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책은 단연코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다. 그래서 나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과 읽어야 할 사람. 남편 또한 이 책의 열렬한 팬이어서 우리는 고양이에게 줄 이름을 고민 한 끝에 이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의 이름으로 결정했다. 트릴리언! (줄여서 트릴) 지구가 사라진 후에도 생존한 주인공의 이름은 길고 추운 캐나다의 겨울을 야생에서 보낸 강인하고 고독한 고양이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이름은 '야꿍'이다. 귀여운 외모 때문에 야옹하면 까꿍하고 놀아주고 싶어서 야옹 까꿍을 줄여서 야꿍이라고 지었다. 물론 정식 이름 외에 수많은 별명과 애칭이 있다. 스위티, 큣페이스, 해피밤, 프리티몬스터, 미야오페이스, 이쁜이, 애기, 오구오구, 냥냥, 쪼꼬미, 귀요미, 이쁜궁디, 프린세스 등등 셀 수도 없을 만큼 애칭이 많은데 아직도 계속 새로운 애칭이 만들어지고 있다.
오래전 울프빌에 살 때부터 남편은 고양이 입양을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당시 세 들어 살던 집의 계약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없다는 조건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고양이 타령을 심각하지 않게 들어 넘길 수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우리가 집을 사게 되었을 때, 남편은 내 집을 갖게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드디어 고양이를 입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더 들떴다.
새집으로 이사하자마자 우리는 고양이를 입양했다. 남편은 노바스코샤 동물 구조 단체의 웹사이트에서 트릴리언의 사진을 보자마자 '이 아이다!' 싶었다고 했다. 트릴리언은 중성화 수술을 한 암컷이며 검은색 털과 흰털이 섞여있는, 털이 북실북실한 장모長毛 턱시도 캣이다. 콧잔등과 양쪽 뺨, 목, 가슴, 배와 네 발은 희고 머리와 눈주위, 귀, 몸통, 꼬리는 검다. 어깨에는 완벽한 대칭을 이룬 작은 날개 모양으로 흰털이 났는데 우리는 이것을 '천사의 작은 날개'라고 부른다. 트릴은 마을 근처 숲에서 발견되었고 나이는 두 살 정도로 '추정'된다고 했다. 다 자란 아이인데도 몸무게가 3kg도 안될 만큼 몸집이 작았다. 춥고도 혹독한 노바스코샤의 야생에서 이 조그마한 아이가 살아서 무사히 구조된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트릴리언을 데리고 온 첫날, 남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 자신의 2세도 원치 않았던 남편이 고양이를 따라다니며 우쭈쭈를 연발하고 스스로를 아빠라고 부르며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Sweet little cute pretty One! Daddy can do it for you' 뭐 대략 이런 소리를 냈다. 솔직히 하도 혀 짧은 소리를 내서 무슨 소린지 자세히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처음 보는 남편의 딸바보 아빠 모습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고양이에게 자신을 아빠라고 지칭하는 남편 덕분에 나는 고양이 엄마가 되었다.
트릴리언 야꿍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주로 개를 키웠다. 우리 부모님은 고양이를 엄청 싫어했기 때문에 나는 한 번도 고양이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고양이를 싫어했던 것 같다. 내가 대학생 때, 한 번은 자취하는 친구 B의 집에 놀러 갔었다. 그런데 못 보던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B의 침대 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에게 당장 고양이를 치우라고 다그쳤다. 물론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 침대 위에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말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참 못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고양이를 싫어했나 보다. 내가 그렇게 못되게 말을 했는데도 나를 내쫓지 않은 B의 이해심에 늦게나마 감사를 보내고 싶다. 아무튼 이 정도로 나는 고양이에게 꽤나 매정했었다.
그런 내가 고양이 엄마가 되었으니 고양이와 친해져야 했다. 사실 고양이와 친해질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나는 쥐, 뱀, 바퀴벌레 같은 혐오 동물만 빼고는 거의 모든 동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고양이 엄마되기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트릴리언은 우리 집에 올 때부터 고양이 특유의 갸르릉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늘 조용했고 소심했다. 작은 물건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고 이상하게 캣타워에도 오르지 않았다.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도 쓰다듬으려 손을 뻗으면 쏜살같이 도망쳤다. 눈 맞춤도 하지 않았고 작은 소리에도 후다닥 침대 밑에 숨기 일쑤였다.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그녀가 우리 집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영어권에서는 반려동물을 지칭할 때 she, he 등의 3인칭 대명사를 사용함. 처음에는 사람을 지칭하는 줄 헛갈렸음-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트릴리언 입양 후 일 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수시로 동물 구조센터 웹 사이트를 방문하던 남편이 트릴의 외로움을 핑계로 고양이를 한 마리 더 입양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녀에게 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입양을 찬성했고 우리는 짧은 회색 털을 가진 6개월 된 여자 아이를 데려왔다. '마야'로 이름 짓고 트릴과 합사를 위해 몇 주간의 격리 기간을 거쳤다.
우리는 두 고양이의 만남을 위해 입양기관에서 알려 준 대로 철저히 따랐다. 처음에는 고양이들을 아래층과 위층으로 따로따로 격리시켰다. 그리고 시간을 정해서 문을 사이에 두고 냄새만 맡다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만났다. 소심한 트릴은 낯선 마야를 보자 다가가지도 못하면서 멀리서 하악질을 했고 마야는 철딱서니 없는 동생처럼 해맑기만 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트릴의 경계심이 풀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두 고양이가 서로 만나는 시간을 점차적으로 늘리면서 만남의 거리도 좁혀 나갔다. 남편과 나는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고양이들의 행복한 만남을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 드디어 두 고양이가 자유롭게 만났고 마야는 낯선 집안을 마음껏 탐험하며 돌아다녔다. 소심한 트릴에 비해 마야는 호기심이 많았다. 보통의 고양이처럼 갸르릉 대며 높은 곳, 낮은 곳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6개월인 마야의 덩치는 3살 된 트릴리언과 엇비슷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는데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사고였다. 우리는 어린 마야가 트릴의 텃세에 눌릴까 걱정을 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리지만 이미 트릴만 한 몸집을 가진 마야가 순식간에 트릴리언에게 달려들어 냥 펀치를 날렸다.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녀의 털이 공중으로 뭉텅뭉텅 뿌려졌다. 남편과 나는 얼른 달려들어서 둘을 떼어 놓았다. 트릴리언에게 큰 물리적인 상처는 없었지만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지 더욱 의기소침해 보였다.
그 후 며칠을 더 관찰해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트릴의 상태는 오히려 더욱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마야는 제 집인 양 여기저기 오르고 뛰고 활기차게 다니는데 트릴리언은 구석에 숨어서 오돌오돌 떨기만 했다. 트릴리언의 상태가 걱정이 된 우리는 수의사와 상담을 했다. 트릴의 상황을 전해 들은 의사의 소견은 이랬다. 트릴리언은 아마도 너무 어릴 때부터 혼자 숨어 살다 보니 사회성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장애의 일종으로 사람으로 치면 ADHD 같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억지로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 트릴리언에게는 더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수의사는 안타깝지만 트릴을 위해 마야와 따로 살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마야를 입양했던 동물구조센터에 상황을 설명했다. 센터에서도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주었다. 우리는 입양기관의 허가를 받아 마야를 파양 하는 절차를 밟았다. 마야를 다시 센터에 두고 오는 날, 남편과 나는 눈이 퉁퉁 붓도록 한참을 울었다. 해맑기만 한 마야를 책임지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매일 퇴근 후 센터로 마야를 보러 다녔다. 마야가 다른 집에 입양될 때까지 일주일 넘게 퉁퉁 부은 눈으로 퇴근하기 일쑤였다. 다행히 마야는 좋은 집에 입양되었다고 했다. 마야를 위해서도 잘 된 일이지만 마야에 대한 미안함으로 살던 남편과 나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남편은 이제 다른 고양이 입양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외로운 낭만 고양이인 줄 알았던 트릴리언은 안타깝게도 고독한 운둔자로 살아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어느새 트릴리언이 우리 집에 온 지 7년이 됐다. 여전히 소심한 트릴이지만 그녀는 이제 제법 집주인 행세를 한다. 여전히 갸르릉 소리도 없고 배를 까보이지는 않지만, 이따금 캣타워에도 오르고 기분 좋을 때는 우당탕탕 와다다다 온 집안을 뛰어다니기도 한다. 손길을 피하던 아이가 이제는 더 쓰다듬어 달라고 보챈다. 내가 털 빗기는 브러시를 손에 쥐기만 하면 달려와서 뒤통수를 브러시에 문지른다. 이제는 나와 하이파이브도 하고 남편의 배 위에 올라가 낮잠도 잔다.
몇 해 전 캐나다를 방문했던 우리 엄마는(고양이를 엄청 싫어했음) 트릴리언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조용하고 얌전한 트릴이 엄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제는 나와 전화 통화할 때마다 '느그 고양이는 잘 있나?' 하고 트릴의 안부를 꼭 묻는다.
트릴리언 야꿍
트릴리언은 한동안 아래층에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 공을 물고 침실로 올라왔다. 주로 새벽 3시경이었다. 그리고는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냐옹! 냐아옹!' 그녀는 자신의 선물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아니 자랑스럽다 못해 조금은 뻔뻔하고 당당하게 잠든 남편과 나를 깨웠다. 한동안은 트릴의 보은이 너무 귀여워서 선물을 기쁘게 받아주었다. 그러나 새벽마다 잠을 설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공을 숨겼다. 남편의 말로는 트릴리언이 인도어캣 in door cat (실내에서만 사는 고양이)이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밤외출을 하는 고양이라면 죽은 쥐나 새를 물어 왔을 거라고 했다.
캐나다는 한 집 건너 두 집이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주변을 둘러봐도 시부모, 시이모, 시고모, 시누이, 시동생과 남편의 친구, 친구의 가족, 친구의 지인들 모두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 나는 사실 이들이 반려동물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문화 충격을 받았었다.
캐네디언들은 신발을 신고 집안에 들어가는 것이 익숙해서인지, 정원을 달리던 송아지만 한 개가 흙 묻은 발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와도 내버려 두었다. 야단 한번 맞아 본 적 없이 사랑만 담뿍 받아 본 개는 어찌나 발랄한지 흙 묻은 발로 부엌이고 침실이고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게다가 함께 놀자며 침으로 축축하고 흙먼지까지 묻어서 더러운 장난감을 물고 와서 놀아 달라고 애교를 부리며 데굴데굴 굴렀다. 개만 구르는 게 아니었다. 사람과 개가 함께 카펫 위에서 뒹굴고 껴안고 놀았다. 보기에는 행복해 보였지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어머나 저 흙먼지! 저 개털! 어쩔 거야!" 그 모습을 보며 인간의 선조들이 동굴이나 움막에서 살 때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캐나다의 개들은 배변을 위해 정원을 수시로 왕래한다. 그런데 덩치가 커서 자주 씻기지도 않는다. 침대로 올라가지 전에 걸레로 발만 대충 닦아준다. 그냥 개답게 키운다. 고양이 역시 집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내버려 두기도 한다.-Out door Cat.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캐네디언의 반려견, 반려묘와의 동거는 사람 중심이 아닌 동물 중심인 것 같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데 이민 초기에는 이런 문화가 익숙지 않아 적잖이 충격이었다.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이 하루 종일 오냐오냐 해줬더니 트릴리언은 더욱 응석받이가 됐다. 요즘은 자신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뜨거운 눈길로 엄마와 아빠를 쏘아보며 무언의 협박을 하기도 하고, 아빠의 혀 짧은 소리에 냐옹냐옹 댓꾸를 하며 제법 수다를 떨기도 한다. 눈을 맞추고 우아하게 눈을 깜빡이며 눈뽀뽀를 해주기도 하는데 배가 고플 때는 눈의 깜빡임이 빨라진다. 캐네디언 아빠와 한국 엄마를 둔 덕분에 영어를 잘 알아듣는 것은 물론이고 제2외국어 수준으로 한국말도 제법 알아듣는다. 트릴리언은 '까까'와 '맘마' 소리를 제일 좋아한다.
우리 부부는 트릴에게 하는 혀 짧은 소리를 듣고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한다. 기분이 최고로 좋을 때는 거의 혀가 없어져서 해독 불가한 말로 트릴과 대화한다.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도 어느새 딸바보가 돼버렸다.
트릴리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놀랍다. 우리 부부의 마음을 위로하고 늘 웃게 만든다. 누구도 못하는 세상 위대한 일이다. 고양이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신비한 생명체다. 아주 먼 별에서 온 우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트릴리언처럼 우주를 여행하는 고독한 방랑자가 아닐까? 대체적으로 무해한 삶과 우주! 위대한 현자賢者! 트릴리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