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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May 09. 2024

행복한 돼지가 될 거야

from 그냥 돼지

한동안 인간관계로 고통 받으며 모든 걸 놓아버렸다.

365일 24시간 하던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오로지 정신건강만을 챙기고자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지냈다.

비빔면, 크림파스타, 엽떡, 치즈김밥, 명란구이.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정말 위가 찢어질 때까지 먹었다.


운동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필라테스도 하고 나름 근력도 하고 하루 30분에서 한시간씩 꼭 걷는다. 하지만 먹는 양이 압도적이니 체중은 늘 그대로다. 보통 60kg에서 63kg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좀 덜 먹은 다음 날은 앞자리가 5를 찍기도 하지만 찰나이고 평균 무게는 61kg 정도 되는 거 같다.

키는 뭐 그렇게 크지 않다.


그나마 57kg 정도 되면 봐줄만 하고

63kg 을 찍으면 턱살부터 처지는 게 저팔계가 따로 없는데 6kg 을 빼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며칠 먹는 걸 조절하고 운동 강도를 평소보다 높이면

4kg 정도가 빠져서 59kg 이 되는데

그러면 어지럽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이완기 혈압이 40까지도

떨어져 손이 달달 떨리는데 내가 노는 사람도 아니고

일도 하고 육아도 하려면 체력이 딸린다.

눈앞이 빙빙 돌아 다시 와구와구 먹으면 힘이 번쩍 나면서 도로 63kg 로 복귀,

언제부턴가 그렇게 무한반복하며 살아왔다.

한때 48kg을 목표로 하던 53kg 시절엔 무슨 기력으로 살았나 싶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체중도 늘어야 움직일 힘이 생기는 걸지도.


아무튼 여리여리 몸매가 갖고 싶어서 발악을 해봤는데

도저히 되질 않는다.

가뜩이나 늙어서 기미에 주름도 자글자글하고

뱃살은 축축, 턱살은 두겹 세겹인데,

바람 후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가녀린 몸매라도 갖고 싶었다. 비록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며 지내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적게 먹고 열심히 운동해서 쭉쭉쭉 살을 빼고 극세사 몸매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런 건 불가능이다.


첫째, 여유가 없다. 트레이너를 두고 pt 받을 경제적 여유도, 체계적으로 장시간 운동에 투자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인생, 하루하루 전쟁같은 일터에서 버티려면 기력이 필요하고 지금처럼 적당한 운동을 하려면 식단조절 따위는 사치다.


둘째, 먹고 싶은 걸 침을 수가 없다. 참다가 폭발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간헐적 단식이 아닌 간헐적 폭식!

몇주 참다가 폭발해서 불닭부터 치즈케이크까지 달리고, 며칠 참다가 폭발해서 엽떡에 초코쿠키, 레드벨벳 쿠키까지 달리고 이걸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요즘은 반나절 참다가 저녁에 폭발해서 라면에 피자에 햄버거까지 달리는 걸로 주기가 짧아졌다.

폭식을 하다보니 당연히 위 건강도 나빠졌고 결국 결심했다. 그냥 먹고 싶은 거 제때 적당히 먹기로......

물론 적당히가 어렵지만.


아이돌 극세사 몸매가 될 수 없는 세번째이자 마지막이자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그렇게 된다한들 내가 예뻐지는 게 아니란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

살만 빼면 예뻐질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어서 365일 24시간 다이어트를 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다가 깨달아버렸다. 57kg까지 빠졌을 때 몰골이 63kg일 때 몰골보다 나아보이지 않았던 거다.

무게가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다리가 짧고 얼굴 골격 자체가 크고 어깨도 넓다. 살을 뺀다한들 예쁜 몸매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그냥 먹고 싶은대로 먹고 살았어도 대세에 지장 없는데

괜히 참고 발악하다 위만 상했잖아?

57kg까지만 빠져도 두턱 세턱은 사라지지만 안색이 잿빛이 되고 팔자주름이 도드라진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더 늙어보이는데

체중을 감량할 이유가 없는 거다.

혈압이나 당뇨 등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말마다 소개팅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부도 아니고 애초에 체중을 조절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거울 속 현재 63kg인 얼굴이 보름달처럼 복스러워 보인다.

포동포동한 볼살이 박보영같고 문채원같다.

Good.

마른 거보다 훨씬 보기 좋다. Very good.


최근 나이가 들수록 적당한 과체중이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를 봤던 게 떠오른다.

이 또한 ’적당'의 기준이 모호하지만 내 기준 63kg 을 적당이라 생각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게다가 하체가 굵을 수록 건강하다는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다. 빈약한 상체에 비해 하체 하나만큼은 자신있으니 되었다(?) 싶다.


그래, 지금이 딱 좋다.

덜 먹을 생각 말고 건강하게 먹을 궁리나 해야겠다.

배가 터질 것처럼 불러도 그 상태에서 그래! 이거라면 더 먹을 수 있지! 싶은 음식을 찾아내는 습관만 고쳐도 승리다.


길게 쓸 생각이 아니었는데

뭐가 켕기는지 또 글이 구구절절 길어졌다.


이상,


그냥 돼지가 행복한 돼지로 거듭나는

심적 과정을 차분히 적어내려 봤는데

글 쓰기 전과 겉으로 달라진 건 1도 없지만

마음만 편안하다.


역시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래도 이게 자기 합리화가 아닌 깨달음이면 좋겠는데

누가 봐도 합리화 같아서

전체적으로 찝찝한 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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