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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이 주는 즐거움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자

by 사적인 유디


“즐거우면 됐다”

“즐거우면 됐다”

“즐거우면 됐다”


요즘 즐겁냐는 큰고모의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즐겁다고 답했고, 나의 말에 고모는 ‘즐거우면 됐다’고 말했다.


이 말이 왜 이렇게 내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 있는지.

이 말이 왜 이렇게 위로가 되는지.

이 말이 왜 이렇게 나를 울리는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혼자 한참을 누워서 눈물을 흘렸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선택한 결정에 대해 주위에서는 응원보다 걱정, 불필요한 간섭이 더 많았었는데 고모는 ‘그래, 네가 즐거우면 됐다 ‘라는 말로 나의 선택을 믿어주고, 존중해 주었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좁은 시야에 가두려고 했던 사람들 속에서 느꼈던 숨 막힘과 답답함이 고모의 말 한마디에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남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오직 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묵묵히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1000마디 걱정보다 더 큰 곳으로 향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사람은 내가 듣고 말하는 대로 살아간다고 한다. 내가 듣고 말하는 것이 좁은 시야 속에 갇혀있다면, 영영 우물 안 개구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겠지. 우물 속에만 있을 것인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것인지는 내 선택에 달려있다. 우물 속에 가두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휘둘리지 말고, 느리더라도 천천히 밖으로 향해 가는 용기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거 따지고, 저거 따지면서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무엇이든 해야 한다.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스스로도 변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시골로 오게 되었고, 무의미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지금은 행복한 생활을 지내고 있다. 추석 연휴로 4박 5일 동안 집에 머물렀지만, 집에 있는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계속 예민해져 있었고, 어김없이 가족들에게 짜증스러운 말이 튀어나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었고, 가족들의 시선과 물음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누워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쉼’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시골로 다시 돌아오고 나서야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부지런히 움직이며, 휴대폰이 아닌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더 ‘쉼‘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골 생활이지만, 이 시간 동안 나를 더 돌보고, 힘들어도 즐거울 수 있는 다음 단계를 준비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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