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기 전 신발장 거울을 보고 옷 매무새를 확인한다. 원래도 날렵한 편이 아닌 턱이 최근 더 두둑해져 사다리꼴의 아랫변 같고, 관자놀이에는 늙은 나무의 그림자 같은 기미가 거뭇하게 끼였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코트 주머니 속에 손을 넣는다. 휴대전화와 함께 엄지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더블 클립 하나가 딸려나온다. 일이 많은 때는 종종 이렇다. 주머니에 더블 클립이나 페이퍼 클립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퇴근을 한다. 헛웃음을 지으며 더블 클립을 다시 코트 속에 넣는다.
택시 안에서 기미 치료, 턱 보톡스 등을 검색해 본다. 점차 울쎄라나 써마지 같은 레이저 시술까지 넘어간다. 나는 점점 나이가 들고 피부는 세월의 흐름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으니 하고 싶은 시술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머릿속으로 온갖 시술들의 가격과 통증을 계산해 본다. 피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거꾸로 돌리려면 치뤄야 할 비용이다. 그러다 멀미가 날 것 같아 휴대폰 창을 닫고 코트 속 더블클립을 만지작 거린다.
사다리꼴의 몸체에 달린 두 개의 가느다란 발. 두 발을 젖혀서 누르면 몸체가 집게 기능을 한다. 군더더기가 없고 단순하다. 주용도는 종이를 모아 집기 위한 것이지만 싱크대에 뒹구는 고무장갑도 집어서 걸고, 먹다 남은 과자도 집어서 어딘가에 걸어두는 등 어디서나 잘 쓰인다. 단순한 모양새이지만 다양한 용도로 변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변주든 집게라는 본연의 가능을 벗어나진 않는다.
나는 왜 단순하게 살지 못하는가를 생각해본다. 내 마음은 서로 밀도가 다른 여러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어 이 물질등의 경계가 내는 불협화음으로 시끄럽다. 물건을 많이 지니지 않고 단순하게 살고 싶지만 예쁜 물건을 보면 사고 싶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삶을 살고 싶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내 자신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루틴을 지키며 하루하루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몇 시간이고 누워서 인스타그램 릴스를 볼 때가 제일 즐겁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같은 이가 되고 싶지만 잔바람만 불어도 온몸이 바람인형처럼 나부댄다. 도통 일관성이란 없다.
섞어보려 하지만 섞이지 못하는 각 층들이 내는 불협화음은 혼자 가만히 있을 때면 더 크게 들린다. 죄책감과 수치심에게 몇 대 두들겨 맞고 나면 나는 넉다운이 된다. 가만히 두어라. 가만히 두어라. 억지로 흔들어 대지 말고 가만히 두어라. 요즘 들어 내 안에서 작은 목소리 하나가 조용히 속삭인다.
탐욕스럽고 가지고 싶은게 많은 것도 나고, 조용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 것도 나다. 외부의 조그만 자극에도 바람인형처럼 나부끼는 찌질한 나도 나고, 단단하고 뿌리 깊은 나무도 나다. 꿈을 향해 한발짝 나아가는 것도 나지만, 지쳐서 몇날 며칠 휴대폰만 잡고 있는 것도 나다. 끼익끼익 하는 불협화음들은 내 마음의 각 층에서 나오는게 아니었다. 그 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대로 두어라. 그대로 두어라. 너는 이미 그대로 아름답고 유용하다고 누군가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