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도 대화법 : 1. 협상의 기술
기억에 남는 협상의 귀재가 있다. 글로벌 게임회사인 B사에서 근무할 당시 팀원 D였다. 입사 이후 줄곧 자신은 기회가 되면 미국 본사로 가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직속상관이었는데 기회가 되면 우리 팀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그를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 2030 젊은 세대를 ‘MZ세대’라고 부른다. MZ세대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은 당당하게 하는 세대라고 인식된다(내가 경험해 보니 개인차가 분명히 있지만). 내가 D와 함께 일하던 시절인 17~18년 전만 해도 상명하복의 문화가 지배적이었기에 대부분의 직장인은 수동적으로 일했다. 상관에게 속내를 다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 시대적인 환경에서도 소신 있게 자신의 ‘중요한 속내’를 드러낸 D는 나의 팀원으로서 매우 훌륭했다. 주어진 일은 물론이고 그 이상을 자발적으로 하면서 팀장인 나를 서포트했다. 결국 몇 년 후 미국 본사로 갔다.
D와 같은 협상의 귀재들은 자신의 몸값을 스스로 정하고 원하는 만큼 올린다. 거침없이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하며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간다. 그런 협상의 귀재들을 관찰한 결과, 그들이 특별히 잘하는 것이 세 가지 있었다. 목표 설정, 포지셔닝, 타협이다. 명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가치를 강조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유연하게 타협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이 세 가지 주요 기술은 단지 몸값을 올리는 협상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과정이나 업무 협업의 상황에서도 그 중요성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목표 설정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분명히 하여 집중력을 유지하게 해 준다.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과정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필수적이다. 목표 설정은 SMART에 맞추어서 해야 한다. 구체적(Specific), 측정가능(Measurable), 달성가능(Achievable), 관련성 있게(Relevant), 시간 기반의(Time-bound)이어야 한다. 이 기준을 사용하여 협상 목표를 설정하면, 명확하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연봉 협상에 대한 예를 들어 보자.
- 구체적(Specific): 현재 연봉에서 10% 인상을 목표로 한다. 또한, 원격 근무 옵션과 연간 교육비 지원을 추가 혜택으로 요청한다.
- 측정가능(Measurable): 목표 연봉은 현재 연봉의 10% 인상액을 더한 금액이다. 원격 근무는 주 2회, 연간 교육비는 최소 200만 원으로 설정한다.
- 달성가능(Achievable): 회사의 연봉 인상률 평균이 5%이고, 최근 성과가 우수했으며, 업계 평균 연봉 인상률을 고려할 때 10% 인상 요구는 현실적이다. 추가 혜택은 업계 트렌드와 회사 정책에 부합한다.
- 관련성 있게(Relevant): 연봉 인상과 추가 혜택은 개인의 경제적 안정성을 높이고, 원격 근무는 일과 삶의 균형을 개선하며, 교육비 지원은 전문성 향상에 기여한다.
- 시간 기반의(Time-bound): 협상 목표는 다가오는 연봉 협상 시기인 3개월 내에 달성한다.
이렇게 설정한 목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과 타협이 가능한 것을 구분해서 목표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또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대안도 준비해야 한다. 대안은 협상할 때 입지를 강화시켜 줄 수 있다.
포지셔닝은 자신에 대한 가치를 인식시키는 전략이다. 자신의 역할과 기여도를 분명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장인이라면 특정 업무의 전문가 또는 중요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라는 위치를 확보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창업가나 프리랜서라면 혁신적인 기술이나 독특한 제품,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서 사업이나 브랜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최적의 포지셔닝을 통해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단 하나뿐인 선택’이라는 가치를 각인시킨다.
타협은 단순히 양보의 과정이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와 자신의 필요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협상의 상황이 늘 자신에게 유리하지는 않다.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유연하게 조정하는 타협의 기술은 협상가의 필수 항목이다. 타협은 협상의 세부 조건을 조정하는 과정이지만 때로는 상황이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인내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협상을 진행할 때 예산이나 업무 범위와 같은 세부 내용을 재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만약 그 자리에서 조율이 안 될 경우에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즉시 원하는 대로 조율이 안 되었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수주나 업무 협업과 같은 상황은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겠지만 경력개발의 경우 꽤 인내심이 필요하다.
D는 미국 본사로 가서 일하는 기회를 갖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미국 본사 직원들과의 좋은 관계를 맺고, 한국의 서비스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을 차곡차곡 쌓으며 포지셔닝을 했다. 주어진 자신의 자리에서 좋은 성과를 내며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는 타협의 기술을 발휘했다. 한두 해 만에 자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포기했다면 그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협상의 귀재가 되고 싶다면 각 상황에 맞게 전략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철저한 준비와 전략적인 접근은 우연이 아니다. 체계적인 노력의 결과로 성공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협상의 상황이 닥쳤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로드맵을 짜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왜 그럴까? 나의 경험이다. B사에서 근무할 때 나의 직속상관인 부서장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그 자리에 대한 승진 가능성을 제시했고, 일정 기간 나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가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도망칠까 궁리했다. 그런 경쟁의 상황이 버거웠고, 무엇보다 어떻게 나의 가치를 입증해야 할지 몰랐다. 목표 설정도, 포지셔닝도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 실패의 경험을 등에 업고 이벤트기획사업을 시작한 후에는 목표 설정, 포지셔닝, 타협을 전략적으로 했다. 외국계 기업의 VIP 초청 행사 유치를 목표로 했고, 외국계 기업 문화나 업무 흐름을 잘 이해하는 것과 VIP에 대한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세워 포지셔닝했다. 덕분에 페이스북, 크리테오, 블랙보드, 코치 등과 같은 외국계기업의 행사를 유치했고, 이어 국내 기업의 중요한 행사까지 줄줄이 유치할 수 있었다.
자신이 준비해야 할 협상의 상황을 설계해 보자. 일의 성과를 높이는 것이 목표인지, 중장기적인 경력 개발이 목표인지 설정하고, 각 목표에 따라 포지셔닝 전략을 세우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할 방법을 찾아보자. 준비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 내 몸값을 내가 만족할 만큼 책정해 주는 타인은 없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타인은 없다. 목표와 포지셔닝이 준비된다면 적절한 사람에게 알리고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 기회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