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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당신,

被告人.

by 글 쓰는 변호사 Mar 15. 2025

대전지방법원과 대전고등법원에서 국선변호인을 맡은 지 7년 정도 되었다.


보통 변호사들은 의무적으로 공익활동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공익활동의 일환으로 국선변호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국선사건만 맡는 국선전담변호인과는 다르다)


형사사건을 하다 보면,

잊을 수 없는 사건 혹은 잊을 수 없는 피고인을 만나게 되는데

친구가 그렇다.


고등법원 항소심 사건의 1심 판결문으로 처음 접하게 피고인은 

스무 살이 갓 넘은 나이였는데, 그동안 수없이 많은 강력 범죄(!) 판결문을 접한 나에게도, 

그 아이의 폭력성은 눈에 띌 정도로 컸다. 성에 관한 가치관도 많이 그릇되어 있었다.


막상 접견을 가서 만나보니,

이제 미성년자 딱지를 막 뗀, 어린 티가 나는 친구였다.


처음에는 반성하는 기미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맞을만하니까 맞은 거고, 때릴만하니까 때렸다'라는 말을 했다.


5초쯤 정적이 흐른 이후,

"그럼 너는 대체 네가 지은 잘못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맞아야 할 것 같으냐"라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때리지 않고, 재판을 받게 하고, 형벌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지 다음 접견까지 잘 생각해 보라고 하고 접견을 마치고 나왔다.


내가 던진 물음으로 짧은 기간 동안 그 친구의 생각과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다음번에는 "내가 때린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다"라고 말하는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역시 역지사지인가.


여러 사건이 병합되는 통에 아주 오랫동안 재판을 하게 되었는데, 

종종 접견을 가면 '다음에는 언제 오시냐, 다른 의뢰인들 만나러 오는 김에 잠깐만 불러주면 안 되냐'라고 말하는 그 친구의 모습에 사람의 애정을 갈구하는 강아지 같은 모습이 언뜻언뜻 비쳤다.

조금 더 일찍 관심과 사랑을, 무엇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변호인으로서의 오지랖은 바람직할 때도 있고, 바람직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사회에는 복지의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를 만나는 시간만이라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그 반성하는 마음이 디딤돌 삼아 그 안에서 사회에 나갈 준비를 잘 마치는 것, 거기까지 바랄 뿐이다.


...


그 친구가 저지른 죄는 무거웠고, 형벌도 마찬가지로 무거웠다.

판사가, 검사가, 변호사가 피고인에 대해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해서,

다르게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직까지도 교도소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가끔 연하장이나 편지로 안부를 전하고 있다.


잊을 수 없는 당신, 부디 안녕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이 결국 우리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린 친구들이 잘못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에게 그 책임이 없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평생 불행을 모르고 살 때,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불행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얄궂은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어른들은, 그리고 덜 부족하게 가진 사람들은 관용과 측은지심을 가져야 한다.


한 번 잘못했다 하더라도 벌을 받고 뉘우친다면 다시 재기할 수 있겠지?라는,

그들이 가지는 희망의 부피와 무게에 따라,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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