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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식인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by 량과장

2025년 상반기 나는 광고주 미팅에서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강대표님, 신지식인 신청해 보세요.”


“네? 신지식인이 뭔가요?”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혁신을 이끌어낸 사람들을 신지식인으로 인증해 주는 제도예요.”


혁신이라.

나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니 혁신은 모르겠지만 새롭고 독창적이기는 했다.


완벽주의로 자반증을 얻고, 제시카 존스에 낚여 탐정이 되고, 로스쿨을 한 학기 남겨두고 때려치우고, 갑작스레 새우를 팔고, 회사가 싫어서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내 모든 성과는 그 과정에서 일어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인생사도 ‘혁신적 여정’으로 포장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떠올랐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모든 삽질이 사실은 ‘파괴적 혁신’이었던 것인가?!”



도전! 신지식인


한국 신지식인협회는 1999년에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정부에서 ‘지식기반사회를 이끌 인재 발굴’이라는 목표로 시작한 제도. 쉽게 말해 각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방법론을 개발해서 실제 성과를 낸 사람들에게 주는 ‘혁신 라이선스’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서류 심사, 현장 실사, 인터뷰까지 3단계. 탈락률도 꽤 높다고 했다. 마치 사회인의 입시 같았다.


신청서류를 받아 든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내가 과연 될까?’ 하는 의구심보다는 ‘내가 되면 신지식인의 품격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신청서와의 사투


결국 용기를 낸 나는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지난 3년간의 파란만장한 서사시를 A4 몇 장에 압축하라니. 내 인생이 라면 조리법보다 간단해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개인사를 과감히 걷어내고 오직 성취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ROAS 개선율, 세이빙 한 광고 비용, 문의 증감률.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를 제시해야 무난히 신지식인으로 선정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내용을 겨우겨우 채워 넣으니 추천서라는 벽이 나를 가로막았다.


겨우겨우 추천인을 정해 추천서를 부탁할 때도 ‘혹시 너무 미화해 주시면 오히려 허풍쟁이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렇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추천인께서는 절묘하게 써주셨다.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브랜드 자체를 설계할 줄 아는 기획자다.”


겉으로는 “아, 네 뭐 그 정도는요”라고 쿨하게 반응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스크린샷으로 저장 완료. 나중에 명함에 넣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인터뷰 D-day


이후 대망의 인터뷰 날이 찾아왔다. 동대문의 한 빌딩. 진행 방식은 4:3. 심사위원 네 분 대 신청자 세 명. 말은 인터뷰지만 실제로는 지적 생존 게임 같았다.


나는 다른 신청자들을 보고 당황했다. 한 분은 캐리어까지 끌고 와서 제품 샘플과 예상 질문 답안집까지 꺼내놓았고, 또 다른 분도 신청서를 곱게 프린트해 오셨다.


그 옆의 내가 준비한 것은 달랑 노트북 하나. 충전기도 없었다. 마치 칼싸움에 맨손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아, 내가 너무 안일했나? 이거 망했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아. 내 무기는 데이터와 스토리야. 소품은 없지만 드라마는 있어.”



압박면접


인터뷰실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네 분의 심사위원이 마치 재판관처럼 앉아 계셨다. 나는 피고인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질문들이 빗발쳤다.


“니어사이드의 성장세는 구체적으로 어떻습니까?”

“현재 클라이언트 수는 몇 개이고, 연간 매출은 얼마입니까?”

“지원자님께서 개발한 독창적인 마케팅 방법론은 무엇입니까?”

“관심도 마케팅과 예산 효율성 중 무엇을 더 중시하시나요?”

“앞으로 협회에 어떤 기여를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저는 이직을 정말 많이 해봤습니다. 산업군은 모두 달랐지만 매번 성과를 내왔죠. 그래서 타 업체에 비해 데이터베이스가 많이 쌓여있는 편입니다. 저는 그 DB를 통해 각 업체의 비즈니스 모델에 적합한 전략을 수립해 드리고 있습니다. 근거자료로는 실제 성과 대시보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심사위원 중 한 분이 피식 웃으셨다.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예상 밖의 결과


몇 주 후, 나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인증식에 참석하는 날, 나는 제일 친한 친구를 초대했다. 사진도 찍혔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어색했다. 마치 할로윈 코스프레를 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정말 신지식인이 맞나?’



더 황당한 전개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신지식인이 된 지 몇 달 후, 협회에서 또 연락이 왔다.

“이사직을 맡아주실 수 있나요?”

“네? 저 신지식인 된 지 얼마 안 됐는데요? 이사요?”


33살에 신지식인이 되고 같은 해에 이사가 되다니. 속도가 너무 빨라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초고속으로 임원을 달게 된 신입사원처럼 말이다.




신지식인 인증을 받게 되면서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 방향을 설계하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와 그걸 나누려는 염치없음”이 진짜 혁신이고, 삽질도 기록하면 혁신이 된다는 현실을 실감했다.


솔직히 지금도 나는 계속 배우고 있다. 회사 운영도, 개인적인 성장도, 이사로서의 역할도. 그리고 가끔 질문을 던진다.


신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따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는 여전히 헤매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신지식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실패하고, 배우고, 나누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혁신이다. 결국 신지식인이 되는 것보다 신지식인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증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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