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월등하게가 아니라 남들처럼
하이힐에 집착했던 때가 있었다. 어른이 된 티를 내고 싶고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스무 살 무
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덧없는 집착이었지만, 그 시기에 하이힐은 내가 속한 세계에서는 문화적 이상형의 상징과도 같았다.
당시 나는 하이힐을 신고 한껏 멋을 부리는 20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다들 막 성인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다는 설렘에 부풀어 있었다. 나 역시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보고 싶은 마음에 몸에 무리가 되는 줄도 모르고 같이 어울려 다녔다. 그저 일상을 남들과 같은 속도로 살고 싶을 뿐이었다. 강의를 듣고, 학생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때론 학교 바깥으로 나가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니며. 그렇게 여기저기 다니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신발 벗을 힘도 없었다. 심지어 신을 신은 채로 현관에 한참 동안 앉아 있어야 했다.
밖에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다니다 집에 오면 끙끙 앓는 생활의 간극이 너무나 컸다. 발이 아프면 단화라도 신고 다니며 친구들의 삶을 흉내 내기 바빴던 그때부터 고관절 통증이 시작되었다. 서서히 연골이 닳고 있던 상태에서 활동량이 많아지자 불규칙적이고 불연속적인 통증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다가도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오고, 관절 부근에 기분 나쁘게 불편한 느낌도 지속되었다.
원래도 남들보다 느렸던 인생의 속도는 대학생이 되자 더 급격히 느려졌다. 정해진 일과에 따라 아주 좁은 생활 범위 내에서만 지내다가 대학생이 되어 갑자기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 통증이 심해졌다. 인생의 속도라는 표현은 과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겐 일상생활의 속도와 20대의 삶은 시간에 반비례해서 점점 느려지는 것 같았다. 남들은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데 나는 파스를 붙인 채 진통제를 먹고 드러눕기 시작했으니까.
하이힐을 신은 사람을 보고 부럽다고 하면, 넌 키가 크니까 필요 없다는 말을 들었다. 단화라도 신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주변의 시선은 냉담했다. 걸어 다니기만 하면 되지 신발이 뭐가 중요하냐며, 그것도 다 허영이라는 비난이 따라붙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격식이나 행위를 자연스럽게 맞출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고 애초부터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모른다. 그런 욕망을 초월하고 무시할 수 있는 것 또한 건강한 사람의 사치이자 특권이라는 것을.
하이힐은 단지 키가 커 보이려고 신는 신발이 아니다. 하이힐을 신음으로써 몸의 자세와 비율이 사회에서 원하는 미의 기준에 가까워지는 효과가 있다. 또한 격식을 갖춘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어떤 의례가 있을 때, 나는 구두를 신지 못해서 기준에 맞출 수 없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이건 비단 공적인 자리에서만 요구되는 조건이 아니었다. 가족 모임이나 친구, 사회적 관계에서도 혹시 추레해 보일까 봐 조바심을 냈고, 실제 “좀 더 예쁘게 입고 오지 그랬니”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좀 더 예쁘게’라는 말은 내게는 남들보다 월등하게가 아니라 남들처럼을 의미한다. 또래의 여자들처럼 자신을 치장하는 것, 그래서 튀지 않는 것. 미팅, 소개팅에 나가면 나도 남들처럼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싶었다. 결혼식에 갈 때는 정장에 구두를 신고 싶었다, 단화일지라도. 하지만 현실은 혼자만 다른 스타일로 차려입어서 터벅터벅 걷는 걸음이 더 눈에 띄지는 않을지, 시선이 쏠리는 면접장에서는 내 어색한 움직임이 더 드러나지는 않을지, 늘 초조했다. 남들처럼 할 수 없었던 내 눈에는, 한 덩어리처럼 비슷한 모습을 한 다른 아이들이 너무 안락해 보였다. 구두를 신으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면서 갖고 싶은 마음에 자꾸 사 모았다.
구두는, 특히 하이힐은 내가 갖고 싶은 흠 없는 몸을 상징한다. 예쁘다는 것은 남들과 비슷한 평균치의 모습을 가지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20대 여자의 평균치는 160〜165cm 정도의 키, 45〜55kg 사이의 몸무게, 어디 모난 곳 없는 이목구비, 하얀 피부, 하이힐을 신을 수 있는 건강, 취미 삼아 운동 한두 가지 정도 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 등을 갖춘 ‘대학생’이었다. 흔할 것 같은 조건이지만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당시 나는 큰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내 몸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자 외모 콤플렉스가 생겼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콤플렉스는 포근하고 평평해 보이는 잔디밭에 볼록 솟아서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돌멩이와도 같다. 보이지 않거나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사람을 무너트린다. 아름다움은 건강과 맞닿아 있었고, 나는 함량 미달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당시 나는 신체 기능적인 면에서의 열등함보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미추美醜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외모 하나로 경쟁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기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단지 예뻐 보이고 싶은 시도에 많은 변명을 붙여야만 할 것 같았다.
걷지도 못할 구두에 발을 욱여넣으며 젊음을 그저 낭비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20대 때 무리하면서까지 남들처럼 살아본 것은 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는 잘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정적인 활동을 하며 몸을 돌보고 장기적인 계획을 짰어야 했나? 나의 20대는 여러 질문과 함께 아쉬움만 남기고 지나갔다. 하긴 대부분의 젊음은 탕진하기 마련이다. 남들도 어리석게 낭비해버리고 애틋해하며 되돌아보는 게 젊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