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한낮 온도가 32도를 웃도는 날씨였다.
우리 회사는 중앙난방에 의지하여 여름과 겨울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마도 건물 관리비를 아끼려고 그러는지 냉난방을 오전 10시~오후 5시만 틀어주고 있었다.
게다가 30도가 넘지 않으면 에어컨을 틀어주지도 않았고,
영하가 되지 않으면 난방을 틀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팀장님은 늘 건물관리인과 냉난방으로 싸우기 일쑤였다.
우리가 너무 더워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요청하면
관리실에선 30도가 넘지 않았으니 못 틀어준다고 했다.
다른 사무실을 보면 회사 내에 에어컨을 따로 구비해서 시원하던데
왜 우리 회사는 따로 에어컨을 사지 않는 건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한낮 온도가 32도인데도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또다시 팀장님이 나서서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저희 에어컨 안 틀어주나요? 너무 더워요"
"죄송합니다. 에어컨이 고장이 나서 수리 중이에요"
"네? 언제까지 수리인데요?"
"아마 8월 중순은 되어야 고칠 거예요"
이럴 수가. 에어컨이 고장 났다니.
당장 다음 주 36도의 폭염이 예고됐는데 에어컨 없이 버티라니.
우리 사무실은 넓긴 했지만 그만큼 사람도 컴퓨터도 많이 있어서
사람사이에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사무실 밖 복도보다 훨씬 더웠다.
그 상황에서도 에어컨을 사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버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음 주 예정대로 폭염은 찾아왔고 우리는 흡사 찜질방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선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응집된 열기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나는 벌게진 얼굴로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며 혼자 파업했고 그저 모니터를 바라볼 뿐이었다.
더위에 약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더위에 지치다 못해 화가 나 주변 지인에게 불평을 늘어놓고
블로그와 카페에 글까지 썼다.
'저 이 날씨에 에어컨도 없이 일해요'
밑에는 너무하다는 댓글과 자기도 똑같은 처지라는 공감과 한숨 섞인 댓글들이 달렸다.
이 날씨에 에어컨 안 틀어주는 곳이 또 있다니 정말 독한 사람들이 많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너무 더워서 차라리 외근을 나가는 영업부 직원분들이 부러웠다.
잠시 화장실 가다가 옆 사무실에 틀어진 에어컨을 보면 그것도 너무 부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에어컨 없이 7월 초까지 버텼는데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이팀장, 우리 에어컨 하나 알아보고 설치하도록 하죠"
드디어 에어컨이 생기는구나!
속으로 환호를 질렀고 팀장님은 누구보다 빠르게 에어컨 업체를 알아보고 예약날짜를 잡았다.
"저희 에어컨 설치하려고 하는데요, 최대한 빨리요!"
그리고 에어컨이 설치된 날, 그 쾌적함에 그동안 더위에 쌓였던 화가 사르르 풀렸다.
쾌적한 사무실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일이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길인데
왜 사장님은 7월 중순이 다될 때까지 버틴 건지 약간의 원망이 다시 올라왔다.
그동안 더위를 먹어 파업했던 업무를 처리하면서
집에선 당연하게 틀어져있는 에어컨인데 그 감사함을 회사에서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더위에 지쳐 날카롭게 가시 돋쳤던 말투도 순식간에 온화해졌다.
그동안 더위에 지쳐 너무 힘들었다며 다들 한 마디씩 하며 에어컨 바람을 만끽했다.
그리고 올해 여름, 출근부터 퇴근까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는 우리는
가끔 에어컨 없이 버텼던 그때를 상상하며 회사 참 좋아졌다며 자조하며 웃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