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고립이 주는 안정감

맑음

by 윤성

작년 이맘때부터 시작된 관계의 정리.

시발점은 10년 가까이 친했던 친구들로부터 손절당한 거였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그저 그런 관계들을 모두 정리해버렸다.

정리란 먼저 연락하지 않고 만나자는 연락이 와도 세 번에 두 번은 거절하는 그런 방식으로 진행했고,

그렇게 다 떨어내고 현재 남은 인연은 두어명이 전부.


물론 가족들은 남았고 매일 보는 직장동료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잘 지내기에 인간 관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추억이 쌓인 관계는 가족과 앞서 말한 두 명 정도만 남았다. 근데 사실 그 두명 중에서도 한명은 그만 둘까 싶어 만남을 피하는 중이고 나머지 한명은 일년에 세번 정도 볼까말까한 관계. 서로 말을 조심하고 한번 만날 때면 모든 이야기를 가감없이 주고 받지만 평소엔 서로 사는 게 바빠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는 관계.


관계를 정리하며 느낀 건 관계 유지에 있어 가치관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다. 사람들은 모두 생각이 다르다. 직장 동료들은 물론이고 학부모 모임, 평생 친구가 될 줄 알았던 동기들 심지어 가족들 중에도 나와 가치관이 완벽히 맞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의 가치관은 삶의 태도를 결정하고 사람은 다 다르다. 그걸 깨닫고 인정하다보니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어졌고 고독이 오히려 심적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편은 가치관이 달라도 그 부분을 무시하고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냥 만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안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애써 노력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와 경제관념, 자녀 교육 문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 완벽히 가치관이 일치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는 기대도 없앴다.


무엇보다 더 이상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스스로가 대견하다. 더 이상 관계에 노력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고 혼자서도 충만한 스스로가 뿌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꿈을 꾼다. 이제 다시 이어질 수 없는 친구들과 그 시절 깔깔거리던 꿈, 맛있는 걸 먹으며 디저트는 어디가서 먹자고 검색하던 꿈, 강의시간 사이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던 꿈, 또 아이를 함께 키우며 어린이집 하원하고 이집저집 모여서 함께 육아를 하던 인연들에 대한 꿈도...... 도대체 왜?

쓸데없는 대화에 이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저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후회하고 서로 비교하고 누구 남자친구가, 누구 애가, 누구 부모님이, 누구 집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스트레스 받던 그 시절 인간관계가 지긋지긋해 손절하고 손절당해놓고 왜 자꾸 꿈을 꾸는 건지, 그리움인지, 그냥 자연스레 기억이 남아있을 뿐인건지.


또 조금 걱정도 된다. 언젠가 정말 사람이 그리워져서 손을 뻗었을 때 모두에게 외면 당한다면 그 어찌하기엔 이미 늦어버린 깊은 고독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그래서 또 희망을 가져본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강한 호감으로 약간의 다름 정도는 수용되는, 괜찮은 인연이 가까운 미래에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그래, 고립이 주는 안정감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봐야지.

할 수 있는 게 그것 뿐이니 거기에 집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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