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 나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
사실 아빠가 술을 많이 마시고 나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고 해도 나는 술 마시지 않은 상태의 아빠와는 정말 친하게 잘 지냈었다.
중고등학생 때도 아빠 옆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 손을 붙잡고 둘이서 놀러 다니기도 했었다.
아빠가 술을 마셨을 때만 사이가 안 좋았고, 술을 안 마셨을 때는 그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었었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서서히 아빠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차차 생각해 보면 내가 이렇게까지 아빠와 멀어지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21살 때쯤, 아빠는 엄마 외의 다른 여자들에게 애정표현을 했고, 함께 술을 마시고, 뻔뻔하게 우리한테 친구라며 소개를 시켜줬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빠가 다른 여자들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더럽다고 느꼈고, 큰 실망을 했다.
엄마가 있는 앞에서 아빠한테 ‘더러운 새끼’라고 소리치고, 울며 불며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변하지 않았다.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었고, 몇 년이라는 시간을 더 다른 여자와 애정표현을 하며 지냈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길 바랐지만, 결국 이 모든 게 본인의 업이라는 엄마는 여전히 아빠와 살고 있다.
지금은 아빠가 예전처럼 여자들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지는 않지만, 한창 활발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때는 정말 많이 싸우고, 울고, 화내었다.
한 아줌마는 우리 가족과 밥도 먹고, 놀기도 하며 친하게 지내었는데, 그 아줌마가 아빠를 차단을 하니 아빠는 우리에게 제발 한 번만 연락하게 해 달라며, 차단을 풀어달라며 사정하고 애원했었다.
엄마와 오빠 폰을 몰래 들고 가 그 아줌마에게 아빠 차단 풀어달라 문자를 보내기도 했고, 한 날은 아빠가 나에게 계속 차단을 풀어달라는 문자를 그 아줌마에게 보내달라고 하자 나는 열이 받았고, 그대로 내 폰을 바닥으로 던져 핸드폰이 망가지기도 했었다.
염치도 없지.
아빠가 그 아줌마에게 어떤 문자를 보내었는지, 어떤 표현을 했었는지 나는 다 알고 있는데, 아빠는 뻔뻔하게도 나보고 그 아줌마에게 문자를 보내달라 했다.
그것도 아빠 차단을 풀어달라는 내용으로 …
아빠는 원래 자존심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 하겠지만, 나와 우리 엄마, 우리 오빠는 무슨 죄인가.
우리 체면과 자존심 마저 짓밟아 버리는 이 사람이 정녕 한 여자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다행히 지금은 아빠가 예전처럼 여자들과 연락을 하고 지내지는 않지만, 이 일은 나에게 정말 큰 충격과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일로 아빠한테 큰 실망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은 아빠와 둘이서 밀양으로 기차를 타고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온 날이다. 우리는 위양지를 다녀오고, 기차 시간에 맞춰 밀양역 앞 국밥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아빠가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몰래 술을 시킨 것이다. 식당 아주머니께서 큰 소리로 ‘술이요?’라는 말을 했고, 뒤를 돌아보니 아빠가 아주머니께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술을, 아빠는 나와 놀러 온 그 순간에도 몰래 마시려 했고, 결국에는 테이블 밑에 술을 두고는 홀짝홀짝 술을 마셨다. 밥을 먹는 내내 눈물이 났고, 제대로 밥을 삼킬 수도 없었다.
내가 아무리 아빠와 잘 지내려고 노력을 해도 아빠는 내 기분, 내가 받은 상처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아빠의 감정과 본능만 우선시했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아빠와 잘 지내고 싶어서 먼저 다가가도 아빠는 또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나에게 실망과 상처를 주었고, 나는 매번 반복되는 상황에 지쳤다.
현재는 아빠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고 평소에는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빠가 말을 걸면 짜증부터 났고, 화내면서 답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아빠는 자식에게 미움만 받다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이번 생에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상황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쓰라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