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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빈 Aug 17. 2024

스스로 그려내는 연습

어릴 적에 미술학원을 다닐 때 나는 선생님이 내 그림에 손대는 것이 싫었다. 선생님이 손대는 순간 그림은 멋지게 변하지만 선생님이 멋지게 해 놓은 위에 내가 괜히 건들어서 망칠까 봐 더 이상 뭘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고 완성 후엔 내 그림이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닌 것 같은 그 느낌이 싫었다. 누군가 "와! 네가 혼자 다 그린 거야?"라고 물을 때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수강생분들의 그림에 0.1%조차도 손대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해낼 수 있게 만들면 된다. 수업에 나와서 그릴 때와 혼자 집에서 그릴 때 그림 퀄리티 차이가 생긴다면 그건 수강생그림이 아니다. 강사가 손 대서 완성된 강사의 그림인지 학생이 그린 그림인지 모르겠는 그림을 학생작이라고 홍보하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아래 사진은 100% 수강생 스스로 그려낸 그림들이다.


아동미술수업 당시 11살 아이가 그린 장미 (재료: 수채물감)


60대 수강생분이 그린 인물화 (재료: 색연필)


60대 수강생분이 그린 장미 (재료: 색연필)


나는 지금까지 10년간 28개월 아이부터~80대분들까지 가르쳐왔다. 그림을 가르칠수록 더욱 드는 생각은 '굳이 강사가 손댈 필요가 있을까'이다.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법만 가르치면 된다. 기초과정이 끝나면 수강생분들의 그림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 게 나의 원칙이다. 시범이 필요하다면 다른 종이에 보여줄 뿐 그림에 직접 손대진 않는다.


수강생분들은 말씀하신다.

"어? 언제부터 제가 혼자 그리고 있던 거죠?"

"우리 선생님은 말로만 하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그린단 말이야."

"도대체 제가 어떻게 이렇게 그리는 거죠?"


손이 기억하니까. 손은 그려본 만큼 기억한다.

내 손이 아닌 당신의 손이 그려본 것들을 당신의 손에 기억시켜야 한다. 글은 배워야 말하고 읽고 쓰지만 그림은 어린아이도 스스로 그린다. 사람에게 그리는 행위는 본능이며 모든 이에게 그리는 본능이 있다. 다만 그것을 꽁꽁 깊게 박아두고 꺼내지 않았던 거고, 나는 그저 시간을 들여서 그것을 꺼내드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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