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도 대화법 : 1. 협상의 기술
한 자동차 영업사원이 스피치 코칭을 받으러 왔다. 코칭을 받기 전에 작성한 체크리스트만 봤을 때는 자신감이 없었고 말을 정말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실제 만난 그는 선한 인상에 친화력이 좋고 말하는 것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였다. 특히 그는 경청 능력과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누구라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강점이 있었다. 그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고객을 만날 때 철저하게 준비해서 가는데 정작 만나면 고객의 말만 듣다가 성과 없이 돌아온다고 했다. 영업을 잘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명확한 발음과 명료하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의 장점인 경청과 공감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발휘하고 더 정확한 발음으로 바꾸지 않아도 좋은 성과를 내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중 한 가지가 결론을 세팅하고 말하는 것이다.
결론세팅법은 하루 만에 협상의 고수가 될 수도 있는 말하기의 기술이다. 콜드리딩이라는 말이 있다. 영화·연극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영화·연극 분야에서 오디션 볼 때 즉석에서 받은 대본으로 읽어보는 것을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를 마주쳐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는 기술을 의미한다. 협상이나 영업과 같은 비즈니스 상황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다.
콜드리딩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으로 더블바인드기법이 있다. 더블바인드기법은 결론을 세팅해 놓고 그 결론을 만들기 위한 두 가지의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든다면, 데이트를 신청할 때 “주말에 만날까요?”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 영화 보러 갈까요? 교외로 드라이브 갈까요?”라고 묻는 것이다. 첫 번째 질문은 데이트할지 말지 상대방에게 결정권을 준다. 두 번째 질문은 주말에 만난다는 결론은 자신이 정했고, 상대방에게 데이트 방법에 대한 선택지를 준다. 물론 이렇게 물어도 “아니요, 저는 주말에 바빠요.”라고 대답할 가능성은 있지만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둘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에 집중한다.
직장에서는 이렇게 활용할 수 있다. “이번에 제 연봉이 인상되나요?”라고 묻지 않고 “이번에 제 연봉이 5% 인상될까요? 10% 인상될까요? “라고 묻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영업사원의 경우에는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다. 고객의 말을 충분히 들은 후에 “A 상품으로 계약하시겠어요? B 상품으로 계약하시겠어요?”라고 묻거나 “본인 명의로 계약하시겠어요?”라고 물으면 된다. 보통 계약하기 위해 더 많은 설명을 하거나 계약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서 “계약을 하시겠어요?”라고 물어본다. 만약, ‘고객이 나와 계약한다’라는 결론을 세팅한다면 그런 설명과 질문은 필요 없다.
내가 이벤트기획사업을 시작했을 때 다른 대행사와 비교해서 경쟁력이 없었다. 다른 대행사들은 수년 이상 이벤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행사 수주를 위한 첫 미팅을 할 때 ‘우리 회사가 당신을 돕는다, 이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난다. 나는 당신에게 최고의 파트너가 된다.’는 결론을 세팅했다. 마치 우리 회사에서 대행하는 것이 결정된 것처럼 미팅을 했다. “언제부터 준비를 시작할까요?” 또는 “장소는 호텔이 좋으세요? 이벤트홀이 좋으세요?”라고 구체적인 질문을 했다. 미팅을 마무리할 때는 계약을 할지 말지 연락을 달라고 하지 않고, 구체적인 내용(계약 일정과 장소 등)이 결정되면 연락 달라고 했다. 우리가 이 행사를 하겠다는 결론은 내가 이미 세팅해 두었으니까.
결론을 세팅하는 것은 협상뿐만 아니라 인생의 다양한 부분에 적용할 수 있다. 학창 시절부터 ‘전 세계를 출장 다니는 커리어우먼이 되겠다’는 결론을 세팅해 놓았다. 유럽의 어딘가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함께 콘퍼런스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혼자서 킥킥대며 웃기도 했다. 영어로 한 마디로 못하는 영어무식자였으니까 웃을 수밖에 없었다. 30대 초반, 미국으로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다니던 어느 날, 결국 그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내 고향은 경북 포항이다. 5분 거리에 바다가 있는 작은 도시의 작은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상경하던 날 두 뺨으로 맞은 서울의 찬 바람은 차갑고 매섭고 낯설었다. 그때부터 또 하나의 결론을 세팅했다. ‘이 낯선 서울땅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 나의 성공스토리를 책으로 써서 금의환향한다’였다. 일단 책을 쓰고 있으니 금의환향할 일만 남았다.
나는 많은 결론을 세팅해 놓고 달려왔다. 8년 전, 가장 불행했던 시기에 “나는 행복하다”라는 결과를 세팅해 두었더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작가가 되어 행복한 시기를 맞게 되었다.
결론세팅법은 아이들을 키울 때도 도움이 된다. 보통 부모들이 자기 자녀에게 공부 가르치는 것을 힘들어한다. 가르쳐도 잘 모르면 화가 난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화가 나는 일이 드물다. 한글이나 숫자 공부 정도는 머지않아 다 알게 될 것들이라는 결론이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모르거나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화나 날 일이 없다. 그냥 기다려 주면 될 뿐이다.
자신의 하는 일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결론을 세팅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수강생들에게 결론세팅법을 알려주고 작성해 보라고 하면 어려워한다. 무의식적으로 결론에 대한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다.
결론세팅법을 훈련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아주 작은 결론부터 세팅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 식사는 OO과 함께 한다’는 결론을 세팅했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으면 된다. “오늘 나랑 저녁 먹을래?”라고 물어볼 필요는 없다.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 오늘 저녁에 특별히 먹고 싶은 메뉴 있어?”라고 물어보고 약속을 잡으면 된다. “오늘 저녁에 특별히 먹고 싶은 메뉴 있어?”라는 것은 설득의 기법이다. 이 설득 기법은 다른 글에서 다루어보겠다.
자신의 5년 후 모습에 대한 결론을 세팅해 보자. 일 뿐 아니라 개인적인 목표나 일상의 모습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기록해 보자. 이 결론을 세팅하다 보면 지금 당장 뭘 해야 할지도 알 수 있다. 협상의 결과도, 우리의 미래도 우리가 세팅한 결론을 향해 흘러간다. 이 과정을 반복하고 습관이 되도록 하면 협상의 고수, 절대 멀리 있지 않다. 인생의 해피엔딩도 당연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