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문장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기 위해 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일기를 작성하는 날에는 좋은 날보다 안 좋은 날이 더 많았다. 아빠에 의해 감정이 상했거나,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고, 내 삶이 한없이 무기력해질 때 그럴 때마다 일기를 썼던 것 같다.
때로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사무쳐서 펜을 든 날도 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 답답한 마음이 들었고, 최근에 있었던 일들부터 하나씩 기록해 나갔다.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기억하고, 글을 써내려 가다 보니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또한 그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일기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2017년 10월의 어느 날에도 나는 일기를 써내려 갔다.
'오늘도 난 씨X년이다. 엄마는 아빠랑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며, 사람들이 내 욕을 한다며 나보고 참으라고 항상 말했다. 그치만 난 못됐다. 내가 보고 자라온 것도 있고, 이제 한계다. 몇 번 나도 욕을 하니 속이 후련하다. 그치만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나는 쓰레기다. 아빠도 쓰레기다.
...
둘 중에 한 명은 죽어야 될 거 같다. 내가 만약 죽으면 이때까지 홀로 힘들게 버틴 엄마와 우리 오빠야가 겪어야 할 힘듦을 안겨줄 수 없다. 그래서 못 죽는다. 나를 낳은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하지만, 나를 키운 엄마를 생각해서 나는 그래서는 안된다.
...
큰 행복이 빨리 와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술을 먹으면 심장이 빨리 뛴다. 새벽에는 발소리만 들려도 잠에 깨고, 아빠의 소리가 들려오면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 그리고 아빠한테 맞서서 말할 땐 손관 다리, 온 몸이 떨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지옥같다.'
2018년 1월의 어느 날에도 일기를 써내려 갔다.
'나는 나의 진짜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 약점이 될 수 있으니까. 나는 정상이 아니다. 우울이 나를 집어 삼킨다. 홀로 남은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난 엄마가 너무 좋다. 행복하면 좋겠다. 난 아빠가 너무 싫다. 더 이상 보고싶지 않다. 그만했으면 좋겠다. 살고싶지 않다. 나도 쓰레기다. 난 패륜아다. 나의 소원은 항상 행복이다.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온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사소한 것도 큰 것일까. 아무것도 하기 싫다. 너무 힘들다.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걸까. 누가 이렇게 힘들게 놔둔걸까.'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때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너무 힘들었었기에 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다행히도 지금은 이날들처럼 매일이 괴롭지는 않다. 아빠가 술을 멈춤으로써, 그리고 아빠와 거리를 두고나서부터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의 눈물 젖은 일기장은 2023년 4월부터 멈추게 되었다. 지금은 예전만큼 일기장을 적어내려갈 일도 없고, 아주 힘들 때 가끔 작성을 하지만 이또한 드물다.
곁에 좋은 사람을 두었기 때문에 마음이 꽤 안정이 되었고, 덕분에 지금은 상처나고 흉진 내 마음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렇게 브런치 글을 쓰게 된 목적도 이제는 상처 속에 숨어 살지 않고, 온전히 맞서며 치유하기 위함이었는데 서서히 회복되고 있음을 느낀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공감과 위로와 응원에 마음이 한없이 말랑해지기도 하며, 살아가는데에 많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