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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굣길에 술 취한 아빠를 마주쳤다

차마 더 이상 앞으로 걸어 나갈 수가 없었다

by 사적인 유디

어렸을 때의 기억은 대부분 잊혀지지만, 몇 가지 특정한 기억들은 몇 십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기억 중 하나는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에 엄마 대신 아빠가 술 취한 채로 우리 남매를 데리러 온 날이다.


한 살 터울 친오빠와 나는 아빠를 보고 집으로 가지 않겠다며 울고불고 울어댔고, 선생님은 당황했었다. 결국 우리는 술 취한 아빠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 날 우리가 목청 터져라 울어댔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어느 정도 자란 초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아빠가 학교 앞으로 데리러 오는 일은 없었지만, 친구와 함께 집 가는 길에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아빠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고, 같이 하교하던 친구에게 거짓말을 했다.

"나 책상에 숙제 놔두고 온 것 같아, 가지러 가야겠어." 하며 학교로 되돌아가겠다고 했다.


친구는 오늘 안 해도 된다 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비틀거리는 아빠를 마주할 수가 없어 친구에게 오늘 꼭 해야 된다 말을 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학교로 향했다.


이 날 나는 몇 초의 순간이 30분처럼 느껴졌고, 그 짧은 순간 느낀 창피함과 두려움은 약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아빠는 이 사실을 평생 모르겠지.


어린 날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힐 거라 생각하지만, 아이들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기억 속에 남는다. 특히 이런 기억들은 더더욱 말이다. 어린아이 앞에서 싸우는 부모들은 아이가 커서 이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많은 것을 기억한다. 추후에 나도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내 자식에게는 절대 이런 기억을 물려주지 않아야지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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