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억울한 사람들

by 량과장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억울한 일을 겪게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누군가는 그 감정이 흘러가게 두고, 또 누군가는 오래 붙들고 산다.


나는 한동안 그 차이를 몰랐다.

억울한 사람들을 그저 상처받은 사람이라 여겼고, 이해받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를 오래 듣다 보니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다.


모든 이야기에서 자기는 피해자라는 것.



모든 이야기에서 자기는 피해자였다


전 직장 동료 중에는 매일같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가 있었다.

회의에서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억울해했고, 일을 다시 요청받으면 짬처리를 해야 한다고 억울해했다. 상사가 피드백을 하면 자신에게만 유독 엄격한 것 같다고 했고, 동료가 선을 그으면 차갑고 계산적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힘든 상황에 놓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금 이상했다.

등장인물이 누구든 결말은 늘 같았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상대는 몰라줬다.

자신은 참고 있었고, 상대는 끝내 선을 넘었다.


그는 언제나 피해자였다.



오래된 억울함을 오늘 일처럼 꺼냈다


동창 중에서도 억울함을 토로하는 친구는 있었다.

그 친구는 몇 년 전 일을 꼭 어제 일처럼 말했다. 누가 자기를 서운하게 했는지, 누가 무례한 말을 했는지, 자기가 얼마나 참았는지. 이야기는 늘 생생했고, 감정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번은 그가 이미 여러 번 들은 이야기를 또 꺼냈다.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디테일이 조금 더 붙어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언제 일이야?”


친구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한 7년 전?”


7년이었다.


친구에게는 억울함만 따로 보관하는 창고가 있는 듯했다. 온도도 맞춰두고, 습도도 맞춰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창고.


솔직히, 나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억울함을 보관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보관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까.



사과를 받아도 끝나지 않았다


가까이 지냈던 지인 중에는 사과를 받아도 끝내 억울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문제가 생겼고, 한동안 시끄러웠고, 결국 상대가 먼저 사과했다고 했다. 나는 정리가 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사과는 했는데, 진심이 아닌 것 같아.”

“말은 미안하다고 했는데, 표정이 별로였어.”

“사과를 너무 늦게 한 거잖아.”


듣고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과에도 태도와 타이밍은 중요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억울함은 조금도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그에게 사과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이 사람은 정말로 억울함을 풀고 싶은 걸까.


어쩌면 그에게는 피해자로 남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라는 자리가 주는 편리함


억울한 사람들을 오래 관찰하다 보니 보였다.


피해자라는 자리가 생각보다 편한 자리였다는 것.


설명할 의무도 없고, 반성할 필요도 없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바깥에 있으니까.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이러한 질문들은 좀처럼 피해자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이 억울함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악해서가 아니었다.

억울함을 내려놓는 순간, 자신의 역할도 조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완전히 옳지도, 완전히 그르지도 않은 사람. 어떤 관계에서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


그들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불편한 모양이었다.


완전히 억울한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흔들리지 않으니까.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마주 보지 않아도 되니까.




억울한 사람들을 오래 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떠난 사람들보다 남아 있는 사람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를 믿어주고, 같은 억울함에 같이 분노해 주고, 같은 서사를 다시 확인해 주는 사람.


그 자리에 한동안 내가 있었다.


모든 관계에서 자신만 피해자인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정말 유독 나쁜 사람만 골라서 만나는 불운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 관계들 속에서 자신이 취했던 스탠스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거나.


전자일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후자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게 됐다.


누군가에게 억울함은 정체성이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방식이고, 세상과 관계 맺는 언어다.


그 언어를 오래 써온 사람에게 다른 언어를 권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몇 차례 시도는 해보았지만, 결국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됐다.

늘 억울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는, 끝까지 곁에 남지 않는 사람조차 결국 또 하나의 가해자로 정의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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