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술 마시는 이유가 나라고?

You are the reason I drink

by 사적인 유디


어릴 때부터 술 마시고 난리 피우는 아빠를 봐온 나는 술을 정말 싫어했고, 왜 마시는지 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술이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켰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나 역시도 입에 술을 대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술에 대한 경계가 풀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술주정이나 술부심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날은 어김없이 취해있는 아빠한테 왜 이렇게 술을 마시냐고 화내며 따졌고, 아빠는 “니 때문에 술 마신다.”, “니 입(말)때문에 술 마신다.“며 대답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술을 마시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진실이 아닌 말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 말이 얼마나 비수 같았는지 모른다. 이후로도 몇 번이나 술을 마실 때면 나 때문 또는 엄마 때문에 술을 마신다는 말을 많이 했었고, 우리 탓만 해대는 아빠를 보며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니 때문에’라는 말 자체에 예민해져 있었던 나는 장난으로라도 ‘누구 때문에’라며 남탓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남자친구와 기분 좋게 술 한 잔씩 기울이게 되었고, 장난을 주고받으며 소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남자친구는 삐진 척을 하며 “You are the reason I drink.”라는 말과 함께 술을 들이켰다.


상황 자체는 장난이었지만, 워낙 저 말 자체에 예민함이 있었던 나는 그대로 남자친구에게 정색을 했다. 내가 싫어하는 말을 했다며 남자친구에게 뭐라 했고, 당황한 남자친구는 이건 나쁜 말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남자친구는 로맨틱하게도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했지만, 사실 상황 자체가 로맨틱하지는 않았기에(?) 이해할 수 없어 더 정색을 했다.


남자친구 의도는 내가 생각하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지만, 말 자체에 꽂혀버린 나는 마냥 유쾌할 수가 없었다.


아빠한테 입은 상처가 불필요한 더 많은 상처를 만들어냈다. 만약 아빠가 나에게 이런 말을 안 했더라면, 내가 이 말에 상처를 안 받았더라면 남자친구가 한 말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어갔을 텐데 말이다.


아빠가 생각 없이 뱉은 말에서 그만 상처받고 이겨내고 싶은데,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