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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해봤자 고통만 늘어간다

무엇이 최선일까

by 사적인 유디


꽤 오랜 시간 아빠의 술과 폭언에 상처받아온 나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아빠에 대한 원망과 미움만 커져갔다.


쉽게 감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나는 매번 이 미움이라는 감정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이 모습을 본 친오빠는 그렇게 오랫동안 아빠를 경험했는데도 왜 아직 덤덤해지지 못하냐고 물었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우리 오빠와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아빠의 모습에 덤덤해졌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쉽게 훌훌 털어버리고, 감정에 깊게 파고들지 않는 친오빠와 엄마는 덤덤하기가 쉬웠던 반면에 나는 미움이 해소되지 못한 채 커져만 갔다.


문제는 미워하는 감정이 커질수록 우습게도 고통받는 것도 나 스스로였다.


아빠가 미워지니 얼굴 보는 것도, 말을 섞는 것도 싫어졌다. 그래서 한 집에 살지만 얼굴을 안 마주치려고 방에만 틀어 박혀 있기도 하고, 혹여 말이라도 하게 되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질문을 던졌으니 그에 대한 대답은 해야겠고… 그렇다고 좋게 말이 나오지는 않아서 매번 거의 화내며 답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짜증이냐고 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빠한테 도저히 좋은 말투로 말이 나오지 않게 되었고, 얼굴만 봐도 속이 부글거리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짜증 낼 거 다 내면서 뭐가 답답하다고 나는 고통 속에 산다고 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빠가 밉지만, 아빠한테 화내고 짜증 내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죄책감 속에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빠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아빠한테 화내고 짜증 나는 게 당연해.‘라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래도 가족인데 남들처럼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까.’하는 마음이 살짝 있는 것 같다.


아빠한테 상처받을 일이 없었거나, 내 성격이 이렇지만 않았더라면 아빠를 안 미워하고 잘 지낼 수 있었을까.


미움이 커질수록 내 마음의 고통도 커져서 ‘더 이상 아빠를 미워하지 말고, 내 인생에 집중하자‘는 마음이 생겼다가도 쉽게 미움이 떨쳐지지는 않았다.


이미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썩어 문드러진 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게 최선의 방법일까? 결국 이 감정의 실타래를 풀지도 못하고 아빠와 영영 데면데면하며 사는 게 맞는 것일까?


마냥 매몰차게 내 인생을 바라보며 살지 못하는 내가 한편으로는 한심스럽기도 하다.


시간이 더 흐른다면, 그때는 미움도 고통도 없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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