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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

잘 당하는 것도 실력

by 분홍소금

내가 살았던 시골 동네는 집성촌이었다. 타성(성씨가 다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개 같은 성씨를 가진 일가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사촌과 육촌이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것이 흔했다. 나의 큰 집 즉,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사촌 언니와 오빠들이 사는 집은 우리 집에서 세집 건너에 있었다.


우리 엄마는 큰 어머니의 손아래 동서로서 할머니 보다 큰어머니의 매운 시집을 살았다. 큰어머니는 툭하면 엄마를 불러서 힘든 집안일을 시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의복 빨래를 비롯하여 이불빨래 다림질 등을 종일토록 해야 했다. 큰어머니는 동네에서도 드세기로 유명해서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심약한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시키는 일을 잠자코 하는 것 밖에 없었다. 다른 선택은 꿈도 꾸지 못했다. 나중에 엄마한테 왜 그렇게 살았냐고 여쭙자 엄마는

‘이 집에서 살라몬 별 수 있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제.’ 했다.


동네에서 사뭇 떨어진 곳에 외딴집이 한 채 있었다. 그 집에 가려면 산길을 따라 한참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 집에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는데, 그 할머니가 바로 우리 외할머니다.


홀로 사시는 외할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알고 계셨다.

딸의 시집살이에 애가 타서 노심초사하시는 외할머니를 만난다면 바람과 새와 나비와 벌이라도 소식을 전해주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했으리라.


큰어머니의 말도 안 되는 악행(?)을 들으신 외할머니는 분해서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지만 그분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외할매가 우리 큰어매 좀 말리 봐라” 하면

긴 한숨을 내쉬며

“출가외인아이가.” 하셨다.


그분들은 가난하고 못 배운 탓에 무시당하고 사는 게 일상이셨다. 그들에겐 알랭 드 보통의 버전으로 말하면 큰 소리 칠 ‘상징’이 한 개도 없었다. 빌어먹을!


나는 그분들이 무시당하며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몹시 부끄러웠다. 커서는 그런 환경이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어쩌다보니 가진 것 없이 나이만 들었다. 어딜 가든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거나 주목해서 보아주지 않는다. 아줌마라고 부러 큰소리로 부르며 어쩌구저쩌구를 날릴 때 ‘이 인간이 나를 무시하는 구나’ 기분이 더럽기까지 하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 자존심이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무시를 받으니 부모님 생각이 났다. 평생에 무시와 조롱을 있는 대로 받았지만 그 환경에서 도망가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내신 분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불안하고 두려운 이유의 상당수는 무시와 조롱을 받기 싫어서 그런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시와 조롱을 잘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면 두려울 일도 불안할 일도 없지 않을까. 최소한 줄어들긴 할 것이거늘.


우리 부모님은 배운 것 없이 무식하고 가진 것 없이 가난했던 탓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 따위를 못 하셨다. 오히려 일가친척을 포함하여 글자 깨나 안다는 눈 밝은 사람들에게 자주 부림을 당하고 속임을 당했다.


그럴 때마다 그분들은 원망이나 분노보다는 그냥 견디셨다. 그런 모습이 오늘을 사는 내게 뜻밖에 살아있는 교육이 되고 있다. 살다보면 무시 받을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럴 때 잘 당하는 것도 실력이고 실력이 있어야 잘 당할 수 있음이다.


이세상에서 어떤 훌륭한 사람들은 불의에 저항하고 투쟁하여 귀감이 되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힘없이 당하고 짓밟히며 살지 않았던가.


우리 부모님이 삶에서 보여 주신 것처럼 잘 당하자고 생각하면 두려울 것도 불안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무시와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꿋꿋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 이 또한 부모님이 남겨 주신 귀한 유산인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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