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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바스코샤, 에반젤린과 블루노스의 고향

민재 미첼 mjmitchell

by 민재 미첼 MJ Mitchell

1. 노바스코샤, 에반젤린과 블루노스의 고향

노바스코샤 위치

내가 노바스코샤 Nova Scotia로 이민 간다고 했을 때 (2009년), 고교 동창 중 한 명은 거기가 소련이냐고 물었다.

그 친구에게 노바스코샤는 오래전에 사라진 소비에트 연방의 변두리 도시 이름 같이 들렸나 보다.

아무튼, 나는 소련도, 러시아도 아닌 캐나다 노바스코샤로 이민 왔다.

마치 세상의 끝에 와 있는 것 같다. 태평양이 한가운데 있는 세계지도를 보면 진짜 세상의 끝처럼 보인다. 북대서양 연안의 작은 반도인 노바스코샤는 한국보다 12시간이 늦다. 노바스코샤는 캐나다의 10개 주 Province 중 하나이고 크기는 대략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넓다.

북대서양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늘 서늘하고 습하며 높은 산은 없고 호수가 지천이다. 특이하게도 분명 섬은 아닌데 사방이 바다인 듯한 착각이 든다. 캐나다 대륙의 끝에 간신히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도가 도로 하나로 대륙과 연결되어 있어서 오래전부터 바닷길이 발달했다. 그래서인지 돛을 높이 펼친 범선은 노바스코샤 주의 상징이고 이름도 낯선 핼리팩스 Halifax 가 중심도시이다.


핼리팩스 Halifax

노바스코샤는 라틴어로 '새 스코틀랜드( New Scotland)'라는 뜻이다.

최초의 이민자들은 프랑스인들이었고 이들은 스스로를 ‘아케디안 Acadian’이라 불렀다. 그러나 영국과의 전쟁 (1713년)에서 진 그들은 멀리 미국 남부에 있는 ‘루이지애나’까지 추방당했다. 롱펠로우 Longfellow의 장편 서사시 ‘에반젤린 Evangeline의 노래’ 에는 이런 아케디안의 슬픈 역사가 담겨있다.

서쪽 야마우스 Yarmouth에서 북서쪽 애나폴리스 계곡 Annapolis valley을 거쳐 핼리팩스까지 이어지는 '에반젤린 트레일 Evangeline Trail'에는 이런 역사가 담겨있다. 울프빌 근처에는 에반젤린에 관한 역사박물관이 있다. 지금도 노바스코샤 곳곳에는 프랑스 깃발 귀퉁이에 별을 새긴 아케디안의 깃발을 볼 수 있다. 이제 아케디안의 후손들은 그들을 쫓아냈던 이들의 후손과 평화롭게 살아간다. 더 이상 차별은 없다. 노바스코샤는 영어를 주로 쓰지만 공식적으로 영어와 불어가 모두 공용어다.


펀디만 Bay of Fundy

세계에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가장 크다는 펀디만 Bay of Fundy 은 붉다.

물이 빠지면 넓게 펼쳐진 붉은 진흙뻘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서해안은 썰물 때 검은 뻘이 드러나지만 펀디 만의 색은 그것과 다르다. 주황색에 가까운 빨강이다. 세계에서 조수간만의 차이가 가장 큰 곳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기도 했다.

조차가 큰 여러 가지 환경적, 물리적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혹시 노바스코샤가 달 Moon과 가까워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봤다. 보름밤이면 달의 무게가 느껴지고 달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 코요테의 하울링을 듣던 보름밤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 함께 살고 있다는 연대감을 깨닫는 순간이었고, 커다란 달을 보고 함께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누구든 울부짖으며 감탄하게 만드는 크고 밝은 달이 바닷물을 세게 끌어당기는 탓에 물이 멀리 나가고 깊게 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노바스코샤에서는 어렵지 않게 여러 동물을 만날 수 있다. 길들이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여우도 간혹 밤 산책을 나온다. 엉덩이만 하얀 키 큰 사슴이 훌쩍 담장을 넘어와 풀을 뜯기도 하고, 새끼를 여럿 거느린 꿩이 목청을 높여 존재감을 뽐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발목이 굵은 말들이 천천히 목장을 걷고 살찐 소와 양들이 풀밭을 몽실몽실 떼지어 다닌다. 이 풍요로운 자연의 힘 역시 달의 힘 덕분인 것만 같다.


울프빌 풍경

애나폴리스 계곡 Annapolis valley 이 시작되는 지점에 작은 마을 울프빌 Wolfville 이 있다.

오랜 역사의 아케디아 Acadia 대학교(1838)를 중심으로 발달한 이 작은 마을은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펀디 만과 애나폴리스 계곡, 게스퍼로우 강 Gaspereau River에 둘러싸여 볼거리가 많은 이곳은 손꼽히는 관광지이다. 마을을 관통하는 중앙 도로를 따라 늘어선 빅토리아풍의 목조 주택들이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이 오래된 작은 마을은 특별한 보호를 받는 중이다. 마을 안에는 페스트 푸드 식당이 들어올 수 없고 오래된 건물은 외관을 해치는 보수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울프빌은 언제나 그대로다.

마을 주변의 과수원에는 봄이면 사과꽃, 배꽃, 복숭아꽃이 곱고 가을이면 나무마다 과일이 열리고, 들판에는 황금빛 호박이 가득하다. 울프빌 주변 나지막한 언덕에는 포도밭도 많다. 이곳에서는 와인은 물론이고 캐나다 특산물 중 하나인 아이스 와인 Ice Wine을 직접 생산하는 와이너리 Winery가 많다. 이따금 와이너리 투어를 하는 귀여운 분황색 이층 버스를 볼 수 있다.


울프빌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작은 마을 윈져 Windsor아이스하키 Ice Hockey의 고향이다.

마을 입구에는 'Small town of big first'라고 쓰여있는 커다란 입간판을 볼 수 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열린 최초의 아이스하키 경기는 이제 전 세계가 열광하는 캐나다의 대표 스포츠가 되었다. 캐네디언에게 아이스하키는 커다란 자부심이다. 국제대회에 나가서 다른 경기는 다 져도 아이스하키 지는 것만큼은 견딜 수 없는 굴욕으로 생각한다. 태권도의 종주국인 대한민국 사람인 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블루노스 Bluenose

노바스코샤에서는 어디를 가든 작고 예쁜 어촌 마을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남부 해안 마혼 베이 Mahone Bay 근처에는 특별한 풍경이 있다. 작은 마을 루넨버그 Lunenburg로 들어서면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 한 착각이 든다.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고풍스러운 목조 주택들은 세월의 흔적이 쌓여있고 늙었지만 초라하지는 않다. 사람이 떠난 집은 쉬이 초라해지고 을씨년스럽기 마련이지만 이곳의 오래된 집에는 대를 이어 삶을 이어가는 소박한 어촌 사람들이 살기에 생기가 돈다. 그래서 마을은 고풍스럽게 빛나며 사람과 시간의 조화가 아름답다.

루넨버그는 범선 블루노스 Bluenose의 고향이기도 하다.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 배는 국제대회에서 17년 동안이나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무동력 배'라는 타이틀을 지켰다. 캐나다의 10센트 동전에 그려진 모델이 바로 이 멋진 배 블루노스다. 조선업이 발달한 노바스코샤의 과거가 현재와 함께 공존하는 이곳에서는 여전히 목선을 건조하고 수리한다.

햇살 좋은 날, 길가 레스토랑에 앉아 노바스코샤 특산물인 바닷가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바다 위에 블루노스가 대서양을 가르는 상상을 하며 잠시 과거 여행을 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교회 Three Churches


마혼 베이 Mahone Bay의 또 다른 명물은 바닷가에 나란히 지어진 세 개의 건물이다.

바닷가에 모양도 다르고 종파가 다른 교회 건물 세 개가 나란히 서있다. 규모가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세 개의 아담한 교회 건물나란히 줄 서 있는 풍경은 귀엽기 그지없다. 이 귀여운 교회 건물들은 조형적으로도 물론 아름답지만 그 의미가 주는 교훈은 더 아름답다. 종파가 다른 이민자들이 새로운 땅에서 조화롭게 살기 위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 준 이민의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서서 이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동화 속에 들어간 듯 한 착각이 든다. 그러나 역사는 풍경보다 훨씬 냉혹하고 잔인했다. 유럽 이민자들이 정착하여 평화롭게 공존하기까지 수많은 선주민( First Nation)들의 죽음이 있었고, 유럽 이민자들 간의 세력 다툼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추방당했다. 그것은 유럽에서 가까운 지리적 특성을 지닌 노바스코샤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하는 카오스 속에서 살아남은 치열하고 고단한 이민자의 역사가 그대로 노바스코샤의 역사다.

캐봇 트레일 Cabot Trail

노바스코샤 북동쪽에는 케이프 브레튼 섬 Cape Breton Island 이 있다.

이 아름다운 섬에는 스코틀랜드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음악적 전통이 살아있어서 집집마다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흘러나오고 공식 행사나 퍼레이드에는 백파이프 연주가 빠지질 않는다.

섬은 노바스코샤 반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캐나다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드라이브 코스 Cabot Trail가 있다. 캐봇 트레일 Cabot Trail 은 케이프 브레튼 섬을 둘러볼 수 있는 최적의 길이다. 이 도로를 달리면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숲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운이 좋으면 해안가 언덕 위에 서서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도 볼 수 있다.


노바스코샤 주 자동차 번호판에는

캐나다의 해양 놀이터 Canada's ocean playground라고 쓰여있다. 캐나다인들이 사랑하고 즐겨 찾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 페기스 코브 Peggy's Cove에 가면 대서양을 향해 서있는 등대 Peggy's Cove Lighthouse 가 있다. 바닷가 너럭바위 위에 세워진 이 등대는 노바스코샤 주 유명한 홍보 모델인데

노바스코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물로 아주 적합하단 생각이 든다.

여름에는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캐나다,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비행기로, 혹은 커다란 크루즈를 타고 놀러 온다. 아름다운 해변과 숲과 호수, 그리고 오래된 집들, 친절한 사람들 싱싱한 랍스터와 향긋한 와인, 이런 것들이 여름이면 노바스코샤에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이유가 아닐까.

캐나다 대륙의 동남쪽, 섬처럼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오래전 육상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 더욱 번성했던 이곳 노바스코샤에는 시간이 고여 있다. 화려하지 않고 빠르게 발전하지 않지만 초조하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정신없는 속도로 달리 때, 이곳은 여전히 자기 속도를 지킨다. 느긋하다. 예의 바른 도도함이다. 21세기에 보기 드문 특별함이 노바스코샤에 있다.


Peggy's Cove Lighthouse

글- 민재미첼 그림- 조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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