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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후계자 특별 수업

나는야 ‘욕수저’

by 사적인 유디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욕수저를 들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닌 욕수저라니 꽤 상스럽고 웃기다. 나의 특별 스승은 아빠다.


늘 욕을 입에 달고 다니고, 가족들 앞에서 상스러운 말도 스스럼없이 뱉어낸다. 그렇게 나는 아빠한테 욕을 배우게 되었고, 한창 사춘기가 심한 중학생 때는 엄마 앞에서 아빠처럼 욕을 뱉어내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친했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욕을 잘 썼다. 우리 둘만의 룰이 있었는데, 바로 학교 안에서는 착한 말을 하고, 교문만 벗어나면 1818이라며 욕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욕이 입에 붙게 되었던 나는 중학교 때까지 정말 다양한 욕을 사용했고, 다행인 건 고등학교 때부터는 욕이 상스럽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더 이상 18을 사용하지는 않게 되었다. (다만, 이 외의 비속어는 많이 썼다.)


아빠가 쓰는 욕을 자연스레 배운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우리 가족에게 향했다. 그중 제일 만만했던 한 살 터울의 친오빠한테 특히 욕을 많이 했다. 학교에서는 착한 아이로 소문나 있었지만, 집에만 오면 욕을 한 바가지 뱉어냈다. 오빠한테 '병x', '새x'를 그 어떤 죄책감 없이 뱉어댔고, 나중에는 부모님이 있는 앞에서도 이 말들을 뱉어냈다.


왜 말을 그렇게 하냐는 물음에 나는 "다 아빠한테 배운건데?", "아빠도 막 쓰는데 왜 나는 쓰면 안되는데?"라고 버릇없이 대꾸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버릇없고, 창피한 모습이다.

그때는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그 반항은 항상 우리 가족들에게 향했다.


20대 초반까지도 나는 오빠야한테 애칭이라며 '병x새x'라고 불렀고, 지금 생각하면 참 못된 동생이었다.

성격이 무디고 착한 우리 오빠는 그런 말을 듣고도 그냥 지나가는 일이 허다했으며, 정말 참다 참다 나하고 싸우기도 했다. 몇 번 오빠야랑 주먹질을 하며 싸우기도 했는데, 항상 원인은 내 말이었던 것 같다.


오빠야가 장난을 먼저 걸어왔지만, 좋게 받아칠 줄 몰랐던 나는 그대로 욕을 박아 버렸고, 그렇게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아빠한테 배운 욕은 참 상스러운 욕들이 많은데, 차마 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 태반이었다. 아빠는 욕하는 것이 자랑인 것 마냥 큰 소리로 욕을 뱉어냈고, 때로는 베란다로 나가 욕을 하는 일도 많았다.


현재도 아빠는 말 끝마다 '씨' 또는 '씨x'을 내뱉는다. 최근에는 엄마가 요리를 하다 냄비를 태워먹는 일이 있었다. 그때 아빠는 '병x같은 게 몇 번을 태워먹네, 씨x'이라 말을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욕에 노출되어 왔던 나는 그대로 습득하게 되었고, 아빠가 뱉는 욕이나 내 욕이나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상스럽게 말하는 것을 줄이고 있는 중이다.


가끔 정말 화가 날 때나 감정 제어가 안 될 때 욕이 나도 모르게 나올 때가 있지만, 더더욱 조심하려 노력한다. 나중에 내 아이 앞에서 나도 모르게 욕을 내뱉는 일이 없도록.


엄마와 오빠는 이런 욕이 오가는 환경에 같이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욕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나는 그대로 배워 열심히 써먹었다.


아빠는 이미 습관으로 잡혀버렸기 때문에 고치기란 쉽지가 않을 테지만(사실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지만), 이 모습이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기에 나도 말을 더 순화하여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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