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입구에서 빨간색 니트를 샀다. 다분히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빨간색 니트에 어울리는 외투를 찾다보니 옷장 구석에 걸어둔 검정색 코트가 눈에 들어왔다. 테일러드 카라에 허리를 묶는 기본 디자인이고 입으면 무릎과 발목의 중간 정도 온다. 소매에는 핸드메이드라고 수놓은 낡은 베이지 색 천이 붙어있다.
나는 이 코트를 20여년 전 지금은 폐업한 대백에서 샀다. 대백은 대구백화점을 줄여 부르는 말인데 대구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불렀다. 그 시절 만남의 장소는 언제나 대백 앞이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토요일 11시에 대백 앞에서 보자는 말 한마디면 만남은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다들 그랬는지 주말 대백 정문 앞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렇게 대백 앞을 많이 갔지만 정작 대백에서 쇼핑을 해본 적은 없다. 대백은 내게 유럽 여행은 중학교 때 한 번쯤 다녀왔고, 원어민이 있는 영어 학원 출신이며, 아침마다 엄마가 자가용으로 학교를 데려다 주는 도도하고 새침한 학급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세계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게 된 후에도 대백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새로 생긴 롯데백화점은 종종 갔지만 새침하고 도도한 지방 유지의 딸 같은 대백 앞에서 나는 늘 한없이 작아졌다. 이 코트는 대백에서 처음 산 옷이다. 40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직원은 좋은 코트는 10년을 입는다는 말로 나를 설득했다.
고심 끝에 산 옷이지만 어디지 모르게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직원의 권유로 한 사이즈 크게 산 것이 실수였다.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헐렁해서 내가 옷을 입은 게 아니고 옷이 나를 입은 것 같았다. 게다가 물 먹은 솜을 입은 듯 옷의 무게에 내 몸이 축축 처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 겨울 내내 열심히 입고 다녔다. 내가 가진 가장 비싼 옷이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의 햇수가 늘어날수록 내 옷장의 옷도 늘어났고, 내게 꼭 맞는 코트도 두 세 벌 더 생겼다. 그렇게 그는 내게 완전히 잊혀졌다.
그 코트를 다시 만난 것은 몇 년 전 가을이었다. 오랜만에 본가에 갔더니 엄마가 옷장 정리를 했다며 검정 코트를 내밀었다. 입어보았더니 몸에 꼭 맞았다. 처음 살 때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르지는 않았지만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작년에 사서 넣어둔 옷 같았다. 저 혼자만 20년이란 세월의 흐름을 비껴간 것 같아서 조금 얄밉기도 낯설기도 했다.
집으로 가져와서 옷장에 걸어 두고는 그대로 잊어버렸다. 패딩이 유행이기도 했고, 코트를 차려 입고 다니기에는 마음이 너무 분주한 삶을 산 탓이다. 그러다 올 겨울 빨간색 니트를 사면서 그 코트를 꺼내입기 시작했다. 20년 사이 내 체형에도 변화가 있어서인지 코트는 이제야 내 옷처럼 몸에 꼭 맞았다. 신기한 것은 나를 뒤덮던 무게감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번 입기 시작하자 자주 손이 가서 일주일에 두 세번은 입게 되었다. 이 코트 자체가 워낙 기본 디자인인데다 색깔마저 검정색이어서 어떤 상의나 하의와 함께 입어도 위화감이 안들었다.
우리는 참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만났다. 그의 매력과 가치를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절의 그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겁기만 한 인연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 시절의 광택과 윤기는 사라지고 각자 홀로 고군분투해왔던 시간의 교차점에서 우연히 우리는 만났다. 그가 홀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나는 알 수 없고 그 역시 방긋방긋 잘 웃던, 기형도의 '엄마 걱정'이라는 시를 수업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 어쩔줄 모르던 내가 이제는 닭모가지 하나 정도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비틀 것 같은 무던한 표정을 하고, 시를 읽고도 왜 울지 않는지 그 간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만났다. 시간의 저편으로 영원히 멀어져 서로의 삶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의 인력은 그와 나를 끌어 당겼고, 지금 우리는 함께 겨울을 나고 있다. 나도 편하고, 역설적이지만 내가 편하니 그도 편할 것이다. 우리 사이에 추운 겨울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있는 동안 서로에게 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