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최선은 가끔 내 숨통을 막히게 한다. 아니, 꽤 자주. 엄마와 거리를 두고 멀리서 서로 행복하길 바라는 게 정말 최선일까? 거리가 좁혀지면 어김없이 갈등이 생기고 마니까. 감정이 상하고 마니까. 시골에 사는 엄마가 상경했다. 우리집에 며칠 머물기로 했다. 아이들을 봐주고 살림도 도와주니 나야 언제든 환영이다. 하지만 엄마가 와서 좋고 기쁜 마음은 채 사흘을 가지 못한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자궁이 좋지 않아 면 생리대를 쓰는데 물에 며칠 담가뒀다 한꺼번에 손 빨래를 한다. 이번에도 그렇게 물에 담가두었는데 퇴근을 하고 오니 엄마가 내 면 생리대를 손으로 다 빨아서 햇볕에 널어둔 게 아닌가. 일단 수치심이 들었다. 내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내 생리혈 묻은 생리대까지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기에. 그게 아무리 나를 낳은 엄마라도. 2차로 오후에 집에 놀러왔던 아이의 친구들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었다. 햇볕에 널어둔 손바닥 만한 기저귀들을 보고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3차 분노는 엄마에게 핏자국을 어떻게 그리 깨끗하게 지웠냐 물었다가 대답을 듣고 폭발할 듯 차올았다. 엄마는 비닐봉지에 물을 가득 담고 거기 피 묻은 생리대를 넣어 전자렌지에 돌렸다고 했다. 위생, 환경호르몬. 가뜩이나 생리통으로 몸도 힘든데! 하루종일 엄마에게 집안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소리라도 버럭버럭 지르고 싶었지만 엄마 마음을 알기에 뭐라 하지도 못하고 엄마가 널어둔 생리대를 그대로 싹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이거 못 써.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다 버려야 돼. 나한테 제발 먼저 물어보기라도 하지 그랬어? 버려야 했다. 아까워도 버려야만 내가 오늘 차고 와서 물에 담가 놓은 면 생리대는 엄마가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물론 먹히지 않을 당부도 덧붙였다. 엄마 제발, 제발 집안일 좀 하지마! 엄마는 우리집에 올 때마다 병이 난다. 늙은 몸으로 이불 빨래를 하고, 쪼그리고 앉아 욕실 청소를 한다. 주방 싱크대부터 가스렌지까지 온통 거품칠을 해 반짝반빡 빛을 낸다. 먹다가 먹다가 결국 다 못 먹고 버릴 요리를 하느라 온종일 주방에 서 있는다. 그러고 골병이 나서 병원비로 몇십 만원을 쓰는 거다. 제발 하지 말라고 빌어도 그런다. 기어코 딸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최선을 다하는 엄마는 이토록 자식의 숨통을 막히게 한다. 누구를 위해 그토록 최선을 다 하냐고 물어보고 싶다. 자기 만족이겠지. 결벽증과 강박이 있는 엄마는 평생 나를 그리 키워 나도 오랜 시간 불안에 시달렸다. 서울로 대학을 오고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도 하면서 엄마와 거리가 벌어지자 마음이 많이 편해졌는데, 엄마와의 관계도 훨씬 좋아졌는데...... 여전히 한번씩 엄마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내가 숨조차 편하게 쉬지 못하게 만든다. 늙은 엄마는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걸테지? 사랑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닌데, 자기가 해서 뿌듯한 걸 하는 게 아닌데...... 엄마가 뭘 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나의 마음만 편하게 해줬으면 싶다. 비싼 면 생리대를 다시 주문했다. 출산 후 내게 하는 유일한 사치가 면 생리대인데 엄마 덕분에 지출이 두 배가 되었다. 부아가 치밀어 올라 소리를 지르고 싶다. 사랑하는 엄마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