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의 사랑법
남자친구는 해병 장교, 국제 용병 출신으로 보급품인 술과 담배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워낙 집안 자체도 술을 잘 분해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인지 다들 애주가인데, 직장 영향을 받아 꽤 오랫동안 술과 함께해 왔다고 한다.
반면에 나는 술을 죽도록 싫어하는 타입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만큼은 아빠처럼 술을 마시지 않기를 바랐다.
매일 위스키를 마시며 반주를 하는 취미가 있었던 남자친구는 연애 초반에 우리 집 사정을 다 알게 되었고, 자발적으로 ‘금주‘선언을 하며 집에 있던 위스키를 다 버렸다.
위스키를 버리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남자친구의 친구는 ‘그 아까운 걸 버리냐, 나한테 주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남자친구는 위스키 병을 모아 인테리어용으로 쓰기도 했었는데, 금주 선언을 하면서 이 병도 다 내다 버렸다.
남자친구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내다 버리라고 말했는데 죽어도 말을 안 듣더니 여자친구 생겼다고 이렇게 버리냐며 어이없어하기도 했었다 한다.
그렇게 남자친구는 매일 반주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취미를 다 져버리고, 오직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3개월간 금주를 성공했다.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 자발적으로 술을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많은 욕심을 냈다.
평소 '술'이라고 하면 학을 뗐던 나는 남자친구가 아예 술을 끊었으면 하는 마음에 한 잔을 마시더라도 못 마시게 하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나는 아빠 같은 사람은 안 만나야지 하는 강박이 있었고, 남자친구는 아빠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용납이 안 되었던 것이다.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아빠처럼 술버릇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아빠랑 같은 취급을 하냐며 서운해하기도 했었다. 심지어 단 한 잔도 용납을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숨 막히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남자친구가 아빠처럼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기 위해서는 신뢰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정말 이 사람은 술을 많이 마셔도 괜찮은 사람이구나를 입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술을 제대로 먹여봐야 알 수 있는 것이지 않나. 나는 이것조차도 보기가 싫어서 무조건적으로 "술 마시지 마!"만 되풀이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술을 많이 마셔 보았을 때 우리 아빠와 같은 모습이 나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요즘은 함께 반주하고, 치맥 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썸 탈 때나 연애 초반에도 치맥을 하기는 했어도 그때는 내가 남자친구한테 잘 보이려고 했기 때문에 맞춰줬던 것이지 술을 제대로 즐기지는 못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 이래서 다들 치맥 치맥 하는구나’ 하며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남자친구도 예전만큼 술이 생각나지도 않는다며 마시는 양도 많이 줄어들었고, 한 번씩 이렇게 나와 한 잔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가진다.
내 트라우마에 휩싸여 남자친구를 족쇄에 채우려 했지만, 결국 이 모습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문제로 싸우기도 싸우고 서운하고 많이 답답했을 텐데, 기다려주고 같이 맞춰준 남자친구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