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그간의 실패를 발판 삼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회사를 운영하고, 신지식인협회 활동도 하며, 브런치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매주 글을 올린다. 곧 발행될 퍼블리 콘텐츠도 기다리고 있다.
누가 예상했을까. 완벽주의로 자반증을 얻고, 제시카 존스에 낚여 탐정이 되었던 내가 ‘글 쓰는 대표’가 될 줄.
친구들은 묻는다.
“너 요즘 뭐 하냐?”
나는 대답한다. 회사도 운영하고, 협회 활동도 하고, 글도 쓴다고.
멀티플레이어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여전히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
실패 컬렉터의 고백
나는 참 많은 실패를 겪었다. 남들이 평생에 한 번도 하지 않을 만한 실패들. 대학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고,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기도 했다. 로스쿨을 한 학기 남겨두고 그만두었고,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해 도망치듯 퇴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새우를 팔기도 했고, 회사를 벗어나고 싶어 창업을 결심하기도 했다.
물론, 내게도 내일 과로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느낄 만큼 빡센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또 살아졌고,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기도 했다. 다시 쓰러지기도 했지만, 삶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 같다. 직선이 아닌 롤러코스터.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힘들었겠다”라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분명 고된 시기가 있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실패라는 이름의 과정
나는 나의 실패들을 더 이상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해왔고, 다른 이들이 그 선택을 실패라 부르더라도 내게 그 순간들은 어딘가로 향하는 과정이었다.
완벽주의로 몸이 망가진 것도, 탐정이 된 것도, 새우를 판 것도, 회사를 차린 것도. 그 모든 사건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당연히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서류 전형에서 계속 떨어졌을 때, 새우 사진만 봐도 오한이 났을 때. 그 순간에는 그저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새로운 정체성
예전에는 누군가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대답해 주기가 어려웠다. 마케터인지, 대표인지, 탐정인지, 아니면 새우 팔이인지. 정체성이 너무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확실히 답할 수 있다.
“저는 기록하는 사람이에요.”
회사를 운영하고 협회 활동도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핵심이다. 남들은 이력서 한 줄로 정리할 경험을 나는 챕터 하나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궤적은 한 권의 책이 되어 갔다.
여전히 진행형
나는 완성형 인간이 아니다.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헤매고, 여전히 삽질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정했다. 완벽한 사람이 되려 애쓰기보다 재미있는 사람이 되자. 모든 걸 잘하려고 안간힘 쓰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하자.
회사도 마찬가지다. 업계 1위를 목표로 하기보다 우리만의 색깔을 만들어가자. 나는, 우리는 빠른 성장보다 건강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래서 결국 뭐가 되고 싶은 거야?”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대답한다.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고 싶어.”
나는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실패하고, 배우고, 기록할 것이다.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인생 이야기를 탐독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 실패라 불리는 경험조차 결국은 어디론가 향하는 과정이라는 것.
나는 완벽주의자에서 삽질 전문가가 되었고, 지금은 기록하는 사람이 됐다. 미래의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일지 알 수는 없지만, 인생의 묘미는 불확실성에 있는 게 아닐까?
“인생, 너 뭐 돼”를 외치며 계속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종착지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동안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냥 뭐, 나는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