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양보는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분들이 이 문제를 공감하실 거라 생각한다.
-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려 하면 일부러 속도를 높여 끼어들지 못하도록 막는 차.
- 도로가 막혀 합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운전자.
- 심지어 내가 한 발 양보하면 마치 내가 '진 것'처럼 반응하는 사람들.
운전만 그런 게 아니다.
일상에서도 사과를 먼저 하면 '지는 것'처럼 여겨지고, 배려를 하면 '호구'가 되기 쉽다.
서로 양보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음에도, 이상하게도 '손해 본다'는 느낌이 강하게 따라붙는다.
언제부터 배려와 양보가 패배의 신호가 되었을까?
사실 배려와 양보는 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서로를 위해 최소한의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다.
도로에서 조금씩 배려하며 함께 흐름을 만들어야 모두가 안전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실수를 인정하고,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당연한 행동을 '패배'로 받아들인다. 왜 그럴까?
아마도 '손해 보기 싫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배려를 하면 내가 불리해지는 건 아닐까? 양보를 하면 상대가 나를 만만하게 보진 않을까? 먼저 사과하면 내가 더 약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배려 없이 이기려고만 하는 사회는 얼마나 삭막한 사회일까?
처음부터 이런 심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내가 배려를 할수록 상대방은 나를 더 얕보고 당연시 여기며 호구로 봤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또는 나는 이만큼의 배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쪽은 사소한 배려도 하지 않을 때 서운하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데, 저 사람은 왜 사소한 배려조차 하지 않지?"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실망감이 커지고, 심지어 그 배려가 아까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감정이 반복되면 점점 배려하는 게 싫어지고, 결국은 '나도 그냥 남들처럼 이기적으로 살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물론, 배려는 '받기 위해'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것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배려가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배려와 양보는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인데, 한쪽만 일방적으로 배려하고 양보하고 참다 보면 억울한 느낌까지 든다.
배려를 받는 사람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남이 배려한다고 해서 그걸 당연시하지 말 것.
그 배려를 무시하거나 상대를 얕보지 말 것.
본인은 양보도 배려도 하지 않으면서 남이 해주기를 강요하지 말 것.
누군가 기꺼이 양보했을 때, 그것을 이용하려 들거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상대가 배려를 베풀어줬다면, 최소한 그 마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자신은 단 한 번도 배려하지 않으면서 남이 해주지 않으면 '왜 안 해주냐'며 불만을 갖는 사람들.
- 스스로는 양보하지 않으면서 남이 양보하면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유난을 떤다'며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
이런 태도가 늘어날수록 좋은 마음으로 배려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든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서로가 조금만 배려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들이 고집과 냉소로 가득 차 더 삭막해지고 만다.
나는 배려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양보하는 사람이 더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배려와 양보, 그리고 사과는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이걸 따지고 있는 게 웃기는 상황이다.
우리는 상대를 누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살아간다.
이제는 사람들이 배려를 '패배'가 아닌 '성숙'으로,
양보를 '손해'가 아닌 '공존'으로,
사과를 '굴욕'이 아닌 '책임'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래야 이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해지고, 함께 살아가기 좋은 사회가 될 테니까.