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보다 소문을 좋아하는 사람들

by 량과장

나는 어릴 때부터 구설수가 많이 따르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보다 소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온 사람. 내 주변에는 유독 내 인생을 각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계속해서 내가 모르는 설정이 붙고, 모르는 사건이 생기고, 모르는 인간관계가 자라났다.



나는 상을 받았고, 엄마는 로비스트가 됐다


초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글짓기 상을 받게 된 나는 들떠 있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상장 몇 개만 받아도 차세대 위인이 된 것처럼 구는데,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이 이제 막 내 재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제법 진지하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선생님께 촌지를 건네 내가 상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소문 속 나는 열심히 글을 써서 상을 받은 어린이가 아니었다. 부모의 지갑을 등에 업고 입상한 초등학생이었다. 내 노력은 순식간에 뒷돈이 되었고, 내 상장은 실적이 아니라 거래 명세서가 됐다.


나는 짜증이 났다. 우리 집 형편이 괜찮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상을 받은 이유가 부모님의 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을 붙잡고 해명했다.


“진짜 아니야.”

“우리 엄마 그런 사람 아니거든?”

“내가 그냥 잘해서 받은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순진했다. 상대는 이미 대포를 쏘고 있는데, 나는 물총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려 했으니 말이다.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군가의 성취를 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종종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는 것을.


쟤가 정말 잘해서 받은 걸까.


그리고 그 질문 뒤에는 대개 같은 바람이 숨어 있었다.


잘해서가 아니면 좋겠다.


누군가의 성취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나는 나이가 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줄 알았다. 인간도 성장이라는 걸 하니까.


물론 크나큰 착각이었다.


대학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어떤 선배와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같은 수업을 들었고, 카페테리아에서 두 번 마주쳤고, 도서관에서 서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장면을 누가 목격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선배와 연인 관계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 선배의 풀네임도 정확히 몰랐다. 그런데 소문 속 우리는 달랐다. 우리는 꽤 오래 만난 사이였고, 나는 원래 티를 안 내는 스타일이었으며, 그는 겉보기와 달리 집착이 있는 사람이었다. 연애는 하지 않았지만 세계관은 이미 완성돼 있었다.


이때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정보가 부족할수록 상상력을 보태고, 빈칸이 많을수록 더 자신만만해진다는 것을.


진실이 궁금한 척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진실 자체보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확인되지 않은 말일수록 오히려 더 흥미롭게 소비되었다.



나만 몰랐던 내 직업


그러나 나를 가장 불쾌하게 만들었던 소문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내가 술집 여자라는 소문.


어느 날, 나는 기분 나쁜 소문을 접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되물었다. “그랬다니까”라는 답이 돌아왔을 때, 뭔가가 툭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억울함도 분노도 아닌, 이상하고 낯선 감각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누군가가 묘사하는 나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었다.


사실 소문의 출처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가 화장을 진하게 해서 그랬다고 했고, 누군가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서 그렇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내가 가게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냥 느낌이 그랬어.”

“내가 직접 본 건 아니고.”

“누가 그러더라.”


책임은 없고, 자신감만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지만, 어느새 해명을 요구받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소문의 비열한 점이었다. 아무런 근거 없이 누군가가 말을 던졌을 뿐인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당사자가 자기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돌이켜보면 그 소문은 나에 대한 정보라기보다, 그 말을 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더 가까웠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이해할 언어가 없을 때 낙인부터 찍었다.



“내가 들은 건데”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이런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내가 들은 건데.”

“확실한 건 아닌데.”

“참고만 해.”


이런 말 뒤에는 꼭 누군가의 평판에 흠집을 내는 소문이 따라붙었다. 일종의 바이러스 같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실무 담당자가 바뀐 적이 있었다. 이후 누군가가 슬쩍 내게 말했다.


“들었어요? 그분 원래 문제가 많아서 빠진 거래요.”


말에는 근거가 없었는데, 전달하는 사람의 어조에는 이상할 정도의 확신이 묻어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프로젝트의 원래 담당자는 다른 부서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문제는 없었고, 평판도 괜찮았다. 그런데 그 소문을 전한 사람은 머쓱해하지도 않았다.


“아, 그래요? 저는 그렇게 들었는데.”


그 한마디로 끝이었다. 상처는 남는데, 책임은 남지 않았다.



소문은 왜 늘 해명보다 빠를까


과거의 나는 소문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오해를 풀고 싶었고, 사실을 정확히 설명하면 상황이 정리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법정이 아니었다. 증거가 있다고 판결이 나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진실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사실을 밝히는 것보다 이미 퍼진 이야기를 믿는 쪽을 택했다. 그 편이 더 재미있고, 덜 귀찮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관점을 바꿨다.


“왜 저런 말을 하지?”가 아니라

“왜 사람들은 저런 말을 믿고 싶어 하지?”로.


소문은 누가 이상한지, 누가 수상한지, 누가 문제인지를 빠르게 정리해 주었다. 그래서일까. 복잡한 현실을 오래 들여다볼 인내가 없는 사람일수록 소문을 믿는 경향이 있었다. 이해하는 데는 시간과 수고가 들지만, 단정하는 데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이유 없이 이상한 사람이 됐다


소문은 유난히 만만한 이들에게 독이 됐다.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소문은 해프닝으로 끝나도, 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소문은 평판이 됐다. 소문은 언제나 약한 쪽부터 물었다.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은 폭력만이 아니다. 사실이 아닌 말을 가볍게 전달하는 태도, 확인되지 않은 추측에 확신을 덧씌우는 안일함, 책임지지 않을 말들을 너무 쉽게 입 밖으로 내는 버릇. 그런 습관들이 더 조용하게, 더 치명적으로 사람을 망가뜨린다.




결국 내가 혐오하게 된 것은 사실보다 소문을 더 사랑하는 태도였다. 소문을 사랑하는 태도는 너무 쉽게 누군가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의 말보다, 그 말이 왜 그렇게까지 쉽고 신나게 퍼지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사실이 궁금한 사람은 확인을 하지만, 소문을 사랑하는 사람은 말을 덧붙이니까.


물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중 대다수는 소문이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말 그럴까?

그들의 믿음처럼 소문에는 힘이 없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믿는다.

무심코 퍼다 나른 말은 생각보다 쉽게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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