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이 날 부린다

흐림

by 윤성

이틀 남았다. 증상은 어제부터 심각해졌다.

처음에는 옆 자리 동료의 전화받는 목소리가 거슬렸다.

늙은 여자의 코 막힌 목소리.

그렇지만 한껏 예쁜 척 교양있는 척 전화 받는 그 목소리...... 너무 듣기가 싫었다.

목에 가래가 잔뜩 낀 거 같은데 좀 뱉어내든가 하지,

뭘 저렇게 낑낑 앓는 소리를 내며 통화를 길게 하나.

짜증이 났다.

거슬리는 걸 거“실”린다고,

아끼는 걸 “애낀”다고,

물 탱크를 “땡끄” 라고,

텔레비전를 테레비라고 하는 것도 너무 듣기가 싫었고,

함께 밥을 먹을 때 꽉꽉 야무지게 씹어대는 주름 가득란 그 입술 모양도 꼴보기가 싫었다.


문제는 평소엔 그런 게 거슬리지 않는다는 거다.

생리만 다가오면 미쳐버리게 혐오가 올라온다. 혐오의 대상은 그때그때 꽂히는 대로다. 어떤 날은 직장 동료, 어떤 날은 남편, 어떤 날은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여자, 또 어떤 날은 그냥 어디선가 마주치는 식당 종업원, 상담 직원, 주차 자리를 놓고 실랑이가 벌어진 누군가라든가, 요가 선생님까지.

심지어 어떤 날은 화살 촉이 나를 겨냥하기도 한다.

일을 대충 넘기지 못하는 나.

쓸데없이 완벽을 기하는 나.

기한이 많이 남은 일을 굳이 미리 끝내버리려는 나.

그러다 일을 두번세번 하는 멍청한 나.


물론 혐오의 대상들에게 내가 뭘 어떻게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속으로 욕하고 싫어하며, 나의 마음이 괴롭다.

누군가를 혐오하면 하얗던 마음에 누렇고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피는 느낌이다. 그게 싫어 좋아하는 걸 적극적으로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줄이려고 애를 쓰는 요즈음인데 생리 이틀 전부터는 도저히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가 않은 거다. 호르몬의 노예로 산다. 망할 호르몬이 나를 지배해버린다.


중학교 1학년 때 생리를 시작하고 벌써 30년 가까이 매달 생리를 하고 있다. 임신기간만 제외하고는 한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 심지어 나는 그 주기가 굉장히 규칙적이다. 하루도 먼저 하거나 늦춰진 적이 없는 거다. 그럼 꽤 건강하다는 건데 건강한 것과 호르몬은 별개인 건지, 아님 그 주기에 따라 호르몬이 요동을 치니 규칙성과 관계 없이 건강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이틀 전, 어제부터 오만가지 걱정과 불안이 나를 덮치고 있다.


- 깔끔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퇴근한 업무.

기한이 없는 일이다.

다음 주에 출근해서 천천히 처리하면 된다.


- 동료의 듣기 싫은 목소리.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업무 관련 통화를 하는 사람한테 통화를 줄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녀는 전화를 받는 게 주 업무인 사람이고, 그녀가 받지 않으면 내가 받아 시간을 빼앗겨야 한다.

“가래 좀 뱉고 그 끙끙 앓는 것 같은 목소리 좀 자제해주시겠어요?” 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는 순간 나는 미친 년 낙인이 찍히겠지.


- 친구에게 했던 말.

친구라고 해봐야 둘 정도 남았는데 그 중에서 한 친구를 어제 만났다.

경력단절 후 재 취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백수 생활을 하며 우울해하는 친구 앞에서, 나는 월급이 너무 쥐꼬리 같아 때려치고 싶다는 소리를 했다.

사실 이번 주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었다.

하지만 출산 후 시의적절하게 취업한 나를 늘 부러워하고 칭찬하고 북돋아주던 친구인데......

적게 벌더라도 제발 집 밖에 나가서 일이 하고 싶다는 그녀인데, 그 마음을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어 백분 이해하는데 왜 내 주둥이는 때려치고 싶다는 그런 눈치 없게 가벼운 말을 내뱉었을까?

하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말, 다음부터 조심하는 수밖에.

구차하게 다시 연락해 변명이라도 시작하는 순간

상황은 더 이상하게 흘러갈 것이다.


또 뭐가 있지.

이렇게 불안이 마음을 덮을 때면 나는 걱정거리를 찾는다.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는 게 걱정인 사람.

잔 걱정이 없으면 커다란 파도가 칠 것만 같아 두렵다.

그래서 잔잔한 일상에서 굳이 어떤 신경이 쓰이는 포인트를 찾아내 거기에 온 마음을 꽂아두고 걱정 또 걱정,

또 괜찮아 그러다가 또 걱정하기를 무한으로 반복한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마음 속으로 괜찮아 어떡해 만 반복하다가 하루가 가기도 하고, 마음 속으로 휴 괜찮아 그만하자 괜찮을거야 그러고 있는데 누가 말이라도 걸면 버럭!!! 화산 터지듯 폭발해버리기도 한다.


주로 생리 전 일주일이 그러하다.

식욕도 폭발하고 마음도 불안하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미용실 예약을 했다가 취소했다가 다시 했다가 취소하면 다시 당일날 머리를 하러 가고 싶어지고......

요가 원데이클래스도 문의했다가 예약할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불 속으로 푹 꺼지고 마는 들뜬 시간들의 연속.

그러다 생리를 시작하면 몸이 괴로워 또 예민해진다.

찝찝하다. 내 마음에 쏙 드는 팬티도 생리대도 없다.

대부분의 생리대는 까끌거리도 냄새를 잡아주지 못하고 면 생리대는 빨래하다가 자국이 잘 지워지지 않고 팔이 너무 아파서 그만뒀다. 아기 기저귀는 날개가 없으니 고정이 되지 않아 자꾸 옆으로 새기 일쑤.

생리기간 내내 샐까봐 조마조마하며, 내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는 더러운 기분으로 시간을 보낸다.


생리가 끝나고 며칠은 좀 괜찮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또 배란일.

나는 생리통보다 배란통이 심한 편이다.

배란일을 기점으로 앞뒤로 3일 정도씩, 두통이 심하고 소화도 되지 않는다. 뭘 먹어도 체한 느낌이 들고 자외선 차단제만 찍어 발라도 피부에서 허옇게 뜬다.

그렇게 끅끅 거리며 며칠을 보내면 다시 생리전 일주일 구간 시작. 반복.


결국 한달에 3주 이상을 미친 사람처럼 예민하게 굴며 보낸다는 소리가 되는데...... 휴.



토요일 아침, 가족들은 아직 자고 있고 모두 집에 있고

지금 이 순간 안전하고 건강하다.

그래, 그거면 됐다.

돈이 여유롭지 않아도

위층이 아침부터 조금 시끄러워도

다음 주에 출근해서 해야할 일이 있어도

오늘 해야 할 집안일들이 산더미같지만 괜찮다. 괜찮다.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고요한 주말 아침이다.

현재의 고요함에 집중한다. 어제도 다음 주도 일단 잊어버린다.

억지로 생각을 멈춘다.

억지로 잠시라도 멍을 때린다.


이제 일어나 아침을 차려야겠다.

아침은 냉이된장국이다.

봄 내음 가득한 냉이로 몸도 마음도 가득 채워야지.

생리 직전에 배 터지게 먹어 찌는 살은

생리만 끝나면

다 빠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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