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정원의 깨밭
public Garden in Halifax
한국 이민자들이 제일 먼저 만들어 먹는 음식이 김치라면 제일 먼저 재배해서 먹는 채소는 아마 들깨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깻잎의 짙은 향이 너무 좋은데 남편은 그 향 때문에 깻잎을 못 먹는다. 내가 코리엔더 coriander (고수)를 못 먹는 것처럼 말이다. 캐네디언 남편이 깻잎을 못 먹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깻잎은 캐나다에서는 낯선 채소다. 한인 마트를 제외한 다른 마트에서는 깻잎을 구경도 할 수 없다.
이민 온 첫 해에 나는 엄마에게 부탁해서 들깨 씨앗을 받았다. 그때는 시외할머니 댁에 잠시 얹혀 살 때였다. 보통의 캐네디언의 정원과 마찬가지로 할머니네 정원 역시 잔디가 곱게 깔려 있었고 집 건물을 따라 만들어진 화단에는 고운 꽃이 가득 피었다. 나는 할머니의 정원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정원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구멍을 파고 씨앗을 묻었다. 농사 경험도 없고 화분도 늘 죽이는 나였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깨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해, 나는 생전 처음 직접 기른 깻잎도 따먹고 가을에는 들깨 씨앗도 받았다. 그 후 내 집이 생긴 다음부터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들깨가 자랐고 그 씨를 받아 다음 해 농사를 이어갔다. 해마다 농사짓는 들깨 씨앗은 이민 온 첫해 엄마가 보내준 한국산의 자손들이다.
어느 해 봄, 브릿지워터 bridgewater라는 시골에 사는 시댁에 들렀을 때의 이야기다. 시아버지에게 시댁 정원에 깻잎을 심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시댁은 운동장 만한 잔디밭을 가지고 있었고 시아버지는 아주 작은 텃밭만 경작하고 있었다. 나는 시댁의 남는 땅을 이용해서 들깨를 욕심껏 심어서 마음껏 따먹고 싶었다. 그렇다고 한들 한평 남짓한 작은 텃밭만 있어도 내게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시아버지는 얼마든지 되고 말고 라는 말을 남기고 나가더니 바로 트랙터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볕 잘 드는 사과나무 옆의 잔디를 사정없이 밀어 버리고 밭을 갈기 시작했다. 세상에! 나를 위해 멀쩡한 잔디를 밀어 버리고 즉석에서 큼지막한 텃밭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감사하게도 예상보다 터무니없이 큰 깨밭을 얻고 말았다.
시댁 텃밭의 들깨가 자랄수록 시아버지의 걱정도 커갔다. 시댁은 넓은 숲을 끼고 있어서 정원에 사슴이 자주 나타난다. 해마다 시아버지 텃밭의 작황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순전히 사슴 때문이었다. 텃밭에 울타리를 치고 허수아비를 새워도 소용없었다. 키가 큰 사슴이 사람 키만큼 높은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 장면을 내 눈으로 목격한 적도 있을 정도니 사슴의 횡포는 무법자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시아버지는 사슴이 내 깻잎을 모조리 따먹을까 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아버지에게서 희소식이 날아왔다. 사슴이 와서 내 깻잎을 따 먹으려고 입을 대다가 냄새를 맡고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흔들고는 도망갔다는 것이다. 아마 익숙지 않은 향이라서 사슴도 깜짝 놀랐나 보더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내 깻잎 씨앗을 좀 얻어서 당신 텃밭 가장자리에 빙돌아 가며 심어야겠다고 하셨다. 사슴 방어용으로 깨를 울타리 삼아 심고 싶어 하셨다.
시아버지는 굉장한 미식가일 뿐만 아니라 요리사 못지않게 요리를 잘한다. 그래서 새로운 음식 탐구에도 적극적이다. 한국음식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시식을 하는데, 심지어는 나도 먹지 못하는 번데기 통조림을 사서 맛을 보실 정도로 입맛이 개방적이다. 그런데 아무리 비위가 좋은 시아버지라도 깻잎은 드시지 않는다. 내 남편이 깻잎을 못 먹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나의 취향을 존중해 주고 내 깨밭을 소중하게 생각해 준다.
나는 해가 갈수록 시댁의 깨밭 농사를 소홀히 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두 집 농사 (내 텃밭, 시댁 텃밭)가 버거운 탓에 시댁 깨밭 농사는 포기하고 말았다. 내 깨밭은 잡초가 점점 무성해지더니 어느 해부터 잔디로 뒤덮였다. 나는 시댁 사과나무 아래에 가면 사과향 대신 깨 향을 상상한다.
노바스코샤에서 알게 된 한인들과 들깨 농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대부분의 한인들은 캐나다 사슴이 깻잎을 안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 한인들은 사슴도 물리치는 들깨 향이 마치 한국인의 강인함을 증명이라도 하는 양 어깨를 으쓱하며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다. 깻잎 향으로 하나 되는 대한인이다.
핼리팩스 거리 풍경
해마다 봄이 되면 어느 적당한 날,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해서 텃밭에 씨앗을 뿌릴 때가 됐다고 알려준다. 물론 엄마가 씨 뿌리라는 적기는 엄마가 사는 경기도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이곳 노바스코샤와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여기는 한국보다 위도가 높기 때문에 봄이 늦고 겨울이 빠르다. 그래서 날이 풀리기 전에 실내에서 싹을 틔우던지 아니면 밭에 파종하고 천천히 키울 각오를 해야 한다. 여름이 짧기 때문에 푸성귀를 키워 먹으려면 여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씨앗을 파종하고 키워서 잎을 따먹고 서리 내리기 전에 씨앗을 받으려면 바쁘게 여름을 보낼 수밖에 없다. 노바스코샤에서는 여름이 짧은 만큼 더욱 부지런을 떨아야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할 수 있다.
팀벌리로 이사 온 후에는 현관 옆에 내 깨밭이 있다. 뒷마당에 무성한 야생 참나물을 밀어 버리기 싫어서 현관 옆에 자리한 한 평 남짓한 크기지만 내겐 충분히 넉넉해서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 비바람 속에 깨 지지대를 세워주는 남편이 있어 행복하고 이 향긋하고 맛난 깻잎을 입에도 안 대고 몽땅 내게 양보해 주니 더욱 고맙다.
이민자의 밥상에는 깻잎만 있어도 행복하고 이민자의 텃밭에는 깻잎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들깨 향 가득한 작은 텃밭이 내 농사의 전부이다. 나같이 게으른 농부에게 깻잎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 이 정도면 타국에서도 잠시 고향일 수 있다.
바닷가 풍경4. 이해와 적응, 변화와 포기
노바스코샤는 인종 비율로 보면 백인이 월등히 많이 거주한다. 모자이크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여러 인종으로 이루어진 이민자들의 나라라 해도 노바스코샤에서 동양사람은 여전히 소수민이다.
이민 온 첫 해에 만난 한인 P 씨는 나보다 5년이나 먼저 캐나다에 왔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병아리 이민자인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P 씨는 특히 옷 쇼핑을 했을 때의 장단점을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다.
캐나다에서 기성복을 사면 단점-셔츠는 소매가 길고, 바지는 기장이 길다. 장점- 옷 수선 기술이 날로 발전한다.라고 알려주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옷 쇼핑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첫째- 쇼핑가기 전에 마음부터 비워라. 내 맘에 드는 옷은 많으나 내 몸에 맞는 옷은 찾기 힘들다. 특히 체구가 작은 동양 여자에게는 스몰 사이즈도 크다.
둘째- 속옷은 무조건 입어 보고 사라. 비싼 돈 주고 헐렁하게 늘어진 팬티를 사고 싶지 않다면 반듯이 입어 보길 권한다. 서양인은 아시안보다 하체가 큰 체형이 많기 때문에 팬티의 사이즈가 한국보다 다양하다. 허리사이즈뿐 아니라 허벅지와 엉덩이 둘레 사이즈도 잘 맞게 골라야 하기 때문에 입어 보고 사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캐나다에서는 속옷을 입어 보고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셋째- 영수증은 꼭 보관할 것. 집에 가서 입어 봤는데 아무리 봐도 나한테 영~ 안 어울릴 때를 대비해서 교환이나 환불을 위해 영수증을 잘 챙겨야 한다. 수선해서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다면 환불, 교환을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캐나다에서는 영수증만 가지고 있다면 환불이나 교환이 어렵지 않다.
넷째- 접어 입거나 자가 수선해야 한다. 세일 때 산 청바지를 돈 들여 수선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한국보다 수선비가 엄청 비싸기 때문이다. 많은 이민자들이 간단한 옷 수선은 직접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옷을 수선하는 비용이 어찌나 비싼지 한국에서 처럼 훌륭하고 저렴한 옷 수선 서비스는 우리 동네에선 꿈도 못 꾼다. 그래서 나는 재봉틀을 샀다. 재봉 실력이 날로 늘고 있는 중이다.
소비자의 평균 체형을 기준으로 만드는 기성복은, 기준 집단의 평균에 속하지 않는 소수민의 몸에는 맞지 않는다. 한국에서 살 때는 느껴보지 못한 소외감이다. 이민 온 후, 이 나라의 사람들이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나 스스로 변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적당히 포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이처럼 낯선 곳에서 산다는 건 익숙지 않은 것들 속에서 맞닥뜨리는 당혹감과 소외감을 견디는 일인 듯싶다.
글 - 민재미첼 그림 - 조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