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동안 내가 기분이 더러운 이유를 몰랐다.
뭔가가 이상한데, 콕 집어 무엇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칼에 베인 것도 아니고, 누가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고, 욕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내가 예민한 줄 알았다.
그다음에는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내가 예민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못돼먹었던 것이다.
칭찬인데 왜 찔리지
직장 동료 중에 유독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말투는 부드러웠고, 늘 미소를 띠고 있었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그 사람 옆에 있으면 내 기분도 괜히 좋아질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니었다.
나빠지는 속도가 느렸을 뿐이었다.
그의 칭찬에는 늘 작은 부록이 달려 있었다.
“진짜 대단하다. 나는 저렇게는 못 할 것 같아서.”
“발표 잘하더라. 나는 저런 거 원래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열심히 하는 거 보면 대단해. 나는 그냥 적당히 살고 싶어서.”
칭찬 뒤에 붙는 “나는 안 그래”는 희한했다.
나를 높이는 말 같기도 했고, 나를 폄하하는 말 같기도 했다. 그의 말은 늘 애매한 경계 위에 걸쳐져 있었다.
덕분에 나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계산해야 했다.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조심해야 할지.
칭찬과 비난을 한데 섞는 기술.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솔직히 감탄스러웠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세상에는 독설을 솔직함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들의 자아상은 대체로 비슷했다.
자신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해주는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과 달리,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
그들은 늘 비슷하게 말했다.
“나는 원래 직설적인 편이라서.”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나쁜 뜻은 없어.”
“이게 진짜 도움이 되는 말이잖아.”
나도 한때는 그 말을 믿었다.
뼈 있는 말도 해줄 수 있는 관계가 더 건설적인 관계라 믿었다.
하지만 그들의 솔직함은 놀라우리 만큼 선택적이었다.
칭찬할 일이 있을 때는 한없이 약해졌고, 지적할 일이 있을 때는 유난히 강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강해진 말들은 늘 나를 작아지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건 좀 아쉬웠어.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냥 내 생각엔 네가 너무 예민한 것 같아. 솔직히.”
“나는 원래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그게 좀 보이더라고.”
그들의 화법에는 완벽한 방어막이 내포되어 있었다. 상대가 기분 나빠하면 “그냥 솔직하게 말한 건데 왜 그래”라고 물러설 수 있었고, 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 그 말은 곧 진실이 됐다. 어느 쪽이든 자신은 용감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남았다.
공격과 면죄부를 한 세트로 묶어 파는 방식.
영리한 전략이었다.
왜 더 불안하지
조금 더 정교한 버전도 있었다.
걱정의 탈을 쓴 공격이었다.
한때 친하게 지낸 지인이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아 보였다. 연락도 자주 했고, 내 상황을 꼼꼼히 물었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와 대화한 후에는 기운이 빠졌다.
통화 전에는 그러려니 했던 일이, 통화 후에는 큰일이 된 것 같았다.
스스로도 이상했다. 위로를 받았는데 왜 더 불안하지.
“너 요즘 많이 힘들겠다. 그 상황에서 버티는 게 쉽지 않잖아.”
“그거 괜찮겠어? 나라면 좀 걱정될 것 같은데.”
“잘 될까? 솔직히 나는 좀 어렵지 않나 싶던데.”
통화를 끝내고 나면 늘 걱정이 남았다.
그 걱정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이상한 그림이 완성됐다. 내 상황은 심각하고, 나는 버티기 어렵고, 앞으로도 잘되지 않을 것 같은 그림.
본인은 그냥 걱정을 해준 것뿐인데, 나는 내 인생이 조금씩 망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상처는 꼭 험한 말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상처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칭찬했잖아.
솔직하게 말한 거잖아.
걱정해 준 거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칭찬도 맞고, 솔직한 말도 맞고, 걱정도 맞다.
그런데 왜 대화가 끝나고 나면 늘 기분이 이상할까.
왜 자꾸 내가 문제인 것처럼 느껴질까.
왜 나는 점점 작아질까.
형체가 없는 상처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욕을 들었으면 화를 내면 되고, 대놓고 무시를 당했으면 거리를 두면 된다.
그렇다면, 칭찬과 위로가 도리어 상처를 헤집어 놓았을 때는 어떨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건가.
내가 그냥 이상한 건가.
그들의 재능이란 그런 것이다.
직접 공격하지 않아도, 상대가 스스로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
친절한 얼굴로 사람을 작게 만드는 기술은 생각보다 흔히 쓰인다. 그런 기술을 쓰는 이들은 대체로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모른다. 자신이 상처를 주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