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칙칙할 수도 있지

by 윤성

사랑에 색깔이 있다면 아빠를 향한 나의 마음은 조금 칙칙하다. 분홍이나 민트 따위의 파스텔 톤은 결코 아니다.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하늘색이랄까, 깍아둔 지 시간이 꽤 지난 사과색이랄까? 아빠를 사랑하는 건 분명하다. 남자 형제들만 있던 집안의 막내 아들인 아빠, 아들 조카만 줄줄이 낳던 형들. 그러다 내가 태어났으니 나는 집안의 첫 공주라며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아빠는 나를 이불에도 내려놓지 않고 아빠의 배 위에서 재웠다고 한다. 자정까지 일을 하고 들어와서도 새벽까지 나를 들여다보고 신기해했다고 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몇 가지 장면들은 언젠가 어린이날, 아빠와 둘만 집에 남겨져 울고 있던 나를 아빠가 놀이동산에 데려갔던 일. 어색한 표정으로 둘이 찍었던 사진. 고등학교 시절, 늦은 시각 공부가 끝나고 나는 단 한번도 혼자 귀가한 적이 없었다. 아빠가 늘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보다 더 좋아하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던 아빠의 표정. 결혼식장에서 입장할 때 잡았던 아빠의 손이 좀 떨렸던 거 같은 그런 느낌. 그러니 나는 분명 알고 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고, 나도 아빠를 사랑한다는 것을.


하지만 아빠는 나를 사랑하는 동시에 학대했다. 학대, 이 말을 죄책감 없이 쓸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대, 라는 말을 꺼내면 엄마는 그래도 아빠에게 그러는 거 아니라며 내게 눈을 흘겼으므로. 아빠는 망치를 들고 가위를 들고 어느 날은 밥 그릇으로 어느 날은 냉수가 쏟아져나오는 호스로 어렸던 나를 협박했다. 발로 내 얼굴을 밟아 마룻바닥에 닿았던 반대편 뺨의 촉감이 아직도 선명하다. 눈을 부라리며 쏟아붓던 쌍욕들의 기저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자영업의 인고가 있었을까? 나의 건방진 표정이나 반항이 있었을까? 아니면 아빠의 유년시절에 무슨 결핍이 있었던 걸까? 그건 아마 영-원히 나도 아빠도 알 수 없을 거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 지금도 모두가 떠난 집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아빠를 생각하면 심장이 누가 꽉 쥔 것처럼 아파온다. 설사 아빠가 그런 시간을 즐긴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가 불쌍하다. 마치 칸트처럼, 아빠는 정해진 시간마다 마당에 나가 담배를 태우고, 매일 오후 다섯시가 되면 술을 마신다. 그가 설사 그런 생활을 즐길지라도 나는 그가 불쌍할 수밖에. 실패로 인한 열등감과 분노를 꽉꽉 눌러담고 그가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걸 알기에. 아빠는 억지로 끌고 끌던 사업을 그만두기 직전까지도 일을 성사시켜 나를 내가 원하던 대학원에 입학시켜주고 싶어했다. 결국 실패했지만.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만난 아빠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싶었다. 아빠는 일을 그만둔 후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혼자 집에 있는 점심은 거의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고 집이 망가져도, 천장 벽지가 누수로 흐물흐물해져도, 마룻바닥이 꺼져서 삐그덕삐그덕 소리가 나거나 튀어나온 나무조각에 발바닥을 찔려도 결코 돈을 들여 집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집은 누더기처럼 스테이플러, 청테이프 등으로 덕지덕지 보수가 되어 있다, 마치 아빠처럼. 그런 아빠에게 좀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오랜만에 대접하고 싶었다. 아빠도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내심 좋은 구석도 있었는지 우릴 따라 나섰다.


그런데 식당을 향해 걷던 중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길을 묻는 거였다. 노인들이 모여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 어디어디 라는데 그 어디어디가 어디냐고, 그녀는 미안해하며 물었다. 분명 미안해하며 물어보았다. 불쑥 물어봐서 미안한 마음과 이 동네 길이 예전과 너무 바뀌어서 도통 찾질 못하겠다며 민망해하는 마음이 주름 자글한 얼굴에 묻어나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때 아빠가 버럭! 화를 냈다. 몰라요, 몰라! 모릅니다!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아빠는 손사레를 치며 할머니를 피해서 가던 길을 갔다. 차라리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했으면 나았을까? 멋쩍어진 할머니는 머쓱한 듯 애써 웃었지만 서러워서 울고 싶은 표정이었고, 그녀가 찾던 어디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엄마가 뒤늦게 알려주었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에게 연신 고마워하며 우릴 지나쳤다. 아빠는 도대체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저만치서 엄마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늘 그렇다. 아빠의 저런 절대 고쳐지지 않을 습성이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을 칙칙하게 만든다.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아빠의 피가 내 몸에도 흐르는 걸 알고, 나도 아빠를 사랑하지만 한번씩 이런 순간이 오면 나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칙칙해지고 만다. <파칭코> 에서 자신의 친부가 이삭이 아니라 한수라는 걸 알고 죽어버린 노아의 마음이 그랬을까? 아빠가 약한 사람에게 강한 면모를 보일 때면 나는 어김없이 예솔이의 표정이 되고 만다. <더글로리> 에서 전재준이 추정호를 두들겨 패던 장면을 바라보던 예솔이의 표정. 어렸던 나는 아빠에게 약자였고, 커서 결혼까지 한 나는 아빠에게 강자가 된 것만 같다. 그래서 아빠가 예전처럼 나를 학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 지금도 별것없는 인생이지만 이 정도로 살아내지 못했다면 아빠는 지금도 나를 그 할머니 대하듯 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더 싫은 건 어떤 날 아빠는 길에서 노인들의 짐을 들어주기도 한다는 거다. 싱글벙글 웃으며 기분이 좋은 날에는 누군가의 짐을 대신 들고 그 사람의 집까지 가져다주고 집으로 오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어떤 날 아빠는 두 손 가득 장을 봐서 들어오는 엄마의 짐도 받아주지 않는다. 엄마가 무거운 장바구니를 낑낑대며 들고 들어와 계단을 올라와 마룻바닥을 삐그덕삐그덕 지나 싱크대에 올려두기까지, 아빠는 인상을 쓰고 쳐다보다가 담배를 피러 아예 나가버리기도 한다. 마음대로인 거다. 마음이 좋은 날은 누구에게도 굽신굽신, 연신 싱글벙글 친절을 베풀다가 마음이 조금이라도 꼬인 날은 약자에게 한없이 강해지고 마는 거다.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을 증오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 근데 그게 나의 아빠라니.


그날은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아빠와 웃으며 헤어졌다. 아빠는 결코 바뀌지 않을 걸 알기에, 말해봤자 또 싸우고 쌍욕이나 들어야 할 걸 알기에. 나는 아빠가 극심한 우을증과 ADHD 환자라고 생각하는데 정신과에 가서 약을 좀 먹어보는 게 어떠냐고, 약을 조금만 복용해도 아빠 마음이 훨씬 편안해질 거라고 말할 용기가 없다. 불쌍한 사람. 그래서 아빠를 향한 나의 마음은 언제나 칙칙하다. 아무리 분홍색이나 민트색인척 굴어도, 그런 아빠를 보며 자라 나까지 어딘가 비뚤고 눈살 찌푸려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아무리 아빠를 향한 나의 마음이 파스텔 톤인 척 굴어도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칙칙한 기운은 어찌할 수가 없다. 세상엔 이런 사랑도 있는 거겠지. 가까이서 서로를 챙기며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는 아빠와 딸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칙칙하게 서로 사랑하는 아빠와 딸도 있는 거겠지. 결혼식장에서 딸을 보며 하염없이 딸이 아까워 눈물을 흘리는 아빠들도 있지만 나의 아빠처럼,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상을 팍 쓰고 식이 진행되는 내내 팔꿈치도 다리도 가만히 못 두고 틱처럼 움직여대는 그런 아빠도 있는 거겠지. 그를 향한 마음이 좀 칙칙할 수도 있지. 사랑이 좀 칙칙한 색깔일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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