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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크리스털 트리 6. 한국어의 맛

민재 미첼 mjmitchell

by 민재 미첼 MJ Mitchell

5. 크리스털 트리 Crystal treeCrystal tree

어는 비 freezing rain 주의보가 내려졌다. 하루 종일 비와 눈이 섞여 오락가락하더니 온 세상이 얼음으로 둘러싸였다. 나뭇가지마다 투명한 얼음으로 코팅이 되었다. 크리스털 트리 Crystal tree다. 앙상했던 나무가 은빛으로 빛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겨울 풍경중 하나다. 크리스털 트리는 상고대나 눈꽃과는 다르다. 서리가 나뭇가지에서 얼어 버린 상고대나, 눈이 나뭇가지에 쌓여 언 눈꽃은 희다. 그런데 크리스털 트리는 투명하다. 투명한 얼음 막이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코팅하듯이 덮었다. 얼음 무게 때문에 나뭇가지들은 은빛으로 축 늘어지고 푸르던 상록수 잎들은 투명한 유리 속에서 옥색으로 빛난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얼음이 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차르르 차르르 버드득 버드득. 수정들이 부딪치면 이런 소리가 날까? 찬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오래도록 창을 열어 놓고 싶은 아름다운 소리다.

그러나 어는 비가 오면 세상은 너무 위험해진다. 특히 운전에는 최악이다. 아무리 좋은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해도 소용없다. 동네 골목은 죄다 얼음판이 된다. 시에서 미리 제설제를 뿌려 두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큰 도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오래전에 내가 겪은 일이다. 외출을 했다가 일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와 보니 바깥세상은 어느새 걷기 조차 어려운 빙판이 되어 있었다. 어는 비가 내려서 세상은 온통 얼음막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집에는 가야 하니 차에 시동을 걸고 엉금엉금 운전을 시작했다. 차가 미끄러질까 봐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그러나 교차로 정지신호에서는 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스르르 쭈르르 스르르르르. 차는 미끌어 지다가 겨우 멈추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핸들을 잡은 손은 이미 축축했다. 다행히 모든 차들이 엉금엉금 가고 있어서 앞차와 거리가 충분했고 그래서 접촉사고는 없었다. 어찌어찌 땀을 뻘뻘 흘리며 느릿느릿 운전해서 겨우 집에 도착했다. 보통은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운전을 했고 집까지 가는 동안 크고 작은 자동차 사고를 목격했다. 특히 내리막길에서 차 두대가 나란히 수로에 처박혀 뒷바퀴만 공중에 떠있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한 경험이었다. 나는 이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어는 비 주의보가 뜨면 절대 외출을 안 한다. 어는 비가 만든 크리스털 트리의 세상은 아름답지만 위험하다.


물론 크리스털 트리를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가 나무에 닿는 순간 얼어야 하고 얼음 막이 유지될 정도의 찬 기온이 지속되어야만 크리스털 트리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한 해에 두어 번 볼까 말까 한 자연의 깜짝 행사다. 드물어서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빛나는 것은 때로는 위험하다.

자고 일어 나니 정전이었다. 전깃줄도 얼음으로 코팅되어 버리니 그 무게로 인한 사고로 어는 비가 내린 후에는 정전이 잦다. 운 좋게 잠시 전기가 들어와서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우리 집의 조리기구는 인덕션과 바비큐 그릴뿐이다. 세상이 얼음막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야외에 있는 바비큐 그릴은 쓸 수가 없고 정전 때문에 인덕션도 쓸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잼을 바른 빵과 찬 우유와 사과 한 개로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집안을 둘러보니 정막하고 어두운 집안에서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당연히 인터넷도 안되고 티브이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해가 있는 동안은 견딜 만 하지만 캐나다의 겨울 해는 너무 짧다. 더구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내게 낮의 길이는 더욱 짧다. 해는 금방 자취를 감추고 정전 속에 밤이 되었다. 평소에도 조용한 동네지만 정전이 되면 더욱 적막하고 고요하다. 이따금 얼음을 뒤집어쓴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오랜만에 촛불을 켜고 책을 펼쳐 들었다. 촛불의 불꽃이 일렁이는 사이로 활자들도 조금씩 출렁였다. 양초 타는 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었다. 난방을 할 수 없어 촛불의 온기에 손을 녹였다. 코 끝은 차가워도 마음은 말랑해지는 시간이었다. 눈 폭풍이 오거나 폭우가 쏟아지거나 어는 비가 와서 정전이 되면 만나는 순간이다. 자연은 감히 맞짱뜰 상대가 아니기에 날이 궂으면 웅크려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지구 적응기는 여전히 힘겹다.


글 - 민재미첼 그림 - 조현아



6 한국어의 맛


타국에 살면 누구나 언어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한다. 살고 있는 그 나라 언어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영어를 주로 쓰는 노바스코샤에서 살면 영어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따금 기억해 내지 못하는 한국어가 있을 때는 영어를 모를 때보다 더 당황스럽다. 내가 내 모국어를 까먹었다는 충격에 잠시 머리가 멍해진다. 캐네디언 남편과 살기 때문에 한국어 사용 빈도가 낮아서 그렇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하다가도 한국에 있는 친구나 가족과 통화를 하다가 뭔가를 말하고 싶은데 막상 내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도 말하고 싶은 그 단어가 생각이 안 날 때는 나 스스로 너무 답답해진다. 머릿속을 맴돌지만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한 단어! 그 명확한 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날 때, 그때는 정말 고국을 떠나 먼 곳에서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민 오기 전에 나의 은사이신 문예창작과 교수님께서 해주신 조언을 잊을 수가 없다. 그즈음 나는 시인 등단을 준비 중이었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는 '언어의 변화와 감각적 표현'에 대해 설명하셨다. 언어는 소통의 방법, 시간의 흐름,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환경과 소통 방법이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아무래도 한국어의 변화에 둔감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캐네디언과 결혼해서 이민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는 한국어로 시를 쓰려면 한국어의 감을 잃지 말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나는 이민 온 후에 더욱 교수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하고 있는 중이다. 머릿속에서 가물가물 하기만 할 뿐 잘 떠오르지 않는 한국 단어가 있을 때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며 한국어의 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한국어를 잊지 않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은 한국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이다. 다 읽은 것도 또다시 읽고 또 읽는다. 이상하게 모국어로 된 문장을 읽고 있으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노바스코샤에서 한국어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이곳 공공도서관에서 한국어로 된 책을 발견하기도 하고 한인들끼리 서로 책을 돌려 보기도 한다. 핼리팩스에 있는 한인 마트 (제이제이)에서는 귀국하는 한인들이 기증한 몇 권 안 되는 책이나마 무료로 대여해주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책을 다운로드하여 읽는 세상이지만 종이 책이 주는 감성적인 만족감과는 견줄 수 없다. 한국에서 누군가 책을 보내 주기라도 하면 아끼며 야금야금 읽는다. 늘 마지막 페이지가 오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Waterfront in Halifax

우습게도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나는 캐나다에서 남들이 영어에 대한 고민을 할 때 혹시라도 한국어를 잊게 될까 봐 전전긍긍 중이다. 이민 온 후, 모국어를 잊지 않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실천하는 중인데 이것은 내가 시인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대한인의 자긍심과 정체성 지키기이며 한편으로는 어차피 영어는 못하는 게 당연하니 내 나라 말인 한국어만은 잘해야겠다는 일종의 강박증일지도 모른다.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둔해진다. 한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아무리 많은 한국어 영상을 보아도 콘텐츠마다 사용하는 용어는 한정되어 있어서 천천히 잊히고 있는 단어들이 있다. 처음에는 간단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풀무'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가 그랬다. 그러나 '풀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을 때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물건이라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고 김유정의 단편 소설집을 구해 읽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오랜만에 읽는 김유정의 소설 속에 가득한 구수하고 정겨운 모국어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 한국어 문장 자체가 통으로 생각이 나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때는 정말 머릿속이 온통 백지상태가 됐었다. 이민 후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길거리 옷가게에서 원피스를 고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Do you have a different color dress with the same design?' (이것과 같은 디자인의 색이 다른 원피스가 있나요?)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차 여기는 한국이지 싶어서 한국말로 하려는데 순간 머릿속이 백지가 됐다. 뭐지? 내가 방금 한 말을 한국말로 뭐라고 옮겨야 하는 거지? 분명 머릿속 생각은 한국말로 하는 것 같은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한국말로 떠오르지 않았다. 답답하고 바보 같은 멍청이가 된 느낌이었다. 점원 역시 당황했는지 '난 영어 못해요'를 연발하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식을 땀을 흘리다가 결국 상점에서 그냥 나와 버렸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자책했다. 겨우 생활 영어 정도 하는 주제에, 혀 꼬부라진 한국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 문장이 생각이 안 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쉬운 한국말을 생각 못한 내가 바보 같기만 한데 이와 비슷한 일이 점점 더 자주 일어났다. 아무리 생활 영어라도 남편과 늘 영어로 소통하다 보니 잊히는 한국말이 하나둘씩 늘었다. 영어 실력이 느는 속도보다 한국말을 잊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아 두렵다.

Halifax

말은 자주 쓰지 않으면 입에 붙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한인 2세들이 한국어를 듣고 이해하기는 해도 한국어로 말하는 것은 매우 서툴다. 입 밖으로 말을 내뱉어 봐야 내 입에 붙는 내 언어가 되는 것인데 입 밖으로 한국말을 할 기회가 적으니 당연하다. 언어는 인문학이다. 한국 문화와 친숙해지면 한국어를 더 쉽게 배우고 한국식 표현에 능숙해질 수 있다.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는 Y는 9살이다. 엄마는 한인이고 아빠는 캐네디언이다. Y는 일상에서 영어를 더 편하게 쓰지만 '포근하다'는 한국식 표현을 좋아한다. 'warm'이나 'cozy' 보다 '포근하다'는 말이 엄마가 안아 준 것처럼 따뜻해서 더 좋다고 했다. 엄마의 포근한 품이 가르쳐준 살아있는 한국말이다.

요즘 들어 나는 혼잣말을 많이 한다. 혼자 티브이를 보면서 마치 방청객처럼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리뷰 방송을 하듯이 혼자 중계를 하고 설명도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이 나오면 큰 소리로 욕도 한다. 물론 한국말이다. 어차피 남편은 못 알아듣는 (욕은 귀신같이 알아듣지만) 한국말이니 더욱 마음껏 할 수 있다. 영어로 하는 욕보다 한국말로 욕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는 너무나 쉽게 한국어로 된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살 때 보다 이민 와서 더 많은 한국 영상들을 보고 있다. 내가 이민 후에 영상 콘텐츠로 접한 한국어는 정말 급변하고 있었다. 신세대 들는 말을 너무 많이 줄여서 줄임말 공부를 따로 하지 않으면 한국말인데도 알아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 됐다. 신조어는 또 어찌나 많은지 이러다 후손들이 내 글을 읽기 위해 번역기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정도다. 또한 외국어 사용이 눈에 띄게 늘었다. 쉬운 외래어의 사용뿐 아니라 영어권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전문 영단어를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인 양 생활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이런 언어의 횡포가 소외계층을 만든다. 한 나라 안에서도 사용하는 언어로 계급과 계층이 나뉜다면 이것은 분열과 경쟁의 씨앗이 될게 뻔하다.

때론 독하고 강하지만 더없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 한국말은 쫀득쫀득 찰지게 입에 붙는다. 맛깔나다.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말아야 할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모든 한국말을 사용하는 인류에게 당부한고 싶다. '우리말'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높이 새겨 잘 지키고 보존해 주기를, 이 찰진 한국말의 재미를 후손들도 즐길 수 있기를 소망하고 소망해 본다.


Lunenberg

글:민재미첼 그림:조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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