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룰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미루어 본다.
8시 반, 9시, 9시 반, 10시. 밤시간은 언제나 초조하게 흘러간다. 10시 반이다. 더이상 미룰 수 없음을 깨닫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다. 거울을 본다. 오늘 하루가 먼지처럼 우중충하게 달라붙었다. 선득한 욕실의 한기를 느끼며 급히 샤워를 끝낸다. 물기가 뚝뚝 흐르는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싸매고 도망치듯 욕실을 벗어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씻는 걸 몹시 싫어했다. 그 시절 우리집에는 샤워 시설이 없었다. 욕실이라고 불리는 공간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샤워를 할 수 없었다. 고무호스가 연결된 수도꼭지 아래에 스테인레스 대야가 놓여 있고 욕실 귀퉁이에는 내 몸이 들어갈 만한 고무 대야가 엎어져 있었다. 아이고 어른이고 이곳에서는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을 뿐 몸을 씻지는 않았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은 매주 일요일 공중 목욕탕에 가야만 씻는 것이었다.
공중 목욕탕은 따뜻한 물이 넘치도록 있었지만 나는 공중 목욕탕이 싫었다. 그곳에서는 늘 엄마 친구나 동네 아줌마 한 두명은 꼭 만났다. 옷을 입고 만나도 데면데면 했을 이들이다. 말갛게 씻은 조약돌 같은 얼굴로 집에 돌아오면서도 내내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예민한 아이였다. 벌거벗고 있는 아는 얼굴과 모르는 얼굴들, 그들이 빚어내는 소음과 뜨거운 물이 뿜어내는 열기,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그녀들만의 알력. 이 모든 불편함이 내 마음에 이끼처럼 한 겹 한 겹 쌓였다.
어른이 된 나는 목욕탕에 가지 않는다. 대신 집에서 매일 샤워를 한다. 이제는 사시사철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욕실이 있는 집에 살고 있다. 내 아이 둘은 겨울에도 반팔 차림으로 욕실을 나온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느끼는 욕실의 선득함은 어쩌면 실체가 아닌 기억일지도 모른다.
재작년 여름에 친구가 눅스 오일 미니어처 두 개를 줬다. 누군가 한 세트를 선물로 줬는데 어디다 써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디다 써야할지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피부나 머리카락에 발라 건조함을 막는 오일이었다.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보니 부드러운면서도 고급스러운 향이 났다. 손등에 톡톡 발라 문질러 보았다. 번들거리지 않고 마른 땅에 물이 스미듯 자연스레 피부에 녹아들었다. 그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녹스 오일을 잊어버렸다.
내가 다시 녹스 오일을 떠올린 것은 작년 가을이 끝나갈 무렵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혼자 사는 60대 여성의 하루 일상을 추천해줬다. 작지만 정갈한 집에서 자신만의 루틴으로 살아가는 여성이었다. 샤워 후에 바른다며 그녀는 눅스 오일을 추천해줬다. 온 몸이 건조하다 못해 낙엽처럼 바스락 거리는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나는 잊고 있던 눅스 오일을 꺼내 발랐다. 기분 좋은 향기가 욕실을 나온 후에도 오래동안 내 몸을 감쌌다. 미니어처 오일이 다 떨어져 갈 때쯤에는 대용량 오일을 샀다. 대용량은 스프레이식이라 쓰기도 간편했다.
요즘의 나는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고 오일을 챙겨 바르기 위해서다. 향긋한 오일을 손바닥에 펌핑해서 내 몸 구석구석에 바를 때면 뭐라고 말하기 힘든 행복한 기분이 든다. 오늘 하루도 잘 해냈다고, 내일은 더 괜찮을 거라고 눅스 오일의 향기가 말해주는 것 같다. 요즘은 샤워 시간도 길어졌다. 예전 같으면 귀찮아서 건너 뛰었을 트리트먼트도 하고, 바디 스크럽도 한다. 언젠가부터 욕실이 더 이상 선득하지 않다. 연말에 만난 어떤 이는 나쁜 기억만 지니고 사는 것은 좋았던 시간에 대한 배신이라고 했다. 그건 좋았던 시간에 대한 배신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처절한 배신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눅스 오일로 내 배신의 시간에 대한 참회를 하는 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