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해도 강력한 '필사'의 힘
작년 4월, 브런치스토리에
<무기력해서 필사를 시작했다>라는 브런치 북을 만들었다.
당시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글쓰기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머릿속에 있던 샘이 전부 말라버린 것처럼,
단 한 문장도 쓰기가 어려웠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막막한 시간.
'이럴 땐 쉬어야 하나?'
'아니면 억지로라도 써야 하나?'
나의 선택은 '쉬지 않고 글쓰기'였다.
내 글은 쓰기 어려웠기에 필사를 시작했다.
필사를 아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노트가 보이면,
잠깐 짬이 나면,
시간이 없으면 건너뛰는 날도 많았다.
설렁설렁, 대충, 적당히.
글 쓰는 감각,
타자를 치는 감각이 녹슬지 않을
딱 그 정도.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없어서
자유로웠다.
그렇게 필사와 글쓰기 사이를 오간 지
두 달쯤 되어갈 무렵,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그냥 본능에 내맡긴 채 쓴 글 하나의
조회수가 폭발했다.
'일잘러의 대화법 VS. 일못러의 대화법'이라는
글을 통해 다양한 제안을 받았고,
한 출판사와 출간 계약도 맺었다.
그래서,
'무기력해서 필사를 시작했다'는 브런치북에는
8개의 글이 전부이고
지독했던 글쓰기 슬럼프는
그렇게 나가떨어졌다.
만약 지금,
글쓰기 슬럼프를 겪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글쓰기를 멈추지 마라.
쓸 수 없다면, 그냥 따라 써라.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어떤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좋아하는 문장을 필사하며
쓰는 행위 자체를 즐겨보기를.
그렇게 손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신들린 듯 써지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 나는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글이 안 써지는 날은 소설을 읽고,
가벼운 필사를 한다.
P.S. 이 글을 빨리 쓰고 싶었는데 신간 원고 쓰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다. 세 번째 책이 출간되었지만, 곧 이은 네 번째 책의 원고 작업으로 여전히 정신이 없지만. 혹시 글쓰기 슬럼프에 빠진 누군가에게 이 글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급히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