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세 권을 완독하며
몸살이 심해서 며칠 아팠다. 앓아누운 김에 소설책 세 권을 읽었다.
<배움의 발견>은 1년에 걸쳐 완독을 시도했으나 2/3 지점에서 멈춰 있던 책이다. <아몬드>와 <위저드 베이커리>는 마지막 책장을 분명히 덮었는데, 완독 하지 않은 듯한 이상한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초등학교 때 -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학교 시절 - 전과를 펴면 맨 상단에 '주요 요약'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 다 아는 내용 같은데 그대로 시험을 보면 많이 틀릴 것 같은 느낌, 그런 찜찜함이 계속 있었다. 책꽂이에서 그 책들이 보일 때마다 꼭 다시 읽어야지 했던 책들이다.
세 권의 책을 완독 하며,
역시 명작이다. 놀라운 필력이다. 어떻게 이렇게 상상할 수 있을까. 나라면 이렇게 이어가 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오랜만에 '책 읽는 재미'를 느꼈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책이 많지 않았다. 유일한 전집은 위인전이었고, 무료함의 끝 자락에 있을 때면 위인을 한 명씩 만나곤 했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와보니 위인전집이 다락방의 한 구석으로 치워져 있었다. 그때부터는 무료함을 달래려면 좁은 다락방으로 기어올라가야 했다. 다락방에서 책을 읽다가 잠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꿈에서 이순신 장군의 부하가 되기도 하고 나이팅게일이 되기도 했다.
대단한 다독가도 아니고 어려운 책을 척척 읽어 내는 지식인 클래스는 더더욱 아니지만, 책은 늘 친구 같은 존재였다. 숨도 안 쉬며 읽어 내려갔던 시드니 셀던의 소설들, 문장 하나하나에 가슴 설렜던 알랭드 보통의 소설들, 그리고 제임스 알렌, 데일 카네기... 내 인생을 변화시킨 자기 계발서들.
인생에서 어려운 숙제를 만나면 책 속엔 언제나 답이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책이 좋았다.
그렇게 마냥 좋기만 했던 책이 지난 몇 해 동안은 참고서였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육아서를 읽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기 위해 필요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정보를 찾고 자료를 모으기 위해 책을 읽어 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빠듯했다. 가끔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며 갈증을 채우려 했지만, 허겁지겁 읽느라 책 속에 빠져들지 못했다. 그렇게 책 읽는 재미를 잊고 지냈다.
예전 직장에서 회사 생활을 참 재미없게 하는 한 팀원이 있었다. 회사에서 친한 동료도 없었고 승진에 대한 욕심이나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의욕도 없어 보였다. 그저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무슨 재미로 회사를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그녀에게 물었다.
"OO 씨는 무슨 재미로 회사 다녀요?"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과장님, 저 통장 몇 개 있는지 맞춰 보세요."
"글쎄요..."
"저, 통장 5개 있어요. 저는 저금하는 재미로 회사 다녀요. 통장에 돈이 쌓일 때 가장 행복해요."
돈 쓰는 재미, 성취하는 재미, 동료들과 노는 재미로 회사를 다녔던 나였기에 '통장'이라는 대답이 놀랍도록 신선했다. 늘 잔잔했던 그녀의 표정이 그토록 해맑을 수 있다는 사실은 더 신선했다.
직장 생활뿐 아니라 '재미'는 순간을 살아가는 큰 이유가 된다. 나에게 책 읽는 재미도 그렇다. 내가 잊고 살기에는 나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가 안 되는 것이었다.
필사가 나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은 책으로의 연결이다. 필사할 소재를 고르기 위해 책꽂이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책등을 쓸어내리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책들이,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책장 앞에 서서 읽기도 하고,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읽기도 하고, 몇 페이지 넘기다 보면 가슴이 몽글몽글해지고 얼굴에는 미소가 차오른다.
책 읽는 재미를 되찾아서인지, 요즘 느끼는 무기력에 대해서도 좀 더 넓은 마음을 품게 되었다. 앞만 보고 내 달리던 삶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여유의 시간으로 여기기로 했다. 너무 허리띠를 풀어버려 삶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큰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이 시기와 잘 지내보기로 했다.
필사가 주는 두 번째 선물은 뭘까 기대하며 재미있게 읽을 다음 책으로 뭘 고를지 생각해 본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떠오르고, <빨간 머리 앤>도 떠오른다. 그 책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빙그레 웃음이 난다.
[오늘의 필사]
경제학가 E.F. 슈마허는 저서 <굿 워크>에서 서구 사회에 널리 퍼진 '자유에의 갈망'을 시적으로 묘사한다.
나는 끝없는 경쟁에 내 삶을 바치고 싶지 않다.
나는 기계와 관료제의 노예가 되어 권태롭고 추악하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바보나 로봇, 통근차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일부분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좀 더 소박하게 살고 싶다.
나는 가면이 아닌 진짜 인간을 상대하고 싶다.
내겐 사람, 자연, 아름답고 전인적인 세상이 중요하다.
나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글은 1970년대에 써졌지만 직업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이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원인인 만성 과로는 하루도 멈출 날이 없고, 하루 종일 스트레스와 복잡하고 긴 출퇴근 전쟁 때문에 녹초가 된 채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소파에 파묻혀 TV를 보는 게 고작이다. 취미생활? 친구와의 약속? 가족 간의 대화? 피곤이 모든 것을 잠식한다.
- '인생학교 시리즈' 코먼 크르즈나릭의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 중에서
P.S. 8년 만에 다시 펼쳐본 책이다. 가면이 아닌 진짜 나를 상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