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발, 그리고 고운 사람이 된다는 것

by 봄동

A와 B가 만나서 내는 불쾌한 소리.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그것이 마찰음이었는지 파찰음이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A와 B가 마찰하면서 나는 소리니 그것은 마찰음이 맞다. 하지만 내 귀에는 'ㅈ'소리에 가깝게 들렸으니 어쩌면 파찰음일지도 모른다. 압축된 무언가가 서서히 마찰하면서 나는 소리. 파찰음. 하지만 A와 B사이에는 인간의 조음기관이 없으니 내 잡념은 처음부터 오류투성이다.

A는 양말이고, 그와 만나 지지직하는 불쾌한 소리를 내는 B는 내 발바닥이다. 언젠가부터 내 발바닥은 사포 저리 가라싶을 만큼 거칠어졌다. 지난 시간이 팍팍해서 더 날을 세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눈 앞에 쌓인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돌보지 못했던 발바닥들이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마찰음인지 파찰음인지 모를 소리들을 질러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후기가 제법 좋은 풋크림이 있었다. 불투명한 하얀 플라스틱 통에 노란 뚜껑. 그옛날 약장수의 좌판에서 볼 법한 모양새다. 이름도 직관적이다. 고운발 크림. 심지어 이름 앞에 뻔뻔하게도 명품이라고 써있다. 우리는 이제 안다. 바보는 스스로를 바보라 칭하지 않고 명품은 스스로를 명품이라고 일컫지 않는다. 한 번 속아보자는 마음으로 한 통을 주문했다.

머리맡에 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발랐다. 샤워 후에 한 번, 잠들기 전에 한 번. 고운발 크림은 이름과는 달리 내 발을 그리 곱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양말을 신을 때의 거친 파찰음이 조금 진정되기는 했다. 그날 밤도 평소처럼 고운발 크림을 두껍게 바르고 릴스를 보고 있었다. 최근 들어 유독 많이 보이는 영상이 여성 직장인의 퇴근 후 자기 관리 영상이다. 일단 퇴근하자마자 머리를 감고, 이때 절대 맨손으로 감아서는 안된다. 꼭 샴푸 브러쉬를 이용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샴푸가 끝나면 향 좋은(대체로 고가의) 트리트먼트로 관리를 한 후, 바디스크럽 후 샤워. 샤워가운을 입고 트리트먼트가 모발을 촉촉하게 하는 동안 자신만을 위한 저녁을 준비한다. 트리트먼트가 끝나면 서너 종류의 앰플을 피부에 찹찹찹 발라주고 두피에도 전용 앰플을 바르는 걸 잊지 않는다. 단순한 일상이지만 샴푸나 화장품의 뚜껑이 열릴 때 나는 파열음의 명확함 때문인지 강한 중독성이 있었다.

누군가 사람이 보고, 먹고,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매일밤 무념무상으로 보는 릴스가 내 행동이 되었다. 릴스를 볼 때는 저렇게 귀찮고 번거로운 걸 다 하나 싶었지만 나는 문득 릴스의 그녀들을 따라하고 싶어졌다. 어떤 가치 판단도 없이. 그런 걸 보면 인간이란 참으로 나약하고 위험한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규범과 합리, 그 중간 어디에 있는 단단한 자기 중심 속에 사는 듯 싶지만 결국 무의식적으로 자주 노출되는 누군가의 행동을 모방하고 싶어진다.

어쨌든 나는 그녀들을 따라했다. 그녀들처럼 정성껏 샴푸를 하고(트리트먼트는 귀찮으니 생략) 삼일에 한 번은 바디스크럽으로 몸을 마사지 한다. 샤워 후에는 향좋은 바디 오일로 건조함을 막아주고 마지막 마무리는 고운발크림으로 정성껏 발을 마사지한다. 어느 순간 죽은 각질들은 떨어져 나가고 아기발처럼은 아니지만 제법 발이 고와졌다. 제품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자세가 문제였던 걸까?

나는 언제나 생각이 행동을 변화시킨다고 믿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행동이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들의 행동을 모방하면서 나는 좀 더 나를 가꾸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일어나는 손 거스러미도 오일을 문질러주고, 어디를 다녀오면 신발의 먼지도 털고, 옷의 보풀도 정리한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고와지고 있는 중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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