고,

품격이 다시 훌륭한 태도가 되어 누군가의 일상에 기분 좋은 바람이 일게 한다.


나도 그런 좋은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품격있는 할머니로 늙고 싶다.


이미 늙었지만 그래서 쉽지 않겠지만 노력해보고 싶다.


보톡스보다 명품보다 스카프보다

꽃이 수놓인 알록달록한 색깔의 질 좋은 가디건보다

더 신경써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주름없이 탱탱 매끈한 피부에 실크 원피스에

아무리 화려한 루이비통 구찌 방도를 툭 걸쳤어도,

남을 쳐다보는 눈빛이나 태도가 천박하면

모조리 소용없다.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마에 눈가에 주름이 좀 있어도

남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에서 품격이 느껴진다.


테이크 앤 꾸역꾸역 기브(take and 꾸역꾸역 give)로

30년 넘게 지내왔지만, 이젠 기브 앤 테이크,

아니 기브 앤 기브의 태도를 취해봐야지.


누구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도록.


품격이 느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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