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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빈 Sep 22. 2024

창작

예전에 7세 아이와 수업을 했어느 날, 우리는 꽃밭을 그리기로 했었다. 꽃들이 알록달록 예쁘게 피고 위에는 벌들이 날아다녔다. 그런데 태양이 인상을 쓰고 있다.


"OO아, 해님은 왜 얼굴에 동그라미가 있고 화가 나있어?"


아이는 대답했다.

"화가 난 게 아니라 아파서 그래요. 모기 물렸거든요."


모기에 물린 태양이라니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아이의 생각은 창의적이었다. 데이터 조합이 아닌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들어 있는 것이 창작이다. 우리 모두가 화가의 자질을 갖고 있는 증거는 바로 이런 창조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창작자들의 그림에는 다 의도된 이유들이 있다. 이게 이쪽에 그려진 이유, 이런 개체를 그리게 된 이유, 이런 색을 쓴 이유, 이런 구성을 하게 된 이유,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 이유까지. 그래서 그 생각의 조각들이 모여서 창작물이 된다. 장르가 무엇이든 창작자들에게는 그렇게 그려낸 이유가 있다. 창작은 단순히 기술의 결과물이 아니라 생각의 조각들이 모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조각들은 단순한 데이터모음집이 아니라 사상과 감정이 녹아들어 있다. 


창작자들이 창작을 하는 것은 완성된 그림에 대한 성취감도 있지만 그리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 이유는 바로 그 '자유'때문인 건데 이 자유의 쾌감은 무엇을 생각하든지 상상이상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삶 속에서 사람이 신처럼 전지전능한 상태로 이끌어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종이와 캔버스 화면 속이다. 창작의 쾌감은 바로 이것에 있다. 하늘을 날아다녀야 할 새가 바닷속에 있을 수도 있고 사막에 피어있어야 할 선인장이 바다 위에 피어있어도 상관이 없는 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전지전능한 상태가 되어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만들며 무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창작이다. 


내가 원하는 위치에 대상을 넣고, 내가 원하는 분위기와 느낌을 뽑아내고,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넣는다. 의도된 이유들을 반영하고 그 속에서 창작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뭐든 해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 과정에서 쓰이는 도구 또한 자유롭다. 나뭇잎을 갖다 붙여도 되고, 종이 위를 뛰어다니며 물감을 발바닥으로 찍어 발라도 괜찮다. 종이를 마구 찢어 붙여도 괜찮다. 이러한 행위 속에서 창작자는 유아시절로의 퇴행을 합법적으로 누리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창작의 느낌을 어떻게 AI와 비교할 수 있는가. 창작자가 되는 과정은 힘들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인간의 창작은 본능이면서도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창작은 인간의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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