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

존재의 가벼움

by 꿈꾸는 연어


퇴원한 동생은 주말까지 친정에 있기로 했어. 집에 도착한 순간 묘한 냄새가 풍겼어. 커다란 통에 사골이 가득 담겨 푹 고아 내느라 습도가 높아져 있었고. 일단 물기 가득한 모든 창문을 열어두고 제습기를 켠 다음에 가져온 짐을 정리했어.


엄마는 집안일에 능숙하지 않았어. 내가 어릴 땐 가까이 사시던 외할머니께서 자주 오셨지. 부모님은 쉬는 날 없이 항상 같이 계셨는데, 그러는 동안 동생들을 챙기는 건 내 일이었고 매일 동생들의 보호자로 자라야 했어.


대학 입학을 앞두고 미팅에서 만난 너는 컴퓨터를 잘 다뤘어. 나와는 너무도 달랐던 너를 나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재미 삼아 동생과 명동에 있는 사주카페에 갔을 때, 사주를 봐주던 사장님이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어.

"그런데 지금 만나는 남자를 동생한테 양보하면 어때? 언니는 이 남자 아니라도 더 좋은 사람이 있을 테니까."

불현듯 그 말이 기억나.


문예창작 전공 당시 상으로 교수님께 받은 책

대학에서 소설 수업에 교수님께 선물 받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꺼냈어.

책 표지 안쪽에 교수님이 적어 준 글귀


퇴원 후 집으로 온 여동생이 쉬는 동안에 나는 씻을 여유도 없이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했어. 그걸 보던 동생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하더라. 그 말이 지금 왜 필요하지 생각해 보았어. 그러다 문득 동생이 사는 세상내가 사는 세상과 다르다는 걸 알았어.

우리가 뛰어든 삶이,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도 달랐던 거야. 오래전 사주카페 사장님이 걱정했던 건 뭐였을까? 동생은 이미 결혼을 했고, 내 곁에는 아직 그 좋은 사람이 없는데. 이렇게 우리가 사는 다른 세상, 그것은 이내 아리더라.


병원 힐링가든에서 만난 봄

삶은 성장을 위한 과정이고, 선택하기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데 왜 나는 그대로인 것만 같을까. 새로운 도전으로 작사를 시작했고, 또 다른 취미생활을 갖게 되었던 내가 사는 세상에는 원래 없었던 거야.


음악, 그것은 문장의 부정이며, 음악, 그것은 반(反) 언어이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10~111쪽.


네 앞에서 가볍고 싶던 그때는 끝도 없이 무겁기만 하더니. 이제는 또 너무 가벼워. 나의 음악, 그것은 삶에 대한 긍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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