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사람을 칠뻔했다. 50대 아주머니였다. 순간 너무 놀라 경적을 빠-앙 울렸다. 정말 그 아주머니의 바로 옆에서 브레이크를 밟았기에 기절하는 줄 알았다. 경적 소리가 컸는지 아주머니가 인상을 쓰더니 노려봤다. 일단 나를 노려보더니 신호등을 확인하는 거 같았다. 보행신호는 당연히 빨간불.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그랬겠거니, 신호등을 봤으니 고개라도 살짝 숙여 사과하겠거니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과는 없었다. 아주머니는 끝까지 나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차가 교차로를 지나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설 때까지.
출근하고 자리에 앉아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분노였다. 도대체 뭔 생각을 하느라 신호등도 보지 않고 길을 건너는 건지, 거기 근처에 학교들이 많고 시간대도 등교시간이라 학생들이 천지였는데 어른이 되어 모범은 못 보일지언정 창피하지도 않은지, 잘못해놓고 뻔뻔하게 노려보는 건 뭔지, 또 뭐가 그렇게 화가 나서 내 차가 본인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노려본 건지.
하지만 분노가 사그라들자 그 자리는 불안이 채웠다. 불안도가 높은 INTJ인 나는 오만가지 망상을 시작했다. 그 아주머니가 차 번호를 봤을텐데, 또 회사 주차장으로 내 차가 들어설 때까지 노려보던데 회사로 찾아오면 어떡하지? 주차장에서 내 차를 찾아 타이어에 못이라도 박아두면 어쩌지? 회사로 민원을 넣으면 어쩌지? 본인이 보행신호 초록불에 건넜다고 우기면 어떻게 해야 하지? 도로에 cctv 는 있겠지? 회사 주차장에서 cctv 가 있으니 내 차에 해코지를 하면 그 장면이 담기겠지? 퇴근할 때 회사 주차장 앞에서 기다리지는 않을까? 경적까지 울려야 하냐고 따지면 나는 뭐라고 대답하지? 빨간불에 건너셨잖아요, 아주머니 제가 칠뻔 했어요, 학생들도 많은데 왜 무단횡단을 하세요, 무단횡단 한 사람이 잘못이지 신호에 맞게 가다가 정신 놓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정신 차리시라고 경적 울린 게 무슨 잘못인가요.
이런 가지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니 결국 난 아침부터 극도로 피곤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자꾸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다. 머리로는 안다. 그 아주머니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하지만 마음이 자꾸 불안해 늘 하던 업무도 버벅거렸고, 농담이나 던지는 상사도 짜증이 났고, 아이의 숙제도 평소보다 더 신경이 쓰이고, 밥은 먹었냐 일이 많냐 물어보는 남편에게도 괜히 신경질이 치밀어올랐다. 늘 이런식이다.
무단횡단을 한 아주머니에게 경적을 울려 경고한 건 잘못한 일이 아니다. 그 아주머니의 반응이 무서워 하지 못할 행동도 아니다. 나는 마땅한 행동을 했을 뿐이고 그 그 아주머니도 순간 놀라서 노려볼 수 있는 일이고, 더 이상의 상황을 확장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는 괴롭다. 분노가 커지다가 불안으로 바뀌고 결국 그 마음이 일상까지 잡아먹고 마는 수순이다. 나는 어쩌다 이리도 나약해졌을까? 얼마나 두들겨 맞고 살았기에 약간의 자극에 정당하게 반응하고도 이후 상황을 수십까지 모의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성격이 되었을까?
마지막에는 꼭 자책이 있다. 그냥 참을 걸. 아주머니 보고 멈췄으니까 경적까지는 울리지 말고 그냥 참고 넘어갈 걸. 그런 사람 버릇 고치려고 내가 굳이 티를 냈어야 하나, 왜 어리석게 반응했지? 별의 별 생각이 또 들다가 마지막에는 나는 왜 이럴까 로 맺어지고 마는 못난 마음. 왜 참지 못했을까? 참지 못했으면 그냥 넘기면 되는데 왜 더 확장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감정을 뱉어내는 걸까?
불안과 관련한 여러 책들을 읽고 기사들을 접하고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이런 근성은 고치기가 어렵다. 정신과 약을 먹어도 먹을 때 뿐이고 약을 끊고 얼마가 지나면 어김없이 다시 불안에 떠는 나를 발견한다. 행복하고 싶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사실 아주머니에 대한 이런 망상과 불안은 참 별게 아니다. 어지간히 고민할 거리가 없으면 저런 일을 그렇게 길게 끌고 가냐고 남의 일이라면 나도 그리 조언할 것 같다. 너 배가 불렀구나. 걱정할 게 없어서 별 걱정을 다 하고 자빠졌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심해 같은 마음의 병을 떨쳐내지 못하는 건지. 내 피를 타고 함께 흐르는 아빠의 욕설과 폭력성 때문일까? 툭 하면 도를 아십니까 에 붙잡히는 만만한 외모 때문일까? 대체 스스로도 알게 모르게 얼마나 두들겨 맞고 살았기에 이런 일로도 나는 이토록 흔들리고 마는 걸까?
점심 후, 사무실로 들어와 핫초코 한 잔을 탔다. 마침 탕비실에 과자들이 있기에 달달한 류와 짭짤한 류를 조화롭게 골라 자리에 앉았다. 창 밖으로 늦은 가을 볕이 쏟아지는 걸 보며 핫초코에 과자를 곁들였다. 짭짤한 걸 먼저 먹고 달달한 건 핫초코와 함께 오래오래 공을 들여 씹었다. 조금씩 마음이 가라 앉는 게 느껴졌다. 무단횡단 아주머니에 대한 비합리적 상상들도 아그작아그작 씹혀 식도를 지나고 위와 장을 거쳐 똥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묵은 불안이 약간의 군것질로 똥이 되다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십대의 나는 무얼 먹어도 불안이 가시지 않아 먹고 또 먹었고 그러고도 잠에 들지 못할 만큼 불안해 밤을 지새우곤 했다. 잠을 못 자니 회사에서도 늘 곤두서 쌈닭처럼 굴었고 자연히 사람들로부터 미움 혹은 동정을 받았다. 그게 싫어 또 예민하게 구는 악순화에 빠져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오늘 마흔 몇 번째 늦은 가을의 길목에서 나는 나의 망상이 비합리적이라는 걸 깨닫고 약간의 군것질로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또 기분이 좋아졌다. 활력 넘치고 가뿐하게 주어진 업무를 끝내고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휩싸여 마음 속으로 싱글벙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쩌면 우울이 가고 조울이 온 걸지도.
언제쯤 조울도 가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잘한 돌멩이 따위 개의치 않고 넘길 수 있을까? 혹은 자잘한 돌멩이에 맞는 일이 있더라도 아프면 아프다! 돌 던진 사람에게 당당히 말하고 후회 따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딘가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 그게 아니면 닿을 수 없는 우주 어딘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라도 나와 같은 생각과 나와 같은 불안과 나와 같은 상황에 나와 같은 문장을 써내려 가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치유되는 느낌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이토록 힘이 세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 그게 아니면 닿을 수 없는 우주 어딘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도 나의 존재를 눈치 채면 좋겠다. 사소한 걱정들로 머리를 채우고 비합리적 망상들로 불안해하는 게 당신 혼자는 아니라는 걸 알면 좋겠다. 머릿속은 전쟁터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살아내려고 발버둥치는 게 당신 혼자 그런 건 아니라고, 적어도 여기 한 사람 더 있으니 같이 힘내자고 말하고 싶다. 어느 날은 대충 넘기고 어느 날은 이를 악 물고 억지로라도 넘기고 어느 날은 또 어떤 이유인지 가뿐하게 넘기고 그런 날들이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티끌 하나 묻지 않은 행복을 느끼는 날도 오지 않겠냐고.
그러니 오늘도 넘겨보자고.
살아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